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여전히 성장하는 도시,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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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의 관세전쟁 때문에 전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의 압박에 주요 교역국들이 내민 카드 중 하나가 보잉(Boeing) 여객기를 구매하겠다거나 반대로 기존 구매했던 보잉 여객기를 인수하지 않겠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만큼 보잉 항공기는 미국을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국가간 거래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주는 상징적인 제품이다.
1916년 윌리엄 보잉이 자기 고향인 시애틀(Seattle)에서 창업한 보잉은 세계 최대의 항공회사이다. 물론 지금은 본사가 전 세계 비즈니스를 위해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 있으나, 최대 공장은 그대로 시애틀에 있고 지역의 엄청난 고용,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시애틀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스타벅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커피 소매상의 중심이지만 커피 한 알도 나지 않는 곳이다. 시애틀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의 고향이자 현재 본사가 있는 곳이다. 최초 뉴멕시코에 설립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본사를 1979년 시애틀로 이전했다. 이 덕분에 애플, 구글 등 주요 IT기업의 연구소가 클러스터 효과를 위해 시애틀에 입지하고 있다. 시애틀은 이처럼 2차 산업부터 4차 산업까지 공존하고 있는 교역, 문화, 관광, 산업의 중심도시이다.
사실 시애틀은 미국 어디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디언 부족의 땅이었다. 현재는 인구 400만 명 정도의 미 서부 4대 도시권 중의 하나였지만, 1851년 백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수콰미시와 두와미시 부족의 땅이었다. 초기 서부 개척으로 다수의 백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서 인디언들과 공존을 하다가, 1900년대 시애틀 대도시권에 항만을 건설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시애틀 대도시권은 퓨젯사운드(Puget Sound)만 내부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의 양항으로 아시아 대륙과 교역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퓨젯사운드 지역에는 올림피아(Olympia), 에버트(Everett), 타코마(Tacoma), 시애틀의 4개 도시가 있다. 이중 지리적으로 유리한 시애틀과 타코마에 사람들이 더 거주하게 되었고, 수심 확보가 용이하여 항만 건설에 유리한 타코마에 항만을 건설하면서 타코마는 교역중심 도시로, 시애틀은 산업중심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는 사실상 연결되어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이지만, 과거에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분리된 도시였다.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미국 도시답게 초기 중국인,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였고 현재도 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미국 도시 중에 하나이다.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항만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건설된 배후 철도망 덕분이었다. 시애틀 대도시권은 해상 교역도시로 급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1873년 북태평양 철도(Northern Pacific Railroad)가 타코마를 태평양 연안의 종착지로 선택하면서 타코마는 무역의 중심지로 더욱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선사가 북미대륙에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항만 터미널인 WUT(Washington United Terminals)가 이곳에 있다. 타코마는 교역과 물류의 중심지로, 시애틀은 기술 혁신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배경에는 항만의 입지와 철도망의 연결이라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타코마항의 WUT 터미널 전경
ⓒ이성우(2024.11.1.)
시애틀 대도시권은 워렌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소유하고 있는 미국 철도회사인 BNSF(Burlington Northern Santa Fe)가 타코마항에서 미국 전역과 캐나다까지 철도를 연결하면서, 미 서부에서 동부까지 가장 빠른 컨테이너 인터모달 운송과 미국 남부와 중부의 곡물을 아시아로 수출하는 벌크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 시점, 워렌버핏은 340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BNSF를 인수하였고, 사양산업으로 인식되었던 물류산업에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시애틀 대도시권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최초 주변 산림에서 생산되던 목재를 제재(製材)하던 임업 도시에서 항만의 성장을 기반으로 제조업이 발달한 2차 산업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고, 교역과 여객이 많아지는 개방적인 도시가 된 이후 사람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 그리고 4차 산업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목재에서 곡물 무역으로, 항공기 제조에서 스타벅스의 도시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의 지식 클러스터로 성장해 나간 것이다.
BNSF의 북미대륙 철도망
ⓒBNSF 홈페이지(검색일: 2025.4.22.)
시애틀의 도시 성장과정은 미국이라는 대형 배후지를 가지고 있었고, 아시아라는 대형 공장이나 시장에 가장 가까운 입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입지에 항만이라는 물류 인프라와 배후를 연결해 주는 철도의 존재가 이 성장을 촉진하는 동인이 되었다.
이 지역은 시대변화에 맞춰 항만, 철도 그리고 공항을 매개로 열린 도시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가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이 도시가 1차, 2차 산업에 정체되지 않고 3차, 4차 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시애틀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부산의 반성이 필요하다. 부산은 시애틀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항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항은 아시아의 마지막 항만으로 북미 대륙에 가장 인접해 있는 항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시애틀은 환경의 변화에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항만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으나, 부산은 소비중심의 항만도시로만 남아있다. 부산은 도시를 이끌어갈 주력산업도, 성장에 필요한 경제 동인도 없이 ‘전국 1위 청년층 인력 유출도시’라는 오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주어진 환경이 달라서 단편적인 비교로 부산의 상황을 지적할 수는 없지만, 제재공장에서 보잉항공기 생산 거점으로, 다시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전 세계 IT의 지식클러스터로 진화하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된 것이 아니라 시애틀 정부와 시민들의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부산은 항만이라는 매개를 통해 도시 내 얼마만큼의 산업을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항만을 중심으로 주변 도시를 포용하여 대도시권의 규모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부산은 IT, 관광, 금융, 교육, 식품, 물류산업 중심, 경남은 기계, 방산, 조선, 물류, 울산은 자동차, 조선, 에너지 중심 등 각자의 산업기반과 특성을 융합해서 상생할 수 있는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부산이 추구하는 글로벌허브도시에 허브가 될 수 있는 명확한 비전, 전략, 그리고 과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산이 가지고 있는 항만, 철도 그리고 공항 인프라와 시너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경제,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시애틀과 같은 진화를 거듭해 온 도시들의 궤적을 면밀히 살펴보고 부산이 배워야 할 부분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