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참치가 AI(인공지능)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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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꼬리에 담긴 맛의 비밀
가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AI 기반 참치 품질 평가 앱’이 그렇다. 카즈히로 시무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홍보회사 덴츠(Dentsu)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5년 전, 그러니까 2019년 초에 그는 퇴근 후 집에서 저녁 TV 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목격하게 된다. 동경 츠키지 수산 시장(築地市場)에서 참치 꼬리의 잘린 면을 보고, 품질과 등급을 메기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몸과 머리에 체화되어 있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지식, 이른바 암묵지(暗默知識)에 따라 참치 가격이 정해지는 경매 시스템이 관심을 끌었다. 꼬리의 횡단면만 보고, 품질을 평가하는 것은 그곳에 참치의 맛을 결정하는 모든 정보가 응축되어 있어서다. 숙련된 참치 중매인(감별사)은 오랜 경험과 감으로, 이 단면에서 참치의 색깔과 몸통의 조직, 지방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판별해 경매 가격을 결정한다. 이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험과 이른바 짬밥이 있어야 되는 일이다.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 초기 화면 ⓒhttps://tuna-scope.com/en/
일본의 참치 경매 모습 ⓒCNN Travel, 2024년 8월 29일 검색자료
덴츠 미래 신사업 아이템
흥미를 느낀 시무라는 시장 조사를 통해 ‘참치 꼬리 감별법’이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참치 감별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전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동경도 통계에 따르면, 참치 감별사는 1989년 이후 5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덴츠가 광고회사답게 튜나 스쿠프(Tuna Scope)를 개발하고, 시판에 들어갈 때 대대로 내려온 장인 정신을 계승한다는 홍보 전략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는 암묵지를 통한 감치 감별보다는 AI 기반의 현대화된 품질 평가 솔루션을 개발할 경우 정확도도 높이고, 최근의 트렌드에도 맞아떨어질 수 있어서다. 이런 장점을 크게 강조한 사업 계획서를 만든 시무라는 회사의 승인을 받고, 덴츠 미래사업팀의 신사업 아이템으로 본격 추진했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튜나 스쿠프 개발팀에 참여하는 인력이 30명이 넘는 매머드 팀으로 꾸려졌다는 점이다. 덴츠가 이 사업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튜나 스쿠프 스마트 폰 앱 모습자료 ⓒ일본 덴츠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
참치 꼬리 표본 5000개 데이터 분석
튜나 스쿠프의 핵심 기술은 스마트폰으로 참치 꼬리의 횡단면을 찍어 품질을 5가지 등급으로 나누는 능력이다. 이 솔루션을 AI 기반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참치 장인이 참치 꼬리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별사마다 각각 암묵지가 다르기 때문에 딥 러닝을 통해 정형화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덴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큰 참치 회사인 소지츠(Sojitz)와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개발에 나섰다. 이때 소지츠에서 제공한 참치 꼬리 횡단면 표본 데이터가 무려 5,000개가 넘었다. 이는 각각 다른 5,000개의 참치 정보가 참치 품질 식별 알고리즘에 들어가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9년 첫 시제품 평가에서 튜나 스쿠프는 35년 경력의 참치 감별사 품질 평가 능력의 85%를 맞췄다. 최근에는 학습능력이 더 높아졌다. 숙련된 장인이 최고 품질이라고 판정한 참치를 놓고 봤을 때 정확도가 9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튜나 스쿠프 앱 인식 방법 및 참치 꼬리 횡단면 ⓒ일본 덴츠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
AI 참치 브랜드 상품화 모습 ⓒ일본 덴츠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
‘AI 브랜드 참치’로 스시집 대박
튜나 스쿠프는 2019년 3월에 정식으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앱을 통해 최고 품질을 받는 참치를 ‘AI 참치(280엔・세금 별도)’ 라는 브랜드를 붙여 회전 초밥집 하코타에서 처음 판매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5일 동안 1,000개 접시가 매진되었다. 고객의 90%가 같은 가격대의 다른 참치보다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2020년 2월부터는 ‘TUNA SCOPE 인증 마크’가 달린 참치가 뉴욕, 싱가포르, 도쿄 등 세계 3개 도시에서 팔리고 있다. 올해 8월 말에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를 검색한 결과, 57개 국가의 461개 레스토랑에서 AI 참치를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판매량은 무려 7,000만 개가 넘었다. 언론 등 각종 미디어 노출 건수도 1,500건에 달했다. 게다가 상복도 이어졌다. 2019년에 클리오(Clio)에서 상품 혁신상을 받은 데 이어 2020년에 레드닷 디자인 상과 굳 디자인 상을 각각 수상했다. 2021년에는 iF디자인 상도 받았다. 세계에서 유명한 디자인 상을 모두 받은 셈이다. 일본 정부도 거들고 나섰다. 2020년 3월에 수산청의 '수산물 수출확대 연계추진 사업'에 선정됐다. 덴츠는 이 사업 선정을 계기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현재 튜나 스쿠프를 활용할 파트너를 모집하는 등 마케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기술을 농업과 산림 등 다른 분야까지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광고회사가 우연한 기회에 만든 AI 참치 앱 하나가 일본 참치 시장은 물론 세계 수산시장의 소비 형태도 바꾸고 있다.
수퍼 마켓 등 시장에서 판매되는 AI 참치(마구로) ⓒ일본 덴츠 튜나 스쿠프 홈페이지
최재선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