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사라진 대구,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스코틀랜드의 해결책
페이지 정보

본문
대구(大口)는 이름처럼 큰 입을 가진 식욕이 엄청난 물고기다. 이렇게 가리지 않는 식성 덕분에 번식력도 높다. 스무 살 이상 살 수 있도록 진화되었고 크면 클수록 알을 더 많이 낳는데 1미터 크기의 대구는 한 번에 3백만 개, 1미터 30센티미터의 대구는 9백만 개의 알을 한 번에 낳을 수 있다. 대구는 저서에서 무리를 지어서 사는 냉수어종으로 평소 느리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래서 근육조직이 거의 없고 혈선이 발달하지 않아 비린 맛이 없고 간에 기름을 축적하기 때문에 지방함유가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과거부터 꾸준히 사랑 받아온 세계인의 생선이었다.
대서양 대구(Atlantic Cod) ⓒ미국해양대기청(NOAA)
대구는 600년대 등장한 바이킹들로 인해 본격적으로 어획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 거리를 항해하거나 이웃 나라를 약탈할 때 말린 대구를 뜯어 먹으면서 이동해 기동성을 높였다고 한다. 그리고 남는 대구는 교역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한 계기로 대구를 먹는 음식문화가 유럽으로 서서히 확산되었다. 대구는 자원량이 풍부하고 어획하기도 쉬운 습성을 가진 탓에 흔하고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었다. 19세기 미국 남부 농장의 노예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된 것도 염장해서 말린 대구이고 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스트릿 푸드 피시앤칩스도 대구가 원료이다. 21세기 초 일반 가정에서 아이들을 위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나온 피시핑거, 피시스틱도 주원료가 대구이다.
대구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냉수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북태평양의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북대서양에는 그랜드뱅크스와 조지스뱅크 그리고 유럽에는 북해, 발트해, 바렌츠해 등 이 주요 서식지이다.
케이프코드(Cape Cod) ⓒ위키피디아
그 중, 조지스뱅크가 있는 케이프 코드는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대구어업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케이프 코드는 매사추세츠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주도인 보스톤도 1650년대부터 대구 교역 중심지가 되었다. 교역이 활성화되자 보스톤항을 중심으로 가공공장들도 많이 생겨났다, 대구를 가공하고 남은 부산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거름으로 쓰여 주변 농토를 기름지게 바꿔 놓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구 교역으로 보스톤은 점점 부유해졌고 신흥 부자들도 많이 생겼다. 지금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사당에 가면 나무로 만든 대구조각상이 천장에 걸려있다.
신성한 대구 (Sacred Cod) ⓒ위키피디아
대구 생산량과 교역량은 그 이후로도 300년 넘게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1880년대 영국에서 커다란 그물을 사용해 바다 밑바닥을 끌고 다니며 물고기를 잡는 트롤어선이 발명되면서 생산량은 더 급상승했다. 1924년 냉동식품 처리기술이 개발되면서 내륙 깊숙한 곳까지 유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났고 어획량 또한 계속 증가했다. 2차 대전 이후 도입된 수중음파탐지기는 어선들이 대구 떼를 찾아 바다 속을 샅샅이 뒤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잡힌 대구는 냉동선의 발명으로 장기간 보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조업시간과 어획량은 더 늘어났다. 어디를 가던 대구가 넘쳐나니 가격은 오히려 폭락해 버렸다.
그랜드뱅크스가 있는 뉴펀들랜드 해변 바닥에 대구 말리는 모습 ⓒ위키피디아
1960년대 어부들은 대구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 어획한 대구를 그대로 부두 밑으로 밀어버릴 정도였다. 대구를 보관하는 비용보다 새로 어획해서 잡는 비용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구는 너무나 흔했고 언제든 쉽게 잡을 수 있는 생선으로 각인되어 있었고 과학자들은 대구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개체 수 회복이 빨라 얼마든지 잡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1990년 중반 급격히 감소한 대서양대구 어획량 (단위 백만톤) ⓒ위키피디아
하지만 대구는 사라져 버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랜드뱅크스, 조지스 뱅크스의 대구어장은 폐쇄되었고, 전 세계 다른 대구어장들도 차례로 폐쇄되었다. 바이킹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북해어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1970년대 초 27만 톤을 기록한 대구 어획량은 2005년 간신히 3만 톤을 넘길 만큼 심각하게 고갈되었다. 결국 대구어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캐나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대서양대구 어획량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단위 백만톤) ⓒ위키피디아
아이슬란드는 대구자원이 급격히 줄어들자, 자국 어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트롤어선의 접근을 금지하였다. 결국 연·근해도 일종의 공유지로 인식했던 이웃 국가들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세 차례의 국지전을 치르게 되었다. 1975년 아이슬란드는 자국 해안으로부터 200해리 내에서 타국 어선들은 허락 없이는 조업할 수 없다고 선포하였고 이것은 배타적 경제 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다.
