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버려지던 절반, 수산부산물의 재발견
페이지 정보

본문

한 마리의 생선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자. 전체 중 우리가 실제로 먹는 부위는 얼마나 될까?
대부분 살점만 먹고, 나머지 부위(머리·뼈·내장·지느러미·껍질 등)는 당연히 버리는 부분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산자원 고갈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현시점. 이 질문은 산업과 정책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수산물 가공 과정에서 전체의 50~80%가 부산물로 처리되고 있고 2024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9백만톤 이상이 육상 가공 단계에서 손실되거나 폐기된다고 보고되었다.

생선의 살코기(필렛)을 발라내기 위해 내장을 제거하는 모습
ⒸMSC
예를 들어 상업어종으로 유명한 대구나 명태는 전체 중 머리·뼈·지느러미 등을 포함한 부산물 비중이 60%나 된다. 연어나 송어류 역시 비계와 껍질 등이 많아 45~60%가 부산물로 처리된다. 참치나 삼치류처럼 육질이 많아 보여도 절반 이상이 먹지 않는 부위다. 즉, 우리가 먹는 ‘살점(필렛)’은 생선 한 마리 중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폐기물 처리 비용과 함께 낭비되어 왔다.

대서양 연어의 부위별 부산물
Ⓒthefishsite.com
세계 인구 중 약 30억 명이 생선을 주요 단백질원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폐기는 곧 세계 식량안보 문제로 직결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식량안보·기후위기·경제적 손실·어업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동시에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수산부산물을 산업페기물로 만들어 낭비할 것이 아니라 미래 식량 시스템을 바꾸는 전략 자산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산부산물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소비해온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창란젓, 아가미젓과 같은 음식문화 뿐만 아니라, 어피, 아가미풀, 자개 등 공예품으로도 활용하여 최대한 버리는 것 없이 활용하였다. 사실 산업에서도 오래전부터 어류 부산물을 활용하여 콜라겐, 오메가 3, 어분, 어유, 어간장 등으로 활용해왔고 갑각류의 부산물의 경우 키토산을 추출하여 다양한 제품에 활용하였다. 심지어 패류 껍질도 친환경 건축자재로도 활용하고 있고 최근 연체류나 해조류에서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추출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건강보조제, 화장품, 펫푸드, 사료, 퇴비, 바이오 소재 등 다양한 산업에서 수산부산물을 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명태 부산물로 만든 전통음식 창란젓
Ⓒ위키백과
하지만 문제는 활용량이 매우 적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부산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전국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112만 톤의 수산부산물 중 20% 이하만 재활용되었으며, 80% 이상이 폐기되었다.
이 상황은 2022년 7월부터 시행된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수산부산물법)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생선 뼈까지 일반 폐기물로 분류돼 플라스틱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지만, 법 제정 이후 부산물의 특성을 고려한 분리·관리 체계가 만들어졌다.
해양수산부는 2023년 ‘제1차 수산부산물 재활용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재활용률을 3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사료·비료 중심에서 벗어나 기능성 식품, 화장품, 바이오 소재 등 고부가가치 활용을 본격화하고 있다.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 부산물로 만든 건강보조제
ⒸMSC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해양관리협의회(MSC, Marine Stewardship Council)’는 오래전부터 전 세계 지속가능어업의 부산물 활용 사례를 추적해 왔다.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뉴스레터와 연례보고서, 현장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살펴보니, 많은 인증 어업이 부산물을 새로운 제품·산업·지역경제 자원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었다. 이 경험은 “지속가능어업은 단순히 물고기를 덜 잡는 것이 아니라 잡힌 물고기를 더 가치 있게 쓰는 것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그 중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사례를 독자들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 부산물로 만든 애견 영양보충제
ⒸMSC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는 2000년부터 MSC 인증을 받았고, 현재 어장의 약 95%가 인증돼어 있다. 이 지역 생물학자들은 다음 해에 풍부한 연어 개체군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어가 상류로 이동하고 산란해야 하는지 계산한다. 개체군 유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장 직원들은 여름철에 타워에 앉아 맑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연어의 수를 세어 보거나, 탁한 물에서는 소나(Sonar)를 사용하여 상류로 유영하는 연어의 수를 체크한다. 이를 통해 어업 허가 또는 중단 여부를 매일 결정한다. 산란과 건강한 개체군 유지를 위해 상류로 유영해야 하는 연어의 구체적인 수치는 수십 년간의 모니터링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한다 이러한 투명하고 견고한 관리 덕분에 연어 부산물 활용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연어 간과 비계에서 오메가-3가 풍부한 고급 어유가 추출되고, 피부는 고급 콜라겐 원료로 공급되며, 단백질 가수분해물은 건강기능식품과 의약보조제 시장에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연어 부산물을 활용한 반려동물 오일 제품도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다.

