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그들이 바다 속에서 연(Kite)을 날리는 이유- Minesto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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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을 날고 싶었던 항공 엔지니어들
사브(SAAB)는 스웨덴의 자존심이다. 1937년에 설립됐다. 그리펜·드라켄 같은 중형 전투기를 만든 세계적인 항공·방산 기업이다. 항공 역학, 제어 공학, 복합소재 등 고난도 기술을 개발한 엔지니어 그룹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을 활용한 해상통신분야(VDES)까지 업역을 확대하고 있다1).
2007년에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인 예테보리(스웨덴어: Göteborg)에서 사브(SAAB)의 젊은 엔지니어 몇 명이2) 북대서양의 차디찬 바다를 바라보며 발칙한 상상을 했다. “바다 속에서도 연을 날릴 수 있을까?” 그들은 당시 미사일과 드론 제어 시스템을 연구하던 유체 공학 전문가들이었다. 바람을 이용하여 물체를 띄우고, 빠른 흐름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이날 미팅에서 바다에도 ‘하늘의 바람’처럼 흐름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주목했다. 달과 태양의 인력으로 생기는 조류(潮流)와 또, 해류(海流)였다. 이 아이디어는 본래 사브(SAAB)의 조그만 내부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왔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상상이었다. 문제는 사브의 본업이 군수산업이었다는 점이었다. 젊은 엔지니어들이 창안한 ‘바다 속 연 발전기’에 큰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1)사브는 1937년 설립 이후, 항공기 외에도 방산 전자, 레이더 시스템, 무인기, 해양 시스템, 보안 솔루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음
2) 미네스토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6년 사브 엔지니어 매그너스 랜드버그가 이 개념을 처음 발명했고, 그 뒤 앤더스 얀손이 2007년에 Midroc New Technology 및 Chalmers Ventures의 지원을 받아 미네스토를 설립했음, 즉, 미네스토의 창립은 사브 내 기술 연구 단계 → 그 개념을 발전시킨 매그너스 랜드버그 → 상업화 및 조직화 단계에서 앤더스 얀손이 창립자로 나서는 등 전형적인 벤처 기업 창업 과정을 거쳤음

미네스토의 조류 발전 시스템
Ⓒ미네스토 홈페이지(https://minesto.com/) 검색자료
딥 그린, 바다 속에서 연을 날리는 기술
이 개념을 처음 고안한 사브 엔지니어 매그너스 랜드버그(Magnus Landberg) 등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스핀 오프(Spin-off) 방식으로 회사를 차렸다. 세로 설립한 회사 이름은 미네스토(Minesto). ‘작지만 위대한(mini + majesty)’이라는 뜻을 담았다. 목표는 지극히 단순했으나 의미는 매우 컸다. “하늘의 연이 바람을 타듯, 바다의 연이 물살을 타게 하자.” 그렇게 하면 전력은 저절로 생길 것이므로. 바다 속에서 연이 날아다니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스웨덴의 한 혁신기업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미네스토의 핵심 기술이 ‘딥 그린’(Deep Green)이라 불리는 수중 카이트(underwater kite) 발전 시스템이다.
한눈에 보면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날리던 연과 영락없이 꼭 닮았다. 하지만 이 연은 바다 속 50~120미터 깊이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비행한다. 원리는 단순하다. 연의 날개가 바닷물의 흐름(조류)을 받으며 8자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어서다. 이 연은 실제 조류의 흐름(속도) 보다 최대 10배까지 빠르게 이동하면서 부착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기존의 조류 발전기는 대개 ‘빠른 물살(2~3 m/s 이상)’이 있어야 작동한다. 미네스토의 바다 속 연 발전기는 이보다 물살이 훨씬 느린 바다에서도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조용히 흐르는 바다’도 발전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회사가 가장 큰 강점으로 내세우는 혁신기술이다.

