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젊은 여성 어부들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어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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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촌은 자립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어촌은 더 이상 살기에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들마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향한다. 그래서 어촌은 지금 고령화되고 소멸되어간다. 어촌의 경제도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의 불안정, 남획으로 인한 수산자원의 급격한 감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에서는 귀어·귀촌 등 어촌에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많은 예산을 쓰고 있지만 어촌 사회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문화공동체적 정체성이 원체 강하다 보니 정서적 유대관계 약한 외지인들의 정착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촌 소멸은 점점 가속화 되어간다. 과연 앞으로 우리 어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속절없이 하던 중 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MSC)의 스토리 아카이브가 생각이 났다. 그곳에는 세계 곳곳의 어부들이 MSC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 자신들이 조업하는 어장과 어업방식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했던 인터뷰나 관련기록들이 제법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대대로 이어온 어업을 계승한 젊은 어부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그 지역의 환경과 전통을 아끼고 사랑했다. 또한 생태계 보전, 자원관리가 그들의 생계와 지역의 경제적 풍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독자들은 칼럼 1부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던 서호주의 락랍스터 어부이자 의사인 제임스 패러토어(James Paratore), 5부에서 소개한 스코틀랜드의 지속가능성인증그룹(SFSAG) 소속 대구잡이 존 스티븐(John Stephen)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들도 대를 이어 어업에 종사하는 젊은 어부들이다.
앞 칼럼에서 소개한 이들이 모두 남성 어부들이었기에 이번 칼럼에서는 여성 어부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스웨덴의 안나 베스페르 군나르손(Anna Vesper Gunnarsson)과 미국의 에밀리 테일러(Emily Taylor), 이 두 젊은 여성 어부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스웨덴의 파이크농어 어부, 안나 베스페르 군나르손(Anna Vesper Gunnarsson) @MSC
먼저 소개할 안나 베스페르 군나르손은 스웨덴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인 옐마렌(Hjälmaren) 호수에서 17세대에 거쳐 이어져 오고 있는 파이크 농어(Pike perch) 어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있는 어부이다.
파이크 농어 또는 파이크 퍼치라고 불리는 이 회유성 민물어류는 북부와 중부 유럽의 호수와 강에 서식한다. 수명이 20년 이상이며 20kg까지 성장하기 때문에 인기 있는 상업어종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겨울철 호수의 얼음을 깬 후 그 아래 자망을 설치하는 것이 주 어획방식이지만 여름철에는 통발을 사용한다.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파이크 농어를 조업을 하면서 어업이 지역 사회와 자연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직접 경험하며 자랐다. 또한 매년 그녀의 고향인 옐마렌과 멜라렌(Mälaren) 호수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되는 전통어업 축제인 피스카레팅(Fiskareting)에 아버지와 함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웠다.
피스카레링 축제는 지역의 어업인, 어구 제조, 판매, 수거업체, 경매인, 식당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서로 교류하며 관계를 쌓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행사 기간 동안 어업관계자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활동과 이벤트를 통해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 지역주민들도 모두 함께 어울리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진다.
스웨덴 전통 파이크 농어 요리 ⓒMSC
사실 이 아름다운 옐마렌 호수도 남획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흑역사가 있다. 1960년대부터 남획으로 서서히 고갈되던 어족자원이 1990년대 후반 어획량이 결국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MSC 인증을 목표로 어업개선과 자원회복을 실천하였고 2006년 마침내 내수면 어업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MSC 인증을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안나는 이러한 어업개선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어린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물망과 금지 체장을 늘리는 것, 산란기에 금어기를 설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습했고 그 과정을 통해 어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혼획된 물고기를 놓아주는 안나 ⓒMSC
당시 MSC의 요구사항에 적합한 수준으로 어업개선을 실천하기 위해 옐마렌 어업인단체(Hjälmarens Fiskarförbund)는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였는데 스톡홀름의 과학자들과 자원량, 치어, 혼획어종, 바닷새 사망률 등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혁신적인 연구 프로젝트들을 함께 개발하였다. 또한 인증 과정에서 양륙된 MSC 인증 수산물을 판매할 때 1kg당 소액의 추가 비용을 부가하여 스웨덴 내수면 어업인 중앙협회(The Swedish Inland Fishermen's Central Association, SIC)에서 지속가능어업과 관련된 행정업무를 효과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위탁하였다.
