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크리스마스 랍스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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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식탁의 주인공은 치킨과 피자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자리에 붉은 랍스터가 자연스럽게 끼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칠면조 요리를 먹었는데 도대체 랍스터는 왜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이 된 것일까? 어부 출신이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랍스터를 잡아 생일상에 올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MSC 호주사무소의 크리스마스 캠페인 포스터
ⒸMSC
사실 랍스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더 길고 풍부하다. 랍스터의 조상은 약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 우리가 주로 먹는 겹발톱 랍스터는 약 1억 년 전 등장한다. 랍스터의 평균 수명은 보통 10년 정도지만, 어획되거나 포식되지 않고 탈피만 안정적으로 계속한다면 최대 200년 이상 살 수 있는 장수 생물이다.

트리스탄다쿠냐의 MSC 인증어장에서 어획된 랍스터(Rock Lobster)
ⒸMSC
랍스터는 인류사에서도 늘 함께 해오고 있다. 기원전 1400년경, 이집트 왕비 하셉수트의 사원 벽화에는 홍해에서 잡힌 랍스터가 진귀한 물품으로 묘사되어 있고, 서기 1세기경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피시우스(Marcus Apicius)가 쓴 요리책인 『De Re Coquinaria』에는 랍스터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다. 1500년대 유럽에서는 왕실과 귀족들만 즐기는 고급 식재료이자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다.

빌렘 칼프(Willem Calf), 뿔 술잔이 있는 정물화, 네델란드(1653)
Ⓒwikiart
하지만 이 화려한 이미지가 항상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미국 식민지 시대의 북동부 해안에서는 폭풍이 지나간 뒤 해변에 랍스터가 최대 60cm 높이로 쌓일 만큼 흔했다. 넘쳐나는 개체 수 때문에 랍스터는 귀한 식재료가 아니라, 오히려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였다. 당시 랍스터의 가격은 콩보다도 몇 배나 저렴했으며, 주로 가축 사료로 사용되거나 죄수와 노예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이었다.
오늘날 집 앞 쓰레기통에 랍스터 껍질이 가득 쌓여 있다면 ‘부의 상징’으로 보이겠지만, 당시에는 정반대로 ‘빈곤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랍스터가 값싸고 천대받는 음식이었기에, 하인 고용 계약서에조차 “식사로 랍스터를 지나치게 자주 제공하지 말 것”이라는 특별 조항이 포함될 정도였다.

1880년대 생산된 랍스터 통조림
Ⓒ Worth Point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19세기 산업기술이 발전하면서 바뀌기 시작하였다. 통조림 제조기술과 철도 운송이 가능해지자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도시에서도 신선한 랍스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랍스터는 다시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뉴욕에는 ‘랍스터 궁전(Lobster Palace)’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랍스터 전문레스토랑들이 생겨났고 프랑스에서는 크림·브랜디·달걀노른자로 만든 ‘랍스터 테르미도르’가 고급 요리의 상징이 되었다. 도시의 부유층들은 랍스터를 연말 파티 음식으로 소비하였고 랍스터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럭셔리 음식”으로 재인식 되었다. 그 결과 1950년대 파운드(약 454g)당 1달러도 되지 않던 랍스터는 2016년에는 12달러를 넘어섰다.

1900년대초 뉴욕의 대표적인 랍스터 궁전, 머레이스 로만 가든(Murray’s Roman Gardens)
Ⓒ위키피디아
하지만 가격 상승과 수요 확대는 곧 남획 문제로 이어졌고 얼마 안가 대다수의 랍스터 어장이 지속가능성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업간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조업 구역 분쟁이 영유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국제사회와 주요 이해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었고 국제적 관리 기준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결국 랍스터 어업들은 ‘지속가능하고 회복가능한 자원·생태계 관리’의 개념을 토대로 전 세계 어업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해양관리협의회(MSC, Marine Stewardship Council)를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MSC 인증 받은 서호주 랍스터
ⒸMSC
그 대표적인 예로 서호주 랍스터 어업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서호주 랍스터 어업은 2000년 세계 최초로 MSC 인증을 받으며 자원관리를 선도했고, 쿼터 제도·최소 크기 제한·산란 암컷 보호 등 모범적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의 지역 공동체 어업도 2004년 개발도상국 최초로 인증을 받은 이후, 생태 보전과 공동체 소득 향상을 동시에 이뤄냈다. 캐나다 역시 2015년 이후 랍스터 산업 전반에 인증 도입이 확대되며 연간 7만 톤 이상을 MSC 인증 어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MSC 인증 받은 캐나다 랍스터
ⒸMSC
전 세계적으로는 연간 11만 톤, 자연산 랍스터 어획량의 37%가 MSC 인증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도전과제들도 있다. 기후변화로 수온 상승으로 서식지와 먹이사슬이 변하고, 북대서양긴수염고래(North Atlantic Right whale) 보호를 위한 규제로 인해 어구 개편과 조업 제한이 강화되면서 미국 메인주의 랍스터 어업은 2022년 MSC 인증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자원관리 문제가 아니라, 해양 생태계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랍스터 어업 통발줄에 위협받고 있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
Ⓒ나무위키
지속가능한 어업의 확산은 생산자의 역할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와 유통업체, 호텔·레스토랑 등 6차 산업의 각 주체가 모두 함께 참여해야 완성된다. 2015년 영국의 Lidl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MSC 인증 랍스터를 대대적으로 프로모션하며 대중적 확산의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샹그릴라 호텔이 서호주산 인증 랍스터를 홍보했고, 한국에서도 콘래드 서울과 더블트리 바이 힐튼이 캐나다산 인증 랍스터를 활용한 연말 메뉴를 내놓으며 ‘지속가능한 프리미엄’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마켓컬리와 인어교주해적단에서도 MSC 인증 랍스터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글로벌 대형마트 Lidl의 MSC 랍스터 홍보 포스터
ⒸMSC
독자 여러분이 올해 크리스마스 식탁에 랍스터를 올릴 계획이라면,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고르는 한 마리의 랍스터에는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수세기에 걸쳐 반복되어 온 인류의 소비 방식, 그로 인해 누적된 자원 위기의 역사, 그리고 이를 바꾸기 위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어업 공동체의 노력이 함께 들어 있다.
만약 내가 선택한 랍스터에 파란색 MSC 에코라벨이 붙어 있다면, 그것은 가족과 연인, 친구를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음식인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바다를 물려주겠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MSC의 지속가능수산물 크리스마스 트리. 랍스터가 꼭대기에 있다.
ⒸMSC
지속가능한 선택은 늘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처럼 소비가 집중되는 시기에는 그 선택 하나가 작은 파문처럼 퍼져 더 큰 변화를 만든다. 올해 크리스마스의 붉은 랍스터가 바다의 경고가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 되도록, 책임 있는 선택이 우리 모두의 식탁 위에서 실천되길 바란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