미네스토 조류 발전기 모델 해역 설치
Ⓒ미네스토 홈페이지(https://minesto.com/) 검색자료
대서양 페로 제도에서 기술력을 검증 받다.
또한, 미네스토의 발전기는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겨 있고, 해저에 고정되는 방식이다. 해상 풍력과 달리 바다 풍경을 해치지 않는 이점도 있다. 소음과 진동도 적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터빈 입구에는 망을 씌우는 등 물고기나 해양 동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했다. 게다가 사브(SAAB) 출신 엔지니어들은 미사일 제어 알고리즘과 자율비행 기술을 발전기에 접목시켜 연이 스스로 비행 궤도를 조정하도록 만들었다. 이 같은 자동 항법 시스템 덕분에 딥 그린은 마치 수중 드론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전기를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 비행한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조류를 ‘정밀 제어’하는 것이 미네스토의 ‘바다 속 연 발전기’의 핵심 역량이다.

바다 속 연 발전기 작동 원리 및 주요 구성
Ⓒ미네스토 홈페이지(https://minesto.com/) 검색자료
미네스토는 이 같은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2013년부터 여러 가지 시제품 개발과 광범위한 해양 테스트를 거쳤다. 그리고, 2018년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영국의 웨일스(홀리헤드 해저)에서 첫 실증 실험을 마쳤다. 이 테스트에서 “연이 실제로 조류 속을 자율 비행하며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2022년부터는 상업화에 들어갔다. 북대서양에서 조류가 가장 세다는 페로 제도(Faroe Islands)에 미네스토의 ‘드라곤 4 모델(Dragon 4, 100 kW급)’을 설치한 다음, 현지 전력회사(SEV)에 전력을 시험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길이 탄탄대로 만은 아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미네스토는 현재 페로 제도 전력 공급사업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024년에 발전 용량이 대폭 향상된 ‘드라곤 12 모델(Dragon 12, 1.2 MW)’을3) 설치하여 인근의 수백 가구에 청정 에너지를 공급하는 등 조류 발전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전력회사와 공동으로 2030년까지 총 200MW 급 조류 발전 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 페로 제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조류 에너지 기반 전력 자립 국가가 된다. 이와 동시에 미네스토의 기술 신뢰도는 더 높아지고, 사업은 더 큰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4).
3)1.2MW 등급의 조력 발전소 Dragon 12는 2024년 2월에 성공적으로 가동되어 페로 제도의 국가 전력망에 첫 번째 전기를 공급. Dragon 12는 메네스토의 첫 번째 메가와트 규모의 조력 에너지 발전 장치로 폭 12m, 무게 28톤의 바다 속 연은 해저에 고정되어 8자형으로 비행하면서 전력을 생산하고 있음. 이 시스템 가동으로 대규모 상업용 해저 조류 단지 건설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기존에 페로 제도에 시험적으로 설치된 100kW Dragon 4보다 10배 확장된 규모임
4) 이 사업과는 별도로 미네스토는 아시아 진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 2016년에 국립 대만해양대학의 해양에너지 및 전략 연구센터(RCOES)와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2023년에는 대만의 재생에너지 기업(Taiwan Cement Green Energy, TCCGE)과도 조류 에너지 개발 협력 계약을 맺었음. 이 같은 협력을 통해 초기에는 실험 규모의 바다 속 연 발전기 설치를 통해 기술을 검증하고, 이후 상업적으로 운영 가능한 부지를 발굴하는 등 협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임

미네스토 조류 발전기 실증 실험 및 향후 설치 추진 지역
Ⓒ미네스토 홈페이지(https://minesto.com/) 검색자료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미네스토의 앞날이 아직 순탄치만은 않다. 해저에 설치되는 발전 장비의 내구성은 물론, 전력 케이블 관리, 유지·보수 비용 등이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어서다. 또한, 조류 발전은 해양의 환경 변화에 민감한 시스템이다. 신뢰성 있는 장기적인 실증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다. 이 분야에는 이미 적지 않은 경쟁기업이 있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스코틀랜드의 오비탈 머린 파워(Orbital Marine Power), 메이겐 프로젝트(MeyGen Project), 그리고 노바 이노베이션(Nova Innovation) 등과 같은 쟁쟁한 경쟁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 정부는 미네스토 기술을 ‘차세대 해양에너지 솔루션’으로 지정하고, 재정 지원 등 다양한 육성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조류 발전 방식이 백가쟁명식으로 난무하는 가운데, 스웨덴의 사브(SAAB)에서 출발한 항공 유체 역학 기술이 바다에서도 통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경쟁기업 조류 발전 시스템(메이겐 프로젝트(좌)
오비털 머린 파워(우)
Ⓒ구글 검색자료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