대구 부산물로 만든 오메가-3 제품
ⒸMSC
알류샨 열도와 베링해의 MSC 인증 대구 어업도 주목할 만하다. 한때 자원고갈과 해수온도 상승 등으로 일부 어장이 폐쇄되기도 했지만 지속가능 어업관리로 회복에 성공한 어업이다. 특히 전기로 대구를 기절시키는 인도적 수확 기술을 도입한 블루노스(Blue North) 선박은 노동 안전과 동물복지를 동시에 개선했다. 이렇게 선상에서 품질이 향상되면서 머리, 껍질, 프레임 등 부산물 활용 가치도 크게 높아졌다. 피부에서 추출한 콜라겐은 화장품과 의료소재로 쓰이고, 프레임(뼈대)에서 얻은 단백질 추출물은 기능성 식품 또는 바이오 소재로 연구되고 있다.

명태 부산물을 이용한 영양제
Ⓒ MSC
알래스카 명태 어업은 세계적으로 ‘Zero Waste’에 가장 가까운 구조를 구축한 대표 사례다. 명태는 머리, 뼈, 껍질, 지느러미까지 사실상 100% 활용된다. 필렛 가공 중 발생 되는 트림과 오프컷은 연육(수리미)이나 패티로 재탄생한다. 간과 내장은 오일 형태로 추출되어 영양제와 산업용 소재가 되고 남은 고형물은 어분과 사료로 전환된다. 피부는 콜라겐과 젤라틴으로 가공되고, 지느러미와 머리는 건조되어 아시아 시장에 육수용으로 수출된다. 명태 오일을 활용한 영양제처럼 MSC 인증 부산물 제품도 이미 상용화돼 있다.
이외에도 노르웨이의 스패랫청어(sprat) 어업은 부산물을 주로 어유·어분으로 가공하고 있고, 피시소스 제품도 상용화된 상태다.

스패랫청어 부산물로 만든 피시 소스
ⒸMSC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제 부산물도 더 이상 ‘버려지는 부분’이 아니다. 화장품, 의약품, 기능성 식품, 펫푸드, 바이오플라스틱, 친환경 섬유, 해안 복원재, 건축 자재까지 그 활용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연어와 새우 부산물로 만든 펫푸드
Ⓒ MSC
이 흐름은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소비와 연결된다.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어업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어업에서 나오는 부산물까지 투명하게 관리되고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순환되는 시스템을 지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가공·유통·관광·교육을 결합하는 6차 산업화까지 확장된다면, 수산부산물 산업은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 창출 효과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수산부산물로 만든 바이오소재 체험, 지역 전통 식재료 상품화, 어촌 문화와 가공기술을 결합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바로 그런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제 버려지던 절반의 수산물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은 단순히 폐기물을 줄이는 환경 정책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안보, 기후변화 대응, 어업경제 회복, 산업경쟁력 확보, 그리고 소비자 신뢰를 동시에 높이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현재 지속가능어업의 화두는 ‘어떻게 잘 잡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잘 관리해서 지속가능하게 잡을 것인가’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화두는 ‘잡힌 생선을 어떻게 더 가치 있게 활용하느냐’가 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바로 수산부산물 활용이 있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