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둑으로 만든 어촌, 로테르담. 세계 물류 중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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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물류 중심지라 하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이 연상된다. 북해로 나가는 라인강 지류인 로테(Rotte)강의 하구 주변으로 댐의 나라 네덜란드답게 12세기 후반에 둑을 쌓아 매립하여 탄생한 도시가 로테르담이다. 그래서 도시 이름에 담(Dam)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이 도시는 바다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강 하구와 내륙으로 연결된 운하들을 기반으로 유럽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5~16세기 유럽에서 서인도제도로 가는 해로가 발견되어 17세기에는 상업과 해운업이 활황했다. 이 시기에 로테르담은 세계 해운업을 기반으로 무역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대양으로 가는 바닷길을 열어 유럽 대륙과 세계를 연결하는 게이트웨이(Gateway)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로테르담은 항만을 중심으로 해운업, 보험업, 무역업, 금융업이 크게 성장하였고 라인강 지류인 니우어마스(Nieuwe Mass)강 하구를 따라 북해(北海) 방향으로 계속 항만을 개발하였다. 세계 도시 성장의 필요 요소인 운송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전한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로테르담 항 수상 택시
ⓒ이성우 제공
그러나 로테르담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의 폭격으로 거의 파괴되었다. 로테르담은 물류 요충지였기에 양쪽 진영이 모두 로테르담 항을 가지지 못하면 그 기능을 마비시켜야 적군의 군수품 운송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폐허가 된 로테르담은 전쟁 후에 도시 전체를 항만과 연계된 물류산업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도시 중심부는 강을 향해 널찍하게 계획되었고 기능적인 건축물들을 접근이 편리하도록 유럽의 물류 신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니우어마스강이 생명줄 역할을 하고 강 주변에 상업, 금융, 업무, 교육, 산업, 주거단지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면서 강을 따라 바다로 항만이 확장하는 부분과 연동하여 도시 전체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또한 항만과 유럽 내륙으로 연결되는 내륙 수운, 철도, 도로를 확충하여 오늘날의 세계 물류의 중심이 된 것이다.
로테르담 항
ⓒ이성우 제공
17세기 이후 해운에 기반한 무역업으로 크게 성공하였으나 바다와 연결되는 물류 측면 장점을 더욱 활용하고자 석유화학산업도 함께 발전시켰다. 로테르담은 해외에서 선박으로 수입한 원유를 가공한 이후 항만과 연결된 송유관을 통해 배후에 있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 국가들로 석유 정제품을 공급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로테르담은 유럽에서 우리나라의 무역 중심지 부산항과 석유산업 중심지인 울산항을 합친 형태로 발전을 이어 나간 것이다.
로테르담은 유럽의 자원 빈국이자 열악한 국토 환경을 가진 네덜란드가 현재 세계 최고의 부국 중에 하나로 성장한 모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이다. 특히, 로테르담은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살려 부활하는 저력을 이어왔다. 국토의 1/3이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서 매립을 통해 도시를 만들어내고 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물류 네트워크로 바다와 내륙수로를 연결하여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테르담은 전화(戰禍)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를 다시 해운물류업 중심지로 만들고자 도시를 재개발해 나가면서 무역업, 금융업, 보험업 그리고 석유산업까지 발전시켜 유럽 최대의 게이트 웨이(Gateway)이자 부유한 항만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미 세계 10대 항만의 반열에 오른 1990년대 이후에도 로테르담은 자만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신항만과 항만배후단지에 전략적인 투자를 시작하였고 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로테르담은 주변 유럽 항만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유럽의 경제 하락에 대응하고자 국내외 새로운 성장 전략을 수립하여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니우어마스강을 넘어서 바닷가에 대형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하고 직배후에 항만배후단지를 만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 내었다. 로테르담 항을 이용하는 화물들이 배후지로 단순하게 통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로테르담에서 가공무역을 통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북해 연안에 건설된 ECT 터미널 배후의 마스브라켓(Maasvlakte) 항만물류단지는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또한 로테르담항만공사를 중심으로 글로벌 물류네트워크를 확대하여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까지 항만거점들을 확충해 나갔다. 초기 로테르담항만공사 직원이 200명 미만이었으나 2022년 기준 1,298명 이상이 된 이유도 이러한 글로벌 물류네트워크 확장과 항만배후단지의 성장에 기인한다. 최근에는 니우어마스강 주변에 있던 오래된 항만들을 리모델링하여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새로운 스타트업 공간(Port-XL)으로 만들어 지식의 집적과 폭발을 통한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Port-XL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들은 스타트업 공간이자 유럽 대기업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제공해 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주고 있다.
Port-xl 스타트업 공간 전경
ⓒ이성우 제공
Port-xl 내부 연구실 전경
ⓒ이성우 제공
로테르담시의 모습은 우리 부산시의 과거와 현재와 많은 부분 겹치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신항만과 항만배후단지 건설, 북항 재개발, 부산항만공사의 해외 물류거점 사업 등 많은 부분에서 진행 방향은 같은데 현재 모습은 차이가 큰 것 같다. 부산 신항만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외형적 성장에만 치우치고 있고 항만배후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은 부가가치나 양질의 일자리를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와 로테르담항만공사의 순이익과 고용수를 비교해 보면 2022년 기준 톤당 순이익은 부산이 92원/톤, 로테르담이 647원/톤 그리고 직접 고용은 부산 155명, 로테르담은 1,298명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부산항이 로테르담항보다 컨테이너 기준 많은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주요 스타트업 공간으로 성공한 모델로 이야기하고 있는 Port-XL과 비교해서 현재 부산 북항은 어떤 스타트업들이 입주해서 국내외 기업들와 협력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며 부산의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부산항만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물류거점은 로테르담항만공사와 비교해서 얼마나 되고 양질의 일자리는 얼마나 창출하고 있는지? 여러 부분에서 컨디션이 어떠한지 매우 궁금하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지적폭발을 통해 성장하고 진화해 왔다. 과거 부산항을 중심으로 부산시는 우리나라 2대 도시, 세계 5위권 컨테이너 항만이자 글로벌 물류거점으로 위상을 높여왔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는 부산항의 이전,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 등 내부와 외부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도시와 항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점차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다. 부산시의 도약은 로테르담시에서 본 것처럼 기존 지식의 집적과 외부 인력 유입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연결을 통한 지식 폭발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항만이 떠난 북항 재개발과 항만이 들어 온 항만배후단지 개발은 지식 집적과 폭발을 위한 중요한 기재이다. 한국과 네덜란드, 부산과 로테르담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모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다만, 도시의 기반이 되는 지식의 집적과 폭발을 위해 항만과 주변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로테르담의 지속적인 노력과 성공을 통해 오늘 부산의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 성장 방향을 재점검해 볼 시점인 것 같다.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