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특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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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해양 자원 생산용 해양플랫폼 기술 발전과 방향
정광효 부산대학교 교수
2019-01-28 16:32:16

현재 세계에너지의 약 80%정도가 석탄, 석유, 천연 가스 등의 화석 연료를 이용하여 공급되고 있다. 이중 세계 에너지 시장과 산업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에너지가 석유이다. 기원전부터 동서양에서 여러 목적으로 사용된 증거들이 있다. 본격적인 석유시대는 1859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 작은 마을 타이터스빌(Titusville)에서 "에드윈 드레이크(Edwin L. Drake)"가 이끄는 시추 팀이 깊이 21m 유정에서 원유 채굴에 성공하면서부터이다. 그는 18세기 당시 조명용 램프 연료로 활용되는 고래 기름을 대체하기 위한 자원으로 원유를 최초로 유전을 굴착하여 대량 생산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이후 1885년 독일의 고트리프 다임러가 휘발유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발명하고, 그로부터 7년 뒤에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발명하면서 석유는 더 이상 등불 연료가 아닌 수송 연료로 사용되며 생산량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하지만, 석유가 연료로서 석탄에 비해 활용성과 편이성이 월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에서 열렬하게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1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기술과 경제력을 구축한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기반을 석탄 광산산업 위에서 확립시켰기 때문에 주된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기에는 딜레마에 빠졌다. 당시 신 연료인 석유는 먼 나라에서 공급을 받아야 하는 대신에 석탄은 자국 내에 풍부하게 존재하고, 광부의 일자리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기에, 석유로의 전환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20세기 초 포드 자동차 회사 설립과, 원유에 열을 가하여 끓는점에 따라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를 차례로 생산해내는 최초의 현대식 정유공장이 1912년에 건설되면서 미국은 석유시대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육상에서만 생산되는 원유를 해양에서도 생산 가능하게 한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된 사례들을 소개한다. 189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인근 해양에서 세계 최초로 원유 생산을 시도하였지만, 해양환경오염만을 남기고 실패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1905년 텍사스 주 Lake Caddo에서 나무로 플랫폼을 만들어 약 13백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여 육지가 아닌 지역에서 원유 생산을 처음 성공하는 사례가 되었다. 또한, 호수 바닥에 3inch 파이프로 각 플랫폼에서 생산된 원유를 모아서 육지로 운송하여 기술을 처음 적용한 기술은 현재도 해저 원유 운송에 적용되고 있다. Lake Caddo의 성공한 기술을 이용하여 1920년대에 베네주엘라 Lake Maracaibo에서 원유생산을 시도하였지만 6개월 만에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조석에 따라서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담함수(Brackish water)영역인 Lake Maracaibo의 활발한 해양생물들이 나무로 제작된 해양플랫폼들을 파괴한 것이다. 투자자와 엔지니어들의 격론 끝에 막대한 경비를 투자하여 콘크리트로 호수에 지지구조물을 제작하고, 나무로 상부구조물을 제작하여 원유를 생산하였다. 50억 배럴이라는 엄청난 양의 원유를 생산하여 콘크리트로 지지구조물을 제작한 아이디어와 투자가 올바른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림1.  세계 최초 해양원유 시추탑(1897)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그림2. 텍사스 주 Lake Caddo 원유시추탑(1905)

 

Kerr McGee Platform1947년 루지애나 주의 걸프만에서 최초로 수평선을 넘어 원유를 생산하였다. 이것은 최초로 선박을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플랫폼으로 활용한 사례이다. 세계 1차와 2차 대전 이후 퇴역한 미국 해군 상륙함을 고철로 구입하여, 바다에서 전원공급과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지원설비로 활용하였다. 물론 이후 많은 미 해군 퇴역 군함들이 해양 원유 개발용으로 개조되었다. 이때까지는 해양에서 원유를 생산하기 위한 해양플랫폼들을 해양에서 조립하였는데, 이듬해인 1948Superior Oil Platform은 육상 건조 후 루지애나 주 걸프만으로 이동하여 설치한 첫 사례가 되었다. 이후 원유생산용 해양플랫폼 건조와 설치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해양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산업이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1960년대에 미국 걸프만의 해양원유 생산 기술은 북해(North Sea)에 적용되면서 다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북해는 걸프만에 비해서 험난한 파도를 이겨내기 위한 북해용 해양플랫폼 설계 및 건조 기술이 발전하게 되어 노르웨이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 해양 자원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후 해양자원개발 기술들은 동남아, 브라질, 아프리카, 호주 등으로 전파되어 세계의 바다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게 된다.

 

                

                           그림3.  루지애나 주 걸프만의 Kerr McGee Platform(1947)        그림4. 루지애나 주 걸프만의 Superior Oil Platform(1948)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1970년대에 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출발하여 눈부신 발전과 함께 조선강국으로 성장하여 세계 조선산업 1위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과 자신감으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의 해양자원생산용 해양플랫폼 건조 산업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조선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하지만, 세계 경제 침체, 그리고 유가 급락과 함께 우리의 조선해양산업은 불경기를 현재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 불경기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세계경제 침체이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와 문제점을 돌아보고 개선해야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 조선해양산업의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국가 경제에 기여했던 해양플랫폼 건조 산업의 최근 몰락을 되돌아보면, 해양플랫폼 산업 규모의 급성장으로 급증한 현장과 엔지니어 인력의 부족을 조선산업의 경력자들로 충원하였다. 선박과 해양플랫폼의 설계 목적과 건조 과정은 다르지만, 조선산업에서 얻은 자신감이 해양플랫폼 산업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실수가 큰 손실로 이어졌다. 역사와 함께 본 해양자원개발 기술 발전을 요약해 보면 대량의 원유를 생산하기 위하여 여러 바다에서 각기 다른 해양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과 아이디어들이 기술 발전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가 해양자원 개발용 해양플랫폼의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조선소와 연구진간의 공동연구보다 해외 자원개발 기업들과 밀접한 교류를 통한 해양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설계 기술 개발과 해양자원개발 장비 성능 개선을 위한 국제 공동 연구 수행이 바람직하다.

 

 

정광효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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