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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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겐세일한 자원의 보고 ‘알라스카’- 알라스카를 팔게 된 진짜 이유는?
장창익 부경대학교 교수
2017-12-26 11:19:45
지금부터 150년 전인 1867330일 러시아의 황제인 챠르(Tsar) 알렉산더 2(Alexander II)(사진)는 알라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판매하였다. 이는 에이커당 2센트로 환산해서 판매한 것으로, 1803년 나폴레옹이 230크기의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판 것보다도 더 싼값이었다. 현재 알라스카의 경제적 가치는 적어도 수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냉전시대 이래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 기지와 핵잠수함 기지 등 주요 군사 거점이 집중되어 있어 군사적,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그 후 1959년 알라스카는 미국의 49번째 주로 등록되어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금광과 석유 발견, EEZ 체제로 매입 당시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엄청난 바다자원 확보, 관광 러시 등 수 많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러시아의 황제인 챠르(Tsar) 알렉산더 2(Alexander II)

 

그러면 이 땅을 러시아는 왜 미국에 헐값으로 팔게 되었는가? 러시아의 황제인 표트르 1(Pyotr I)의 의뢰로 덴마크 탐험가인 베링(Vitus Bering)에 의해 1732년에 발견된 알라스카는 1741년 러시아령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알라스카에는 수많은 러시아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국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799년에는 민관합작의 러시아-아메리카 주식회사(RAC)가 설립되어 알라스카 개발과 무역사업을 담당하였는데 회사의 주주로 황제와 그 가족들도 참여하였으며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상황을 보면 1853년부터 1856까지 지속된 크림전쟁(Crimean War)에서 패배하면서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RAC의 수익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는데 알라스카가 영국의 잠재적인 침공의 위협을 받자 러시아로서는 이익은 되지 않는데다 지키기는 어려운 알라스카를 판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알라스카를 경영했던 RAC는 초기 50년간은 수익이 아주 좋아서 러시아 국고로 많은 돈을 보냈다. RAC를 설립한 바라노프(Alexandro Baranov)는 유능한 상인으로 미국, 중국 등으로 교역을 늘려 사업을 확장했다. 그런데 그 후임인 해군장관이었던 가게메이스테르(Leontii Gagemeister)는 보수적인 인물로서 경영진을 황제의 친인척들과 귀족들, 군의 고위 장성들로 채우고 온갖 특권을 제공하는 등 수익은 급격하게 나빠지고 적자가 발생하여 이 적자를 국고에서 메워 넣어야 했다.

 

당시 러시아의 실세였던 챠르의 동생인 파블로비치(Constantine Pavlovich) 대공이 알라스카 판매를 강행하였다. 러시아 여론은 판매를 완강하게 반대하였으며 또한 영국이 알라스카를 실제로 침공할 계획도 없었다. 그럼에도 파블로비치는 국가 재정이 어렵고 당장 적자가 난다는 핑계로 알라스카 판매를 밀어 부쳤다.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 황제는 알렉산더 2세의 아버지인 니콜라스(Nicholas)였는데 이 황제는 옛 친구인 영국주재 미국대사 브케넌(Buchanan)에게서 영국의 크림전쟁 참여준비 정보를 받는 등 유일하게 미국의 도움을 받아 왔다. 이때부터 니콜라스 황제는 미국에 알라스카를 팔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853년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정복한 무라브요프(Nokolay Muravyov)는 조만간 알라스카를 양도해야 할 것이며 이 경우 영국보다는 우호적인 미국 손에 들어가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나마 러시아에 우호적인데다, 마찬가지로 영국과는 사이가 나쁜 미국에게 판매하는 것이 러시아로서도 최선의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챠르는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사실 챠르 알렉산더 2세는 파리조약으로 끝난 크림전쟁 패배의 복수를 하려고 터키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그 사이를 노리면 알라스카의 코디악과 시트카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이 지역을 완충지역으로 두기 위해 미국에 알라스카의 매입을 추진하는 문제와 경제적으로도 극동지역을 개발하느냐 러시아 미주지역인 알라스카를 개발하느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1 루블을 알라스카 시트카에 투자하는 것은 시베리아에 투자할 1루블을 빼내는 것을 의미한다 (A ruble spent on New Archangel (Sitka) meant one less ruble for Siberia.)"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알라스카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블라디보스톡은 없었을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사실 러시아가 알라스카를 팔 때만 해도 알라스카는 한낱 쓸모없는 황무지로 여겨졌다. 실제로 당시 많은 미국 국민들은 알라스카 구입이 정신 나간 짓이라며 알라스카 구입을 주도한 윌리엄 스워드(William H. Seward) 국무장관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스워드의 멍청한 짓(Seward Folly)"라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 국무부 회의실에서 알라스카 매매 협상을 진행하는 장면

(가운데 앉아 있는 시워드(William Henry Seward) 미 국무장관과 가운데 서있는 러시아 스토클(Edouard de Stoeckl) 대사)

 

이 시기 미국은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고 부통령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이 대통령이 되면서 1867년 의회는 과격한 공화당에 장악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미국 존슨 행정부가 의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라스카 구입을 강행했던 것은 경제적인 가치를 예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제1의 가상의 적이었던 영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미국은 영국령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북미 대륙에서 영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알라스카를 확보하여 남북으로 캐나다를 압박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 이유로 2월부터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해서 3월 말 전격적으로 의회를 통과하여 매매를 성사시킨 것이다.

 

알라스카 매매는 흔히 세계사에서 가장 어이없는 거래로 인식되고 있다. 1917년 혁명으로 정권을 차지한 신생 소련 정부는 이 거래야말로 제정 러시아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였다. 그러나 구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 학자들 가운데는 당시 상황을 오늘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당시 러시아 사정상 알라스카의 판매는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다시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알라스카를 팔지 않으면 안될 만큼 상황이 불가피했다기보다 상황을 불가피하게 만든 제정 러시아의 불합리한 체제가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었던 시절의 알라스카는 황무지로 인식되었지만 미국의 소유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자원의 보고가 되었는가 하는 사실도 따져봐야 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평가할 때에 현재의 관점으로 당시를 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지금과 다르며 당시로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라는 비판은 지나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라고 인정하는 것 또한 지나치다. 알라스카 거래에 대한 평가도 비슷할 것이다.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였다는 견해와 당시의 상황을 볼 때 불가피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하는 대립되는 견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이분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장창익 부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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