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김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김으로 억만장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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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스낵 김 생산업체 성공 스토리
나는 블랙 페이퍼가 아니다
김이 대세다. 워낙 뜨다 보니 사방 천지에서 잭팟이 터지고 있다. 김 수출만 해도 그렇다. 10년 전인 2013년의 김 수출액은 2억 3,100만 달러였다. 지난해에는 7억 9,100만 달러(약 1조 593억 원)를 달성했다1). 2010년에 1억 달러를 넘어선 뒤 김 수출이 끊임없이 늘어 사상 첫 7억 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1)우리나라는 김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023년에 해양수산부 주도로 제1차 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음.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냉동 김밥도 터졌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다 보니 구미시 김밥 수출업체 ‘올곧’은 공장을 증설했다. 경남 하동에 있는 김밥 회사 (‘복을 만드는 사람들’)는 ‘11:45분, 헝그리 타임(Hungry Time)’이라는 스마트 스토어를 여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김 열풍에 방송인 최화정도 가세했다. 최근 오픈한 유튜브 채널에 다이어트용 오이 김밥을 올렸다. 조회 횟수가 순식간에 수백만을 넘었다. 김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이 소비까지 늘어났다. 곁들여 올려 먹는 ‘땡콤장’은 품절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 정도면 김은 더 이상 서양인이 비하하는 블랙 페이퍼가 아니다. 당당한 건강식품이다.
우리나라 김 양식장(지주식) 모습 ⓒ김준 박사(전남광주연구원) 영남일보 기고
김 산업 육성 기본 계획 내용 및 김 제품 ⓒ해양수산부, 제1차 김산업 진흥 기본계획(2023년~2027년)
군밤을 팔다가 스낵 김으로
이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볼 차례다. 태국에서 스낵 김을 처음으로 선보인 타오 카이 노이의 창업자, ‘잇티팟 피라데차판(Itthipat Peeradechapan)’이다. 1984생인 그의 성공 스토리는 태국에서 ‘빌리어네어(일명 Top Secret: Wai Roon Pan Lan)’ 라는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17살 어린 나이에 태국 상공회의소 대학교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중도에서 대학을 포기하고 만다. 당시 건설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IMF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떠안은 빚이 자그마치 175만 달러, 한화로 23억 원 정도였다. 잘 나가던 집안의 장남에서 하루아침에 가장이 된 그는 돈벌이에 나섰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DVD 플레이어 판매였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 마니아였던 그에게는 무척 익숙했던 아이템이었다. 여기서 그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창업은 군밤 장사였다. 테스코 로터스 같은 대형 쇼핑몰에 매대를 차려놓고, 구운 밤을 팔았다. 이 사업에서는 제법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한때 판매점이 30개로 늘어났을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문제는 밤을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난다는 점이었다. 고군분투했으나 끝내 이 사업도 접고,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김 과자, 이른바 스낵 김에 손을 댔다. 그가 마침내 성공의 여신과 마주친 순간이었다.
타오 케이 노이 창업자 잇티팟 피라데차판(Itthipat Peeradechapan) ⓒBangkok Post
고객이 원하는 맛으로 승부
잇티팟은 이 스낵 김에서 승기를 잡았다. 군밤 매출액이 감소하면서 실의에 빠져있을 때 여사친이 튀긴 김을 먹여주면서 이게 통할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줬다. 그가 그날 처음 맛본 튀긴 김은 우리나라식으로 보면, 김부각 같은 것이었다. 그 이후 스낵 김 사업은 모든 게 전광석화였다. 아버지, 엄마 등 가족이 모두 등판했다. ‘타오 카이 노이(태국어로 작은 보스)’라는 회사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다. ‘빨간 옷에 댕기 머리 모자’ 로고는 어머니가 대학교 디자인 전문가와 협업하면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2006년에 스낵 김 공장을 차렸다. 첫 제품인 튀긴 김 스낵 브랜드, '타오 카이 노이'를 세븐 일레븐에 입점시키면서 그의 비즈니스는 순풍에 돛을 달았다. 태국인이 선호하는 맛과 품질로 승부를 걸고, 제품을 표준화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호사다마도 있는 법이다. 2011년 태국에서 엄청난 홍수사태가 발생하면서 공장이 침수되고, 스낵 김 생산도 중단됐다. 그는 3개월 동안 공장에서 숙식하면서 재기에 매달렸고, 결국 2018년 포브스지 ‘태국의 50대 부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당시 잇티팟의 순자산은 6억 달러로 평가됐다. 태국에서 처음 시작된 스낵 김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타오 카카이 노이 홈페이지 모습 ⓒtaokaenoiglobal
그의 성공 비결은 이것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성공 비결을 여러 가지로 꼽는다. 창업자 잇티팟 피라데차판의 끈기와 혁신, 그리고 현지화 전략이 핵심이다. 특히 그의 칠전팔기 창업 스토리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타오 카이 노이의 성장 전략도 시사점이 많다. 해조류 스낵의 성장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덕목인데, 태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스낵 김의 원료가 되는 김(물김, 원초)이 자라는 데 적합하지 않다.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스낵 김 원료는 대부분 중국산과 한국산이다. 남의 나라에서 김을 들여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들었다.
현지화 전략과 맞춤형 제품 개발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이 회사는 세계 40개 국가에 스낵 김을 수출하고 있다. 철저하게 각국의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춘 다양한 맛과 형태의 해조류 스낵을 수출하는 전략을 고수한다. 특히 덩치가 큰 중국 시장 공략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 매출의 40%가량이 중국에서 나오는 이유다.
스낵 김 종류 ⓒtaokaenoiglobal
그가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온·오프라인 유통망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판매 채널을 계속 확장하면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가맹점이 많은 슈퍼마켓 입점을 늘리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손쉽게 자사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과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최근 타오 카이 노이는 50가지가 넘는 스낵 김 제품군을 더욱 다양화했다. 비타 믹스와 밀크티와 같은 기능성 음료를 새롭게 출시하는 등 포트폴리오 확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레스토랑과 프랜차이스 사업을 전담하는 ‘타오 카이 노이 랜드’도 설립했다.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범버록이라는 회사도 출범시켰다. 지금까지 이룩한 스낵 김 성공신화를 다른 분야까지 이어 나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향후 스낵 김 시장은 매우 긍정적이다. 2023년에서 2028년 사이 스낵 김 시장은 연평균(CAGR) 11.27%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까지 시장 규모가 14억 1,343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저 칼로리 스낵에 대한 관심 증가, 그리고 비건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이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힘이다.
앞으로 세계 김 산업의 관점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우리나라의 김 수출액이 언제 10억 달러를 돌파할지, 그리고 세계 스낵 김 시장을 평정한 태국의 타오 카이 노이 성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여부다. 지금 이 시각, 김은 금이 됐다.
타오 카이 노이의 신규 비즈니스 브랜드 ⓒtaokaenoiglobal
최재선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