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세계유일 등대도시, 등불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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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병등대와 우체통, 그리고 필자
ⓒ김비태
No Touch 등대! 그래서 등대는 노다지
‘등대를 희화화하는 놈’으로 필자를 소개하는 편이 ‘등대 상징화 사업’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기장군 연화리 젖병등대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KBS 방송을 비롯해 “젖병등대 있다 없다?”가 TV와 라디오의 퀴즈 단골 메뉴가 되었다. 해양계에서는 등대는 해양신호체계인데 만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해양문화 전문가들은 등대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가 있는데 ‘김비태라는 놈’이 그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항의의 목소리도 컸다.
‘노다지’의 어원은 누구나 안다. 미국에서 황금 광맥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달려가던 서부 개척 시절, 황금광맥을 찾으면 그곳에 ‘No Touch’라는 팻말을 붙였다. 영어의 ‘No Touch’를 발음하다 보니 노다지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바다라는 ‘광맥’을 지키려는 그래서 바다를 독점하려는 해양인들과 바다라는 ‘유산’을 지키려는 그래서 바다를 알리려는 해양인들이 존재한다. WOF(세계해양포럼)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흐름이 아닌가 추측도 해본다. 포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가족들까지도 행사장에 데려오기까지 해서 열심히 바다를 알리려 하고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벅찬 감흥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려고 열심이다. 반면에 ‘방구석 해양인들’은 끼리끼리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모여앉아 자신들의 모교 몇 기 누가 어디 자리로 옮겼다네, 곧 어느 자리가 공석이니 어느 선배한테 말하면 된다는 귓속말을 하고 지내는 것은 아닌가 조용히 상상해 본다.
바다를 알려준 스승 김영석 장관 그리고 만남
그만큼 바다는 노다지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자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해양인이라면 다 알고 있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 나섰다. 부산광역시에서 관광과 컨벤션산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2005년 신설한 부산관광컨벤션뷰로의 사명을 처음으로 맡으면서 첫 소감은 솔직히 막막했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부산으로 유치해야 하는 시장님의 직속 도시마케팅 조직이 ‘부산관광컨벤션뷰로’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부산은 88올림픽 이전의 흑백 TV시절에서 그 이후의 컬러 TV시절로 바뀐 것처럼 엄청난 발전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20년 전 2005년 당시 Port Pusan은 알아도 Busan은 모르는,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비린내 나는 부두가’로만 상상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계적인 행사를 하러 부산으로 오라고 하기는 정말 망막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 바다를 가져다 준 인물이 김영석 장관이다. 당시에는 부산지방해양청장이었다. 부산일보에 실린 김영석 청장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보고는 바로 면담을 요청했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책임지세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영국 신사 같던 김 청장은 “부산시민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라며 시작된 만남이 인적이 드문 어촌계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부산관광컨벤션뷰로가 바다를 만나면서 부산은 세계적인,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컨벤션 도시로 인정받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용두산등대
ⓒ김비태
등대지기’라는 용어는 쓰지 말라
야구등대
ⓒ김비태
김영석 청장이 고생했다며 기장 연화리의 젖병등대의 열쇠와 등대지기 임명장을 건네줬다. 그 임명장에 ‘등대지기’라는 말 대신 ‘등대장‘이라 적혀있었다. 등대장이라면 등대지기의 대장이란 의미인 줄 알고 사양하자 직원으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등대지기라는 말은 피해요. ‘~지기’라는 어감이 비하하는 것이라고 반발이 많아요.” 등대지기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에 답을 못했다. 그래서 전국 등대지기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를 달라고 해서 결국 영도등대였던가 거제도 등대였던가 94명의 모든 등대지기가 모인 자리에 달려갔다. 그들은 등대지기라는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정말 힘든 일이다. 정말 외로운 고행이다. 그런데 그래서 선택했다”고 한다. 풍랑 속에서, 망막한 해무 속에서 등대에 목숨을 맡기는 배들뿐만 아니라 어두운 바닷가를 찾은 우리는 어느덧 등대 밑에 옹기종기 모여들기 마련이다. “인기척만 들어도 사람이 두렵기까지 한 어두운 바닷가에서 길을 잃어도 등대지기를 찾으면 단둘이 밤새워 같이 있어도 두렵지 않아요.” 어느 여고생이 말해준 등대지기다. “당신은 등대지기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등대지기 같은 사람들이 사는 등대 같은 도시가 있다면 당신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도시가 아닌가. 그러나 ‘등대도시‘가 있기는 한 것인가? 등대도시라 불리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아직은. 그것이 ‘등대상징화 사업’의 목표였다. 등대를 희화한다며 반대하던 해양인들도 함께 추진하던 등대사업은 어떻게 되었는가? 2011년 5월 27일 용두산 부산타워 전망대에 등명기를 설치해 당시 가장 높은 106미터의 요코하마 등대보다 13미터나 더 높은 119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용두산등대가 반짝 탄생했었다. 그러나 필자가 부산을 떠나고 밤거리 자영업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줄 빛줄기는 보이지도 않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대는 감춰지고 말았다.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젖병등대, 야구등대, 갈매기등대 등 부산의 여러 모양의 조형등대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대라는 주연 없는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빛과 인간의 행동심리와의 관계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세계적인 관광 도시 파리가 왜 에펠탑에서 등댓불을 밝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등불이 되어드리겠습니다.”
28개의 아름답고 하나하나 의미와 스토리가 있는 조형등대가 있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대가 있는 도시,
그 등대에서 어두운 밤에 등불을 밝혀 희망과 활기를 뿜어내는 도시,
그 도시의 카페는 ‘등대같은 카페’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등대 같은 사람’이며
그 도시의 상품은 믿고 살 수 있는 ‘등대같은 상품’이다.
이 사업은 사실 부산만을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그러한 도시가 있는 대한민국의 프로젝트였다.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등불이 되어드리겠습니다.”라는 선언을 앞두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도시 브랜드마케팅 사업이다라고 나의 기록은 여기서 마친다.
부디 어느 곳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등대도시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길...
영산대학교 호텔컨벤션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친근한 상질물인 등대를 예쁘고 의미있게 설치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부산항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