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글로벌 금융무역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락하는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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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도시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한테 미래와 자유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과거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홍콩섬은 1841년 영국 해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다음 해의 1차 아편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난징조약으로, 청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영국에 양도되었다. 이듬해에 영국은 현재 홍콩섬 위치에 빅토리아 시티(Victoria City) 건립과 함께 식민지 관리를 위한 총독부를 신설하였다. 이후부터 1997년까지 150년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도시, 글로벌 무역의 중심, 아시아 금융의 중심, 글로벌 교육의 중심 등 영국이 유럽에서 가진 지위를 대신하는 아시아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을 일국양제(一國兩制)로 유지하겠다는 중국과 영국 간의 약속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최근 홍콩이 가졌던 과거의 영광은 점차 사라지고 단순한 중국 광동지역의 관광도시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유명한 관광도시인 베네치아와 이스탄불의 공통점이 있다. 과거 유럽을 넘어 전 세계 무역과 경제중심지였던 곳이었는데 점차 본 기능은 쇠락하고 그때의 부와 영광이 남겨놓은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도시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결국 홍콩 역시 이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홍콩은 싱가포르와 함께 2000년 초반까지 세계 1위의 컨테이너 항만을 다투는 라이벌 관계였다. 그러나 주변 광동지역의 센젠항과 광조우항의 성장과 함께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시장 경제적인 정책에 실망한 글로벌 기업들의 이탈로 인해 컨테이너 항만의 순위가 2022년 10위로 떨어졌다. 결국 홍콩항의 2023년 글로벌 순위가 11위로 10위권 바깥으로 나가면서 아시아 경제 중심도시의 상징인 컨테이너 물동량의 끝없는 하락세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세계 7위를 유지하고 있는 부산항보다 적은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는데, 한때 홍콩항은 싱가포르항과 세계 1위를 다투면서 환적 물동량 1위 지위를 가졌던 곳이다. 지금은 홍콩이 가졌던 세계 환적항 1위 지위는 싱가포르와 부산항이 차지하고 있다. 저자가 공부를 하기 위해 2003년 홍콩대학에 머물 때 만해도 홍콩은 글로벌 금융, 무역과 물류의 중심도시였고 홍콩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주로 처리하던 콰이충 터미널은 부산항 신항의 개발과 운영을 위한 중요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홍콩항-콰이충 터미널 전경 ⓒ이성우(2023.5.1.)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이양 직후, 여러 차례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홍콩 정부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홍콩 달러의 통화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여야 하였으나, 조치 직후 조류독감의 발병과 주택 공급과잉 위기로 인해 경제적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다행히 첵랍콕 공항개발사업(Airport Core Program)이 6년 간의 공사 이후에 1998년 홍콩 국제공항으로 개항하면서 주변 마카오와 센젠을 연결하는 항만과 공항물류의 중심지로 경제적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초반까지 이어진 사스(SAR)로 알려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 홍콩에 유행했고, 당시 이 기간 동안 홍콩은 금융, 무역 그리고 관광 중심지 기능이 마비되면서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었다. 이후 자연재해나 질병 재해는 잦아들었으나 홍콩 이양 이후의 정치적 논쟁으로 홍콩의 발전은 계속 심각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1997년 이양 이후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민주와 경제 발전의 기반인 “일국양제”라고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양 직후 홍콩의 영국 시절 입법 위원회가 실행하였던 민주개혁을 중국 정부가 번복하면서 점차 정치적 자유의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14년 노란 우산 혁명으로 지칭되는 대규모 자유화 시위가 홍콩 곳곳에서 일어났으나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으로 실패하였고 다수의 자유화 지지자들은 홍콩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위축된 홍콩의 정치 환경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홍콩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던 다수의 글로벌 외자기업들이 거점을 싱가포르, 도쿄, 서울 등으로 옮기면서 홍콩의 경제는 더욱 약화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대신 2018년 10월 홍콩, 마카오, 광동성 주하이를 연결하는 세계 최대 길이의 강주아오 대교를 개통하였다. 총 연장 55km에 이르는 이 교량은 총 공사비 24조 원, 공사 기간 9년에 이르는 대형 사업이었다. 홍콩, 마카오의 글로벌 금융과 무역 기능을 본토의 생산 거점과 연결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게 원래 중국 정부의 목적이었다. 홍콩의 정치적 자유보다 본토와 인프라 연결을 통한 경제적 결속을 더욱 강화하는 것의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도했던 홍콩의 글로벌 금융, 무역, 물류의 중심 기능 부상은 안되고 오히려 홍콩 시민들이 주하이로 쇼핑행렬만 늘어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홍콩이 가지고 있던 유형, 무형의 글로벌 자유도시의 지위를 통한 성장을 간과하다 보니 오히려 홍콩의 경제가 중국 본토 경제의 의존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홍콩이 가지고 있던 정치, 경제적 가치가 훼손되면서 앞에서 언급한 세계 경제의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베네치아와 이스탄불의 궤적을 홍콩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홍콩 도시 전경 ⓒ이성우(2023.5)
한때 글로벌 1위였던 홍콩의 금융, 무역, 물류기능이 쇠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부산의 미래도 걱정된다. 부산은 홍콩만큼 금융과 무역 기능이 크지도 않았고 물류기능만 홍콩과 어깨를 겨눌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부산의 위상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제2대 도시 지위는 이미 내놓았고 청년인구 유출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산업, 생활, 위락 인프라만 구축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유, 미래 등 도시적 가치가 있어야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홍콩은 홍콩이 가지고 있던 도시의 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현재의 쇠퇴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역시 재도약을 위해서는 부산만의 도시적 가치를 되살려야만 현재 떠나고 있는 청년들을 붙잡고 국내와 세계로부터 청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부산시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과 같은 인프라 건설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과거 부산이 가지고 있던 개방성, 역동성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통해 한국과 글로벌 청년들이 일하고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부산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