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학 바다는 어쩌면 거대한 발전소다! 제주 바다는 파력발전의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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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바다의 어떤 도전
여름이다. 태양은 뜨겁다. 하지만 바닷바람이 부는 제주 용수항 선착장 매점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과 반건조 오징어를 안주 삼아, 차귀도가 떠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본다면 어떤가? 게다가 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들이 전기를 만들고 있다면? 이건 상상이 아니다. 바로 차귀도 앞바다에서는 실제로 그 파도를 전기로 바꾸는 파력발전(Wave Power)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작은 부표들, 언뜻 보면 해상 표지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파력발전 테스트 장치다. 관광객들이 절부암의 전설에 귀 기울이고, 올레길을 걷는 바로 그 순간에도, 바다는 파도를 전기로 바꾸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부유식 파력발전 장치와 발전단지 조감도
ⓒhttps://iphoto.kiost.ac.kr (2025.7.16.)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파도, 바람, 달이 만드는 바다 발전소
석탄, 석유, 원자력을 거쳐 태양광과 풍력까지. 인류의 에너지 역사에서 정작 지구 표면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소외받아왔다. 하지만 바다는 24시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 보고다. 파도, 바람, 달, 물살까지. 바다가 품고 있는 에너지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바다야말로 에너지원이 모여 있는 보물창고다.
먼저, 파력발전은 파도의 상하 운동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제주에서 실험 중인 파력발전 방식은 바다에 띄운 부표나 구조물이 파도를 따라 움직이며 변환장치를 거쳐 전기를 만든다.
대표적인 파력발전 시스템
ⓒhttps://iphoto.kiost.ac.kr (2025.7.16.)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파도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는 여러 에너지원을 활용하고 있다.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선 바람개비들은 포토 스폿이자 우리나라 해상풍력 발전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풍력은 바람의 변덕이라는 한계가 있다. 파도 역시 날씨에 따라 변하지만, 바람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조력발전은 달의 인력에 의한 조석 현상을 활용해 시화호에서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하고, 조류발전은 울돌목 같은 해협이나 좁은 수로의 빠른 물살을 이용한다.
(좌)제주 신창풍차해안도로 해상풍력발전 , (우)시화호 조력발전
ⓒhttps://korean.visitkorea.or.kr (2025.7.16.)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https://www.kwater.or.kr (2025.7.16.) K-Water 시화호 조력발전소
스코틀랜드 vs 제주, 파도의 격차
전 세계가 파력발전에 주목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다 파도만 잘 써도 연간 29,500~32,000 TWh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1) 인류가 쓰는 전기의 약 20%를 바다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환경단체(Earth Island Institute)는 ‘2050년에는 파도가 전 세계 전력 수요의 10%를 책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2)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다. 문제는 현실이 늘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파도라고 다 같은 파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앞바다의 파도는 제주 서쪽 해안의 파도와 완전히 다른 리그다. 2004년 세계 최초 파력발전소 펠라미스(Pelamis)는 높은 건설비와 유지보수 문제로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영국은 지금도 파력으로 전체 전력의 25%를 채우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3) 그 자신감의 원천은 거친 북해의 강력한 파도다.
1)발췌: 「Ocean Energy 보고서(2018)」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2)발췌: 「The Promise and Pitfalls of Wave Power(2023)」 Earth Island Institute(미국 환경단체)
3)발췌: 「Why it’s time to get serious about wave power(2021)」 Carbon Trust(영국 저탄소기술 싱크탱크)
영국 펠라미스 파력발전
ⓒhttps://www.offshorewind.biz (2025.7.16.) 검색자료
「Wave Power Machine Celebrates First Anniversary Since Grid Connection (2011)」
offshoreWIND.biz(해상풍력 전문 글로벌 산업매체)
한국은 삼면이 바다인 해양 부국이다. 하지만 파력발전의 현실은 좀 다르다. 동해는 겨울철 굽이치는 큰 파도는 장관이지만, 서해와 남해는 상대적으로 얌전하다. 파도의 크기가 다르고, 그에 맞는 기술이 따로 필요한 게 파력발전이다. 조력발전은 시화호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파력발전은 아직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연안의 파도가 스코틀랜드의 거친 북해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 용수리에서 시작된 파도 실험
제주 용수리 앞바다의 파력발전 시도는 비록 소규모지만 의미가 있다. 한국이 개발한 이 기술은 기존 파력발전보다 두 배 이상의 효율을 자랑하며, 24시간 꾸준히 전기를 생산한다.4) 제주의 잔잔한 파도로는 1기당 시간당 3kW. 스마트폰 수백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정도다. 스코틀랜드 파력발전기 한 대가 수천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초보적 수준이다. 그래도 이 실험은 기술 검증과 개선의 디딤돌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4)“건설硏, 파력발전효율 2배 높이는 데 성공…24시간 파력발전 가능해졌다” , 동아사이언스 (2019.1.7)
전 세계 300개가 넘는 기업과 연구소가 파력발전 경쟁에 뛰어들었다. 노르웨이와 포르투갈 등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10년 내 상용화되리라 예측하지만, 그 무대는 제주 같은 평화로운 관광지 인근이 아니라 파도가 거센 먼 바다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우리에겐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기술과 반도체 기반의 제어 시스템이 있다. 용수리 앞바다의 파도는 비록 작지만, 이곳에서 축적된 부유식 파력발전 기술은 동해의 거친 파도와 서남해 풍력단지를 아우르는 복합 해상발전 시스템의 토대가 될 것이다. 세계 5위 조선 강국의 기술력과 결합한 한국형 파력발전 플랫폼이 잔잔한 제주 바다에서 시작되어 거친 대양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제주 용수리 시험파력발전소 조감도
ⓒhttps://iphoto.kiost.ac.kr (2025.7.16.)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강민아
한국동서발전(주) 과장, 이화여대 언론홍보학 석사
그림과 글로 세상을 풀어내는 바이링궐, 그림 그리는 기획자이다.
20년 이상 기업과 NGO에서 PR 업무를 해왔으며
에너지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전략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