MSC 인증 취득 이후 옐마렌 어업인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으로 수출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기반한 경제적인 활력과 자부심은 어업인들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도전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들은 멜라렌, 베네른(Vänern) 호수 같은 이웃 지역의 내수면 어업인들을 자극하였고 그들도 지속가능어업과 MSC 인증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안나와 옐마렌 어업인들은 이제 지속가능어업과 관련된 개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가 지역 어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들을 준비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자원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업일지를 종이에 기록하는 대신 디지털 시스템으로 변경하였고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대체에너지를 어선에 사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안나는 현재 MSC 스웨덴사무소와 긴밀히 협력하여 옐마렌의 지속가능한 어업 모범사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매년 세계 해양의 날에 MSC의 캠페인에 참여하여 세계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해양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또한, 수산 관련 포럼과 박람회에 연사로 참여하며 지속가능어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MSC 세계해양수산의 날에 캠페인에 동참한 안나 ⓒMSC
안나의 이러한 활동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녀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해양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며 어업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였는데 이것은 전 세계의 환경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최근 안나는 정부와 협력하여 해양생태계를 보전을 고민하는 어업 이해관계자들이 MSC 지속가능어업 해외 우수사례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이 안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지속가능어업 모범사례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또 해외 선진사례를 배워서 지역의 어업에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미국의 알래스카 나크넥지역 홍연어 어부인 에밀리 테일러(Emily Taylor) ⓒMSC
두 번째로 소개할 에밀리 테일러는 미국 알래스카 나크넥(Naknek) 연안의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5세대 홍연어(Sockeye-red salmon) 어부이다. 그녀는 알래스카 원주민으로 고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에 이어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족과 함께 출어를 준비하는 에밀리 ⓒMSC
2000년에 MSC 인증을 받은 알래스카 홍연어 어업은 국제적으로 지속가능어업을 모범적으로 잘 실천하는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데 워낙 국제적으로 수요가 높은 어종이기 때문에 깐깐한 자원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수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MSC 인증 과정에 참여할 당시 에밀리는 십 대였지만 가업의 전통을 이어 나가는 원주민 어부이자 알래스카 홍연어 어업의 영(Young)리더로서 이미 지역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브리스톨만에서 홍연어를 조업 중인 에밀리 ⓒMSC
그녀는 어업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지역의 자연환경, 공동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는 중요한 활동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어업을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문화 보존의 수단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지역의 젊은 세대에게 어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들이 어촌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한 예로 에밀리가 15세였던 2019년 연어 떼가 이동하는 브리스톨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페블 광산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당시 에밀리는 인근의 다이아몬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페블광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도 허술하자 그녀는 알래스카 청소년 환경 행동(Alaska Youth for Environmental Action, AYEA)의 조직가이자 지역 어부로서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때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알래스카 지역 MSC 인증 연어 어장 ⓒMSC
"저는 5세대 어업인으로 매년 여름 나크넥-크비차크 어장에서 조업을 합니다. 지금 제가 소지하고 있는 어업허가증은 한때 제 증조모인 안나 추칸의 것입니다. 브리스톨만은 제 할머니가 자란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적인 연어 떼 중 하나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큰 위협이 되는 페블 광산과의 갈등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지역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맞설 것입니다."
MSC와 함께 지속가능어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동참하고 있는 에밀리 ⓒMSC
당시 그녀가 한 이 말은 많은 미디어에서 인용되었기 때문에 꽤 유명해졌다. 에밀리는 자신이 물려받은 어업허가증과 전통어법을 자신의 후손에 물려주지 못할까봐, 그리고 나중에 지역의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자원을 보전하기 위해 아무런 애도 쓰지 않는 부끄러운 선조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밀리도 안나와 같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수산 관련 포럼과 MSC 캠페인에 참여하며 환경보전과 지속가능어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도 알래스카 원주민 어부로서 환경운동가로서 지역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자원과 전통을 어떻게 잘 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두 여성의 공통점은 전통어업을 계승한 어부로서 또 어촌의 젊은 리더로서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환경과 자원,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혁신적인 접근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활동과 성취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시킨다.
우리 어촌에도 안나와 에밀리 같은 젊은 리더들이 아직 남아있는가? 아직 어리지만 유연하고 도전적인 예비 어업후계자들이 아직 남아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들이 현대적 감각을 통해 어촌을 재해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어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6차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멸되어가는 우리 어촌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영국 에버딘대학교 비즈니스스쿨 Global MBA 졸업
부경대학교 기술경영학 박사, 부산대학교 석사, 고려대학교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