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120년 장수기업의 성장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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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904년. 나라 안팎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동양에서는 러일 전쟁이 일어나 중국과 조선 앞바다에서 일본과 러시아 해군이 격돌했다. 전투는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해 6월, 미국 이스트 강에서는 증기 유람선 제너널 슬로컴 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승객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선박 화재사고였다. 그리고, 저 멀리 덴마크의 외딴 섬 푸넨(Funen) 아일랜드에서는 에이피 뮐러(AP Moller) 라는 사람이 증기선 한 척으로 아주 조그만 선박회사를 하나 차렸다. 현재 글로벌 해운물류시장을 장악한 머스크 라인(AP Moller – Maersk Group, 이하 머스크)이 그렇게 탄생했다.
5대째 이어온 가족회사의 탄생
증기선 1척으로 사업을 일으킨 에이피 뮐러가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뛰어든 것은 1912년이다. 기존 회사와 작별을 고하고, 완전히 독립적인 지분을 가진 증기선 회사를 다시 만들었다. 이때부터 1940년까지 근 30년 동안 머스크는 순풍에 돛은 단 듯,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물자를 수송하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18년에 오덴세 철강 조선소를 세워 자사 선박을 찍어 내듯 건조했다. 선박이 늘어나자 기항지 수도 증가했고, 비즈니스는 더욱 번창했다. 1928년에는 세계 최초로 정기선 서비스를 도입했다. 처음부터 에이피 뮐러가 꿈꾸던 일이었다.
주 : 에이피 뮐러의 아버지 피터 머스크 뮐러는 부인 안나와 결혼한 이후 10명의 자녀를 두었음
ⓒ머스크 홈페이지 검색 자료
이 같은 일이 있은 후 47년이 지난 1975년에 머스크는 현재와 같은 완벽한 형태의 컨테이너선 정기 서비스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오랜 꿈을 그의 아들(에이피 맥키니 뮐러)이 대를 이어 성사시킨 셈이다. 그 당시 그 누구도 컨테이너가 지금과 같이 세상을 바꿀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구권 사회주의 블록이 붕괴되자 머스크는 또 하나의 행운을 거머쥔다. 종전에 50개에 지나지 않던 해운 서비스 루트가 100개국으로 급증했다. 머스크는 현재 130개 나라의 항만에 기항하는 글로벌 초일류 회사로 성장했다. 운항하는 컨테이너 선박이 730척에 달하고, 직원 수가 10만 명이다. 이 가운데, 선원이 1만 8000명이다. 이런 머스크가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2021년보다 32% 늘어난 815억 달러였다. 세전 순익은 309억 달러,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 숫자로 보는 머스크의 현재
ⓒ머스크 홈페이지 검색자료(2023. 02. 17)
인수‧합병으로 기업 키우고
머스크는 어떻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 우선은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해운 DNA가 가장 큰 요인이다. 재단을 만들어 5대째 가족 경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언제나 남보다 앞서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성공의 이면을 훑어보면, 늘 세상을 먼저 보고, 미리미리 준비했다. 머스크가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평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비결은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시장을 선점한 전략이다. 1) 보유선박을 늘리던 시기와 2) 물류기업으로 전환하는 시기 등 두 단계로 확연하게 나눠진다.
선대확충에 주력한 첫 번째 시기다. 1999년에 사프마린을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컨테이너 선박이 50척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시랜드(MCC와 Seago 포함)와 P&O 네들로이드 인수 등 글로벌 해운시장의 굵직한 인수합병은 모두 머스크가 주도했다. 특히 P&O의 가세로 머스크의 세계 해운시장 점유율은 18%로 치솟았다. 그리고 2008년과 2015년 극심한 구조조정기를 견딘 머스크는 2017년에 다시 1871년에 설립된 독일 선사 함부르크 셔드(자회사 브라질 알리안카 포함)를 합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머스크는 글로벌 해운서비스를 완성하는 넘사벽의 해운 강자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머스크 홈페이지 초기 화면
ⓒ머스크 홈페이지 검색자료
육 해 공‧디지털 물류서비스
두 번째 기업 확대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세계 경기 침체 이후 머스크의 성장 모델이 달라지고 있어서다. 먼저 글로벌 디지털 물류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보통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물류시장 진출과 디지털 전환(DX)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회사를 해운기업에서 통합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머스크 홈페이지 어느 곳을 찾아봐도 해운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글로벌 물류 통합기업(the Global Integrator)’이라는 선명한 구호와 미션이 눈길을 끌 뿐이다.
