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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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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바다

오용식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2019-10-31 13:11:16

  혁신(革新, innovation)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기술혁신, 경영혁신, 정치혁신, 제도혁신, 대학혁신, 혁신행정, 혁신도시, 혁신학교 등등 혁신이 중심이 된 신조어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고, 아예 OO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을 쓰는 기업도 여럿 등장하고 있다. 더러 혁신의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혁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받드는 새로운 ()’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혁신 또는 이노베이션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쓰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를 만들어 낸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정치학자로도 알려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1883~1951)일 것이다. 그는 경제의 발전과 경기의 순환에 관련된 일련의 저술에서 대순환과 경제 발전의 핵심으로 새로운 결합또는 이노베이션을 꼽았다. 그것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기업가정신의 정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멋스러운 표현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혁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것은 이 시대를 이끄는 많은 사람들이 슘페터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기기관, 자동차, 항공기,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 드론과 인공지능까지, 눈부신 기술혁신들과 그것들의 압도적 파괴력들을 지켜보면 슘페터에게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혁신하는 자가 승리하고, 혁신하지 못하는 자는 도태된다고 믿는다. 혁신은 모든 경쟁에서 핵심적 요인이고, 나아가 사회 진보의 유력한 원동력인 것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무수한 혁신들이 현대문명을 창조해온 것처럼, 앞으로의 세상도 혁신가들이 만들어 갈 것이다.

 

   바다에서의 혁신은 어떠했는가?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희망봉을 돌아 향신료 교역의 새로운 경로를 발견했고, 이탈리아인 콜럼버스(C.Columbus)는 더 새로운 발상으로 신대륙을 발견했다. 19세기 초에 미국인 풀턴(R.Fulton)은 증기기관을 성공적으로 선박에 탑재하여 기선(汽船)을 만들었고, 20세기 중반에는 또 다른 미국인 맥클린(M.McLean)이 컨테이너선이라는 커다란 혁신을 실현시켰다.

   희망봉을 돌아서 오가는 포르투갈인들 덕분에 유럽의 향신료 가격은 대폭 하락하였고, 당시 중계무역으로 번성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콜럼버스와 그의 정신적 후예들은 신대륙의 낯선 산물들(토마토, 옥수수, 고추, 담배, 감자, 고구마...)을 구대륙에 전파했고, 아예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새 역사를 창조했다.

   기선들은 오대양을 누비던 범선들을 차례차례 해운시장에서 내쫓았고, 컨테이너선은 재래정기선을 궁지로 내몰고 내륙운송체계의 변화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이 모든 바다에서의 혁신들은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창조적 파괴적 혁신들이었다. 육지에서의 혁신이 바다로 들어오기도 했고, 때로는 바다에서의 혁신이 육지를 뒤흔들기도 했다.

 

그림1.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선인 노스리버호를 복제한 모습(1909)(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그림2.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선 아이디얼엑스(1956, 유조선을 개조)(출처:photostrecke)

 

 

  이러한 혁신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슘페터는 새로운 재화, 새로운 품질, 새로운 생산기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원료, 새로운 공급원, 새로운 조직을 모두 혁신이라 보았고, 혁신을 달성하는 방법으로도 간주한 것 같다. 혁신이란 새로운 것,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이고, 옛것을 답습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영학 용어로는 차별화(Differentiation)라 할 수 있겠고, 차별화는 마케팅의 핵심개념이기도 하다. 조금 비약시켜 말하자면 차별화의 시도들이 성공적으로 축적되면 큰 혁신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1498년 다가마(V. da Gama)가 마침내 인도에 이르기까지 포르투갈인들은 15세기 내내 도전을 지속했다. 풀턴의 증기선이 나오기까지 비슷한 류의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다는 것도 상식적 추론이다. 증기선이 나오고 나서도 100년여간 증기선은 범선과 효율화 경쟁을 벌여야 했다. 컨테이너선 역시 1950년대 이래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내외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대형화와 해운시장 개편을 시도해왔다. 즉 대부분의 혁신은 성공적 차별화 행위들의 결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성공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보수적인 우리들은 모두 안전을 원하고,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기에 혁신의 달성은 젊고 도전적이며 열정적인 사람들의 몫이 되기 쉽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인들에 의해 혁신이 주도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은 아시아의 젊은이들보다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혁신이 유럽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지금 혁신이라는 뜻으로 창신(创新)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중국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 은()나라의 건국 시조인 탕왕(湯王)이 세숫대에 日新又日新을 새겨두고 날마다 마음을 새로 했다고 한다. 이 반명(盤銘)의 정신이야말로 슘페터의 기업가정신이 아닐 수 없다. 등소평의 남순강화로부터 30년이 지나지 않아 일약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최근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곳이기도 하다. 무역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대학 졸업생의 창업률(8%)이 우리나라의 10배에 달하고, 창업의향이 있는 중국의 대학생은 90%에 육박하지만 우리는 20%를 크게 밑돈다. 중국의 창업열기도 놀랍지만 우리의 현실도 아득하기만 하다. 시대의 혁신가였던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후예인 우리가, 우리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보수화되어가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바다에서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컨테이너선들은 나날이 대형화, 효율화를 거듭하면서 다른 선종의 시장영역을 침범하고 해운시장의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선박으로부터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이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중유를 대체할 선박연료와 추진기관을 찾고 있다. 또한,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선원노동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모두가 혁신을 추구하고 있고, 바다에서도 경영과 기술에 있어서 혁신을 둘러싼 경쟁이 전 세계적인 규모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에서 이겨내려면,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우리의 바다에서도 일신우일신의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차별화하려는 마음가짐도, 행동도 쉽지 않을뿐더러, 혁신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도, 정부도, 업계에서도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기업과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하며, 우리 기업과 젊은이들도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오용식 한국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