이렇듯 대구어장의 붕괴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동안 수산자원은 무한하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자원을 착취할 수 있는 역량이 드디어 자연 회복력을 넘어버린 것이다. 바다와 같은 공유지나 수산자원 같은 공유자원은 이제 관리 방안이 없으면 결국 서로 착취하려는 이기심 때문에 고갈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피터헤드(Peterhead) ⓒ해양관리협의회(MSC)
이러한 자각 속에 북해어장의 소멸 직전인 대구자원을 조금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EU 수산위원회와 노르웨이, 영국 등이 '대구 자원 회복계획(Cod Recovery Plan)'을 발족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시작했다.
어부들도 과거 무분별한 어획에 대해 반성했다. 그리고 프레이저버러, 피터헤드와 같은 스코틀랜드 지역 어업단체를 중심으로 지속가능어업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연간 어획량을 꾸준히 감축시키고, 미성어를 어획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물을 새로 디자인했다. 산란장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조업을 금지했다. 또한 CCTV 카메라를 사용하여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어선에 도입했다. 그 결과 2017년 북해 대구 자원량이 2006년 대비 약 4배 가까이 회복되었다. 다른 어종들도 대구와 같은 운명을 겪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지속가능어업과 기술혁신에 앞장섰던 지속가능성인증그룹(Scottish Fisheries Sustainable Accreditation Group, SFSAG)의 어부들은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어획하는 것이 어부들에게도 궁극적인 이익이 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라며 과학적인 자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코틀랜드 지속가능성인증그룹(SFSAG) 소속의 어부인 존 스티븐(John Stephen) ⓒ해양관리협의회(MSC)
이제 스코틀랜드어업은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대서양 대구(Atlantic Cod) 대신 해덕대구(haddock)나 은대구(Sablefish), 작은대구(saithe) 같은 사촌들을 어획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어업인들 피시앤칩스의 원료로 이러한 사촌들이 대구 대체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자자원고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2010년부터 해양관리협의회 (Marine Stewardship Council, MSC) 어업 인증을 도입하여 어장을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SFSAG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어업인들은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사전 예방적 관리 전략을 채택했다. 혼획을 최소화하여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자원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혁신을 시도했고 AI 기반 로봇 선별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특히 트롤 어구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헤리엇와트 대학교(Heriot-Watt University)와 함께 카메라 인식시스템과 게이트 시스템을 연구하였고 이를 통해 그물로 들어오는 개체의 크기와 종을 식별하고 어획해서는 안 되는 개체를 방출할 수 있는 스마트 트롤 로봇 선별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SFSAG의 많은 어선들이 애버딘 대학교(University of Aberdeen), 스코틀랜드 어업혁신기구(Fisheries Innovation Scotland), 스코틀랜드 어업인단체(Scottish Fisherman’s Organisation)의 산학협력을 통해 개발한 어플리케이션인 BATmap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앱은 목표 어종 및 혼획 어종의 어획량 그리고 어선과 조업 위치를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조업 구역 내의 어획량이 제한량을 초과하면 다른 어선에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 해당 구역에서 조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코틀랜드 어업의 BATmap ⓒhttps://info.batmap.co.uk/
SFSAG의 마이크 파크(Mike Park) 회장은 "실시간 보고 내역과 정보 공유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산자원을 안전하게 관리합니다." 라고 이러한 시스템 개발로 인해 어업인들이 어획량과 혼획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다른 어선과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MSC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어구가 서식지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SFSAG는 북해어장 해저지형을 조사하고 어업 활동이 서식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러한 조사활동을 통해 스코틀랜드 북동부 연안에서 큰바다조름(Tall sea pen)의 서식지가 발견될 수 있었다. 큰바다조름은 최대 2m까지 자라는 냉수성 산호의 일종으로, 랑구스틴(langoustine)과 같이 굴을 파는 어종에게 중요한 서식지로 작용한다. 큰바다조름은 다른 바다조름 종과 달리 생태계 교란을 받으면 해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구에 의한 피해에 특히 약한 취약생태계(Vulnerable Marine Ecosystem, VME)로 분류된다. 어업인들은 자발적으로 해당 지역에의 조업을 즉시 금지시켰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어업관리기관(Marine Scotland)을 통해 규정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SFSAG의 지속가능어업을 위한 노력은 어업인, 정부, 과학자, NGO, 소비자단체, 글로벌 유통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력이 어떻게 공유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지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렇게 잘 관리된 수산물은 에코라벨과 철저한 이력 추적을 통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효율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MSC 인증 해덕대구를 사용하는 스코틀랜드의 피시앤칩스 레스토랑 ⓒ해양관리협의회(MSC)
지금 우리 앞바다의 수산자원도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명태어장 붕괴를 경험했다. 이제 어장을 공유지로 방치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성공적인 어업 관리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기술 혁신을 통해 어획 방식을 개선한 것이 스코틀랜드 어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우리 어업에도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 어업이 6차 산업으로 도약하려면, 단순히 생산에 그치지 않고 가공, 유통,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즈니스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원료공급에 대한 기반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이다.
스코틀랜드의 사례는 바로 이러한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결합될 때, 우리 어업은 견고한 기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6차 산업으로 나아갈 것이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영국 에버딘대학교 비즈니스스쿨 Global MBA 졸업
부경대학교 기술경영학 박사, 부산대학교 석사, 고려대학교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