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역사를 품은 유럽의 바다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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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손꼽히는 피시 앤 칩스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한때 전 세계 바다를 호령했던 영국의 위세에 비해 소박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맛에 있어서도 특별히 두드러지는 점이 없다는 게 이유다. 튀긴 생선과 감자튀김은 어째서 영국 음식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피시 앤 칩스의 시작은 19세기 중엽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 나라였다. 어업에 있어서 증기 트롤어선이 도입되면서 연안뿐만 아니라 원양어업도 가능해져 어획량이 급격히 늘었고, 전국 곳곳에 깔린 철도가 항구와 도시를 이으면서 신선한 생선의 공급이 보다 원활해졌다. 값싼 생선이 공급되자 상업에 종사하던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조리법을 이용해 생선을 튀겨 저렴한 길거리 음식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도시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마침,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북서부에서 생산된 감자도 도시의 주요 식량원이 되면서 튀긴 생선과 감자튀김은 20세기 초 노동 계급의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피시 앤 칩스는 주로 대구, 해덕, 가자미 등 흰 살 생선을 조미한 튀김 반죽을 묻혀 튀겨내는 게 원칙이다. 푸른 살 생선을 튀기면 비린내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스 없이 주로 소금이나 몰트 식초를 뿌려 간과 신맛을 더 한다. 피시 앤 칩스의 매력은 튀긴 음식이 주는 고소하고 기름진 맛도 있지만 당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칼로리가 높은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다는 점, 바쁜 일상에서 간편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최초의 테이크아웃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산업화의 중심이었던 영국은 인근 프랑스와는 달리 음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값싸고 간편한 식사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 어려웠던 당시 사람들에게 저렴한 테이크아웃 음식은 훌륭한 대안이었다.
185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피시 앤 칩스는 이후 100년 동안 도시 노동자들의 간편식으로 사랑받다가 미국식 치킨, 카레나 케밥 등 수많은 경쟁자가 등장하자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너무나 많은 외국 음식들이 홍수처럼 도시에 넘쳐나자 영국인들은 음식에 있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아낼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피시 앤 칩스가 그 대상이 됐다. 영국인 특유의 자학적 냉소와 더불어 음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함께 결합한 상징물인 셈이다.
영국 피쉬 앤 칩스 ⓒ장준우
포르투갈 – 바칼랴우(Bacalhau) 요리
포르투갈에는 이런 말이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365일 동안 다른 대구 요리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대구를 사랑하노라고. 유럽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일찍이 먼바다로 나가 대구잡이에 종사했다. 유럽에서 대구잡이는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바다를 접하는 나라라면 중요한 산업 중 하나였다.
지금의 스웨덴 영국 등이 위치한 북동 대서양은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대구 어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들은 일찍이 대구를 바위에 널어 말렸는데 이렇게 하면 운반이 편하고 보존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기름기가 별로 없는 대구였기에 말리는 게 가능했다.
원양에 나선 어부들은 대구를 잡아 배 위에서 손질해 소금을 치거나 해풍에 말려 항구로 대구를 가져왔다. 중세 유럽에서 절이거나 말려 가공한 대구는 인기 있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 기간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대구를 바칼랴우(bacalhau), 스페인에서는 바칼라오(bacalao), 이탈리아에서는 바칼라(Baccalà)로 부르는데 흥미로운 건 이들 나라에서 대구를 부르는 명칭은 생대구가 아닌 말리거나 염장한 대구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생물을 그대로 요리하는 우리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말린 대구를 물에 불리거나 염장한 대구의 소금기를 제거한 후 요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포르투갈의 시장이나 상점엔 널빤지처럼 넓게 펴서 말린 바칼랴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이나 우유에 며칠 동안 담가 불리게 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렇게 복구된 대구는 생대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무미하고 부스러지는 생대구의 맛에서 탄력 있고 감칠맛 있는 맛으로 변모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지역에 따라 바칼랴우를 굽거나 볶고, 튀기고, 삶고, 짓이겨 다양한 요리로 만들어낸다. 우리 식탁에 쌀밥이 빠지지 않듯 대구요리에도 감자가 빠지지 않는다. 대구처럼 감자도 튀기거나 굽거나 삶는 등 여러 조리법으로 대구와 함께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포루투칼 바칼랴우(bacalhau) ⓒ장준우
네덜란드 – 하링(Haring)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청어 뼈 위에 건설되었다는 말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청어를 많이 먹기도 했지만, 한때 전 세계 바다에서 활약한 네덜란드 상단을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청어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어는 대구와 함께 중세 유럽인들에게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특히 유럽의 북단 발트해 인근에서 청어가 풍부하게 잡혔다. 청어는 지방이 풍부한 생선이라 해안가에 살지 않는 이상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 신선한 상태로 먹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청어가 많이 잡히는 항구에서는 잡은 청어를 소금이나 식초에 절이거나 훈연시켜 보존성을 높인 후 내륙으로 운송했다. 14세기 경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인 홀란트와 제일란트의 어부들은 청어를 보존하는 데 있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바로 신선한 청어의 아가미와 내장 일부를 제거 한 채 소금물에 담가 보존하는 기빙(Gibbing) 방식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기술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신선한 생물 청어에 가까운 품질의 염장청어가 내륙으로 운반될 수 있었고, 내륙사람들은 새로운 맛에 환호했다.
15세기부터 네덜란드는 청어를 유럽 각국에 수출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상단이 유럽을 너머 전 세계를 누비고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게 된 것도 청어 무역으로 쌓은 자본과 무역망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에서는 과거 방식대로 절인 청어인 마트여스하링(maatjesharing)을 맛볼 수 있다. 이 기빙 방식으로 만든 청어를 생으로 먹는 ‘하링(Haring)이 바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네덜란드 어디에서나 절인 청어를 즉석에서 손질해 그대로 먹거나 빵에 끼워 길거리 노점에서 팔기도 하고 수산식품점에서 주문해 먹을 수도 있다. 뼈와 내장을 제거한 청어는 보기엔 그리 식욕이 돋지 않을 수 있지만 맛은 의외로 훌륭하다.
지방이 가득한 등 푸른 생선의 풍미와 마치 질 좋은 생치즈를 먹는 듯한 발효에서 오는 감칠맛이 매력적이다. 과메기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메기와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잘 숙성된 참치 뱃살과 등 푸른 생선을 함께 맛보는 듯한 맛이라고 할까. 네덜란드를 방문한다면 꼭 맛봐야 할 진미임에는 틀림없다.
네덜란드 하링 ⓒ장준우
장준우
셰프&푸드라이터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수료하고 시칠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해외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와인바 어라우즈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