최근의 인수합병과 투자도 이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담코의 3PL 부분을 인수하여 복합운송시장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또 온라인 운송 플랫폼인 트윌(Twill)을 오픈하는 등 디지털 물류시장 선점에 나섰다. IBM과 공동으로 화물추적시스템과 컨테이너 원격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이 같은 작업의 하나다. 항공 물류시장에도 참전했다. 머스크 에어카고를 설립한 뒤, 항공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의 세나토 인터내셔널과 미국의 파일럿 프레이트 서비스를 매입했다. 이로써 머스크는 선박을 매개로 항공은 물론 트럭운송에 이르기까지 화물의 끝단에서 끝단까지(end to end) 완벽하게 연결하는 디지털 통합물류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120년 전 증기선 1척으로 시작한 회사가 현재 글로벌 물류시장을 송두리째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등극했다.
머스크의 항공물류회사 인수 사례
ⓒ구글 검색자료
그렇게, 혁신의 아이콘으로
머스크의 성장과정에서 눈여겨볼 장면은 또 있다. 이 회사가 남보다 앞서 시장을 보고, 미래의 트렌드까지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부문에서 앞장서서 걸었다. 그리고 없는 길은 새로 만들었다.
1. 선박의 대형화를 이끌었다. 컨테이너선 정기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해운회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선박의 크기를 키웠다. 2006년 머스크 오덴세조선소(다만, 머스크가 다른 물류회사와 협업을 전제로 구축한 블록체인 기반의 트레이드렌즈(TdadeLens)는 물류 정보 독점이라는 논란이 계속되고, 사업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함에 따라 2023년 3월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음.)에서 건조된 엠마 머스크호의 경우, 배 길이 397미터, 20피트 컨테이너 1만 4770TEU를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선박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 정기선 서비스를 주도했다. 해운 역사상 정기선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고, 완전한 모습의 컨테이너선 해운 서비스도 처음 도입했다. 세계 일주 서비스도, 컨테이너 데일리 서비스도 선보였다. 아시아(MCC), 아프리카(사프마린), 북미(시랜드 머스크)와 남미(알리안카)에 새로 인수한 로컬 피더선박을 투입하고, 대형선이 거점항만에 기항하는 허브앤스포크 전략도 사실 머스크의 작품이다.
3.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핸드폰 등장 이후 세상이 변하자 머스크는 온라인 디지털 모드로 기업을 전환했다. 그리고 해운회사에서 통합물류기업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2050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탄소중립 이행시기도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글로벌 무탄소 항로(무탄소 녹색해운 항로, Green Shipping Corridors)에 가입하고, 탄소 배출이 없는 메탄올 선박을 대량으로 발주하는 등 이 부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비용부담을 감수하고, ESG를 실천한다는 의미다. 길게 보고, 멀리 가는 것이 머스크의 트렌드 대처법이자 활용법이다.
무탄소 항로 개념 및 머스크의 메탄올 생산시설 투자
ⓒsafety4Sea 및 머스크 보도자료 인용
머스크, 혁신의 아이콘
ⓒ머스크 홈페이지 검색자료
4. 리스크 관리도 전략이다. 코로나가 종막을 고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선박에 실을 화물도 줄어든다. 해운 운임은 3년 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한쪽에서는 운임폭락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상회복이라고 주장한다. 머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상위선사들은 장기운송계약화물이 많다. 대략 60∼65% 수준이다. 해운 시황과 운임변동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이유다. 스팟시장 의존도가 높은 해운회사들은 리스크 헷징이 급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