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마트, 지속가능수산물 소비를 위한 플랫폼
페이지 정보

본문
한국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산물 소비자이다. 1인당 연간 수산물 섭취량이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이는 우리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바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급격히 악화되는 해양 생태계와 풍부했던 수산자원의 위기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수산물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기후변화 탓을 하거나 불법어업, 무분별하게 남획하는 어업을 탓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비문화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어떠한 개선도 어렵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연근해어업 수산물 생산량
ⓒ 통계청
지속가능한 수산물 소비는 생산 현장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선택이 책임 있는 생산을 유도하고 변화시킨다. 그런데 소비자의 행동은 어떻게 바뀔까? 이러한 소비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바로 리테일러다. 대형마트,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은 그저 수산물을 파는 유통채널이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사고, 어떤 브랜드를 신뢰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소비자와의 가장 가까운 접점이자, 소비문화를 바꾸는 플랫폼이 바로 리테일러라는 점에서 그들의 선언과 실천이 지닌 의미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마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사진
ⓒ MSC
“수산물 소비의 미래는 바다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접점인 리테일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지속가능수산물 소비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대형마트,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은 단순한 유통채널을 넘어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플랫폼이다.”
해외 매장에서 지속가능수산 프로모션 하는 모습
ⓒ MSC
글로벌 표준이 된 ‘선언’
해외에서는 이미 리테일러들이 앞장서서 지속가능수산물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유통 대기업들이 ‘지속가능수산물 구매선언’을 통해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예컨대 미국의 월마트(Walmart)는 모든 신선·냉동 수산물을 100% 책임 있는 방식으로 조달하겠다고 공표했고 이미 99% 달성에 근접했다. 코스트코(Costco)는 자체 브랜드인 커클랜드 시그니처(Kirkland Signature) 제품을 중심으로 MSC 인증과 개선어업(FIP) 참여 수산물의 비중을 확대하여 60% 이상을 책임 있는 수산물로 전환했다.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도 모든 자연산 수산물에 대해 MSC 인증 또는 몬터레이베이 아쿠아리움 지속가능수산물 등급제(Monterey Bay Aquarium Seafood Watch)의 ‘그린·옐로우’ 등급만을 취급한다.
호주 Coles MSC 수산물 판매하는 매대 사진
ⓒ MSC
유럽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웨이트로스(Waitrose)는 올해인 2025년까지 전 수산물을 100% 인증 제품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과거에 발표했었는데 현재 이 약속을 달성하고 소비자로부터 큰 신뢰를 얻고 있다. 테스코(Tesco)는 2030년까지 전체 수산물을 100% 책임 있는 방식으로 공급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참치 제품은 이미 100% MSC 인증을 달성했다. 세인스베리(Sainsbury’s)도 모든 자연산 수산물을 MSC 인증 제품으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며, 2020년 이후부터 75% 이상을 유지하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프랑스의 까르푸(Carrefour)는 전체 수산물의 절반 이상을 인증 제품으로 대체하기 위해 현재에도 계속 노력하고 있고 독일의 알디(Aldi) 와 리들(Lidl)은 저가 할인매장임에도 불구하고 MSC 인증 확대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브랜드 신뢰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스웨덴의 이케아(IKEA) 는 가구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전 세계 매장에서 운영하는 자체 식당과 식료품점을 통해 판매되는 수산물을 이미 100% 지속가능인증 제품으로 전환하였다.
영국 Sainsbury’s
ⓒ MSC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흐름은 뚜렷하다. 일본의 이온(AEON)은 전국 모든 매장에서 MSC와 ASC CoC 인증을 도입하고 자사 브랜드 수산물의 인증 비중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세븐일레븐(7-Eleven) 편의점으로 유명한 세븐앤아이홀딩스(Seven & I Holdings)는 2050년까지 모든 제품 원재료를 100%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조달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세웠다. 호주의 콜스(Coles)는 2015년 이후 자사 브랜드 전 수산물 제품을 100% 지속가능 인증으로 조달하고 있으며, 울워스(Woolworths) 또한 같은 목표를 세웠다. 중국에서도 샘스클럽(Sam’s Club China)을 토대로 MSC 인증 제품을 적극 확대하며 중국 내 소비자들에게 지속가능수산물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일본 AEON 삼각김밥 매대
ⓒ MSC
이처럼 전 세계 100대 주요 리테일러들이 하나같이 지속가능수산물 구매선언을 발표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단순히 일부 선진국이나 특정 기업의 캠페인이 아니라 글로벌 유통 산업 전반에서 자리 잡아가는 ‘새로운 표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선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선언이 있어야 계획이 생기고, 계획이 있어야 실행이 따른다. 글로벌 리테일러들은 선언을 통해 목표를 공개하고, 달성 과정을 수치로 검증하면서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가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지고, 다시 시장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Walmart에서 구매선언을 제품진열장도 공개하고 있는 모습
ⓒ MSC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아직 해외에 비해 규모나 속도는 느리지만, 2020년 이후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백화점등을 중심으로 MSC 인증 수산물 프로모션과 캠페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케아 동부산점에서 진행된 캠페인을 시작으로, 이마트(Emart)가 MSC 지속가능수산물 프로모션을 위해 매장 내 특별 매대를 마련했고, 마켓컬리(Market Kurly)는 인증 수산물 특가전을 진행했다. 홈플러스(Homeplus)는 MSC인증 고등어를 활용한 기획전을 열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
2022년 이후에는 오아시스마켓(Oasis Market), GS리테일(GS Retail), 메가마트(Megamart)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2024년부터는 쿠팡(Coupang), 롯데마트(Lotte Mart) 등도 합류했고 올해인 2025년 현대백화점(Hyundai Department Store)에서는 국내 최초로 MSC 인증 수산물 전용 코너를 충청점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지속가능수산물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현대백화점 충청점 매대
ⓒMSC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접점인 리테일러들이 책임 있는 선택을 제안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지속가능수산물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다. 해외 리테일러들이 보여주었듯 선언이 있어야 목표가 세워지고, 목표가 있어야 실행이 뒤따른다. 선언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계약이다. 소비자는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고, 리테일러는 이를 기반으로 공급망을 개선하며, 어업인들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할 동기를 얻는다.
변화를 만드는 힘은 계획과 선언에서 출발한다. 해외 기업들이 선언을 통해 목표를 세우고, 그 달성 과정을 수치로 공개하며 신뢰를 쌓아온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이제는 ‘선언’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2021년 MSC와 유엔글로벌콤팩트가 공동으로 기획한 구매 동참 챌린지
ⓒ MSC
리테일러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플랫폼이다. 리테일러가 책임 있는 선언을 하고, 소비자가 이에 응답할 때 지속가능수산물은 특별한 선택지가 아니라 당연한 기준이 된다. 지속가능한 수산물 소비는 결국 우리의 식탁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수산물이 내일도 우리의 밥상에 오를 수 있도록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만드는 선순환이 당당한 구매선언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기를 기대한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영국 에버딘대학교 비즈니스스쿨 Global MBA 졸업
부경대학교 기술경영학 박사, 부산대학교 석사, 고려대학교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