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해양도시, 그들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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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돌발 퀴즈 하나! 가수 심수봉의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먼저 들어보자.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 아〜. 배를 빗대어 사랑을 쉽게 버리는 남자와 그 사랑을 끝내 잊지 못하는 여자의 애절한 이별을 그린 노래다. 1984년에 처음 발표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심수봉의 가냘픈 음색과 중독성 있는 가사가 서로 어우러져 별리(別離)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여자들의 심금을 쥐어짰다. 자! 그럼 여기서 나오는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가 항만도시인가, 아니면 해양도시인가?
ⓒ Menon Economics 홈페이지
그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전문가도 정확한 답변을 내놓기가 곤혹스러울 수 있다. 항만도시나 해양도시, 그 개념이 모호하고, 한편으로는 애매해서다. 또 서로 뒤섞여 사용되는 경우도 흔하다. 항만도시는 기본적으로 항구가 있고, 그곳에 선박이 드나들면서 형성된 도시다. 연안 바닷가에 항만도시가 들어서는 이유다. 부산항이나 인천항, 뉴욕항 등 거의 모든 항이 그렇다. 주로 수출입 화물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기능적으로는 무역항이다. 물류 기능에 특화된 개념이다. 그럼에도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항만도시나 해양도시는 같은 것으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 다만, 확실히 구분되는 곳도 있다. 어선 등에서 잡은 수산물을 처리하는 어항이다. 항만보다 비교적 사이즈가 작다. 우리나라 원양어업 전진기지가 있던 스페인 라스팔마스나 비고항,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등이 세계적인 어항으로 유명하다. 우리 연안에도 수많은 어항이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어항과 아주 작은 포구까지 모두 합치면 2,000개가 훌쩍 넘어간다.
해양 도시/항만 도시 정답은 없다.
해양도시는, 개념적으로는 항만도시보다 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다와 항만이 중심축이다. 이곳에 물류 기능뿐만 아니라 바다와 관련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경제와 금융, 교육·문화 등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메가시티로 성장한다. 글로벌 메가시티가 거의 대부분 연안에서 100Km 안쪽에 있는 이유도 바다와 항만이라는 탁월한 접근로를 갖고 있어서다. 해양도시가 항만이 없는 내륙 지역의 일반 도시와 구별되는 대목도 있다. 선박을 중심으로 교통 네크워크가 발달한 덕에 개방성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쉽게 섞이고, 쉽게 동화되는 특성도 있다. 창조적인 이벤트를 만들어내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한편으로는 거칠기도 하고, 캡틴과 마도로스를 떠올리면, 낭만적인 풍경이 그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해양도시는 치열하게 산다. 항만에서 처리하는 화물량에 따라 해마다 순위가 매겨진다. 특히 동아시아 항만들의 경쟁 구도가 심화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물동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나라의 국부(國富)가 가려지고, 희비가 교차하는 세상이 됐다.
< 글로벌 선박 운항 빈도 >
ⓒ Menon Economics 홈페이지
해양도시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최근에는 해양도시 순위도 발표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사를 두고 있는 Menon Economics(연구/컨설팅 회사)와 선급 협회 DNV가 2019년부터 공동으로 세계 해양도시 보고서를 발간한다.세계 주요 50개 해양도시를 대상으로 해운 서비스, 해양금융 및 법률제도, 해양 기술, 항만·물류, 도시 매력과 경쟁력 등 5개 분야에 대한 평가와 280명의 전문가 설문조사를 토대로 세계 해양도시의 성적표를 발표하는 방식이다.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최고 해양도시로 싱가포르가 낙점됐다. 그다음으로 로테르담, 영국의 런던, 중국 상하이, 동경 순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앞으로 5년 뒤의 세계 해양 허브’ 평가에서도 싱가포르가 선정됐다는 점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항만과 물류 서비스 부문에서 낮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 해양 기술, 도시 매력 및 경쟁력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항만의 지속적인 혁신, 스타트업 육성, 디지털 분야의 과감한 투자 등이 효자 종목으로 꼽힌다. 최근의 글로벌 환경 변화와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 이 보고서의 영문 제목은 「The Leading Maritime Cities of the world 2022」이다. 이 보고서의 강점은 이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거의 유례가 없다는 점과 5개의 평가항목을 설정한 다음, 각각다른 40개의 평가지표로 가지고, 세계 1만 5000개 도시가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2) 전문가 패널은 아시아권이 50%, 유럽 지역이 25%, 그리고 미주 및 중동, 아프리카가 25%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 부문별 글로벌 해양도시 평가 순위 >
ⓒ Menon Economics 홈페이지
부산의 경우, 2019년 평가에서는 10위권에 들었다. 그러나 2022년 보고서에는 매우 인색한 결과가 나왔다. 해양 기술에서만 3위에 올랐을 뿐 나머지 4개 평가항목에서는 15위 밖으로 밀렸다. 해양 금융, 해사 법률, 해사 중재 등 해운 서비스(maritime centers) 분야는 글로벌 선도국가와 간격이 너무 컸다. 특히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 측면에서는 등외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답안지를 이미 받아든 셈이다. 이제 고칠 일만 남았다.
【사족】 이 글을 쓰다가 흥미로운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해양도시 인문지도다. 부경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플랫폼으로,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해양도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일독을 권한다! 강추!!!
ⓒ 부경대학교 해양도시 인문지도 연구사업단 홈페이지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