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학 피난처 마저 불타오르다. 지난 여름, 제주 바다 산호 백화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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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산호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 산호가 살고 있다. 물속에 존재하기에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산호라고 하면 대개는 맑고 얕은 열대 바다의 산호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산호는 수천 미터 바닷속에도, 꽁꽁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극지방에도 살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바닷속 곳곳에도 산호가 살아간다. 그중 제주도 남쪽 서귀포 앞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산호군락이 가장 크게 발달해 있다. 열대 바다에 사는 딱딱한 돌산호가 아닌, 부드러운 몸체를 가진 연산호가 주를 이루는 제주의 산호군락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하여 천연기념물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 바다 연산호 군락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빛단풍돌산호의 백화현상 촬영 중. 뒤로 보이는 하얀색도 모두 백화현상이 일어난 빛단풍돌산호이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산호는 동물이다. 딱딱한 몸체에 뇌 또는 그저 돌처럼 생기거나, 꽃과 나무를 닮아 있기도 해서 동물이라고 하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가까이 살펴보면 산호는 뻐끔뻐끔 촉수를 열심히 움직이며 먹이를 잡아먹기도 하고, 알을 낳아서 번식하기도 하는 동물이다.
태양 빛이 강하게 비치는 열대 바다는 제주 바다와 달리 주로 돌산호류(석회질의 딱딱한 몸체를 가진 산호)가 우점하고 있다. 이 돌산호류가 쌓이고 쌓여 산호초를 형성하고 있다. 돌산호는 자신의 몸속에 갈색이나 초록색을 띠는 공생조류를 지니고 있는데, 이 공생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산호에 영양을 공급한다. 이상 고수온, 오염과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공생조류가 산호 몸체에서 빠져나간다. 산호는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하얀 석회질 골격만 남은 채로 굶어 죽게 되는데, 이를 백화현상이라고 한다. 미국 해양대기청은 세계적 대규모 산호 백화현상이 1998년, 2010년, 2014~2017년에 이어 지난 2024년 4월 4번째로 발생했다고 발표했고, 미국 산호초감시기구는 지난 2023년 1월 이후 전 세계 산호초의 84%에서 백화현상이 일어났다고 조사했다.
세계의 언론이 왜 이렇게 백화현상과 산호의 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산호가 사라지면 바다 생태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복잡한 산호 군락의 사이사이 물살이*들이 알을 낳고(산란장), 작은 생명들은 산호의 품에서 안전히 살아간다(서식지, 피난처). 산호 자체가 물살이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여(먹이원) 작은 생명들이 모여든다. 먹이사슬에 의해 점점 더 큰 생명들이 모여들며 거대한 바다 생태계가 만들어지며 산호 군락은 바다 생물다양성의 핵심 기반을 형성한다. 그러니, 산호 군락은 바로 바다의 시작이며, 백화현상, 질병 등의 이유로 산호 군락이 사라지면 바다 생태계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물살이: 물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 물에 살아가는 생명을 식용의 관점으로 부르는 이름
‘물고기=물+고기’가 아닌 ‘물살이’라고 부르자는 운동을 따름
피난처마저 불타올랐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광범위한 백화현상 일어나.
온대 바다인 제주 바다는 열대/아열대 바다 산호들의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영지버섯 모양으로 암반 지대에 편평하게 자라는 빛단풍돌산호와 암반에 페인트를 뿌려 놓은 듯 울퉁불퉁 자라나는 그물코돌산호와 같은 아열대성 돌산호들은 점점 따뜻해지는 제주 바다에 새롭게 영역을 넓혀가는 산호이다.1) 제주 바다의 깃대종인 연산호와 서식지 경쟁을 벌이며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에 조금 경계심이 일기도 하지만, 이 산호들도 본래 살고 있던 열대 바다가 너무 뜨거워져 제주 바다로 피난을 온 셈이니 미워할 수는 없는 생명이다. 그런데 일평균 수온 30도를 넘어서는 역대급 수온을 연신 기록하며 끓어올랐던 2024년 여름, 피난 온 제주 바다마저도 너무 뜨거워 백화현상이 발생했다.2)수심 10m 이내권 돌산호가 거의 모두 하얗게 변했다. 빛단풍돌산호, 그물코돌산호, 거품돌산호, 나무돌산호류 등 종을 가리지 않았다. 오래된 지역 다이버들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외신으로만 듣던 대규모 백화현상이 지난해 제주 바다에서 일어난 것이다.
1)제주뉴스 20210614 제주 기후변화 인해 아열대종 빛단풍돌산호 등 서식 점차 확대
2)MBC 뉴스데스크 20240921 고수온에 열대 생물 '경산호'마저 백화현상
빛단풍돌산호의 백화현상 촬영 중. 뒤로 보이는 하얀색도 모두 백화현상이 일어난 빛단풍돌산호이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빛단풍돌산호가 있는 곳마다 하얗게 변해있다. (범섬, 수심 약 10m, 20240904)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빛단풍돌산호가 있는 곳마다 하얗게 변해있다. (범섬, 수심 약 10m, 20240915)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2024년 3월 건강한 상태의 빛단풍돌산호(좌)와 2024년 9월 백화현상 후 빛단풍돌산호(우), 범섬 앞 수심 약 10m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말미잘도 피해 갈 수 없는 백화현상
말미잘은 산호충류의 육방산호아강에 속하는 산호이다. 서귀포 문섬과 범섬 일대에는 ‘니모’로 알려진 흰동가리가 큰산호말미잘과 공생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흰동가리 포인트'라는 스쿠바 다이빙 포인트 명이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문섬과 범섬의 터줏대감으로 살고 있다. 여름 산란철마다 흰동가리가 큰산호말미잘 사이 암반에 산란하여 알을 돌보는 모습은 제주도 수중사진 작가들의 단골 작품 소재이다. 그러나 문섬 꽃동산과 한개창, 서건도 수중동굴 일대, 범섬에서 큰산호말미잘 백화현상을 확인했다. 큰산호말미잘의 백화현상은 흰동가리의 산란을 어렵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주로 녹색을 띠던 띠녹색열말미잘의 공생조류가 탈락하면서 하얗게 변하는 현상과, 형광으로 변한 융단열말미잘의 모습도 확인되었다.
백화현상이 진행 중인 큰산호말미잘에서 생활 중인 흰동가리(범섬, 20240904)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큰산호말미잘 군락의 백화현상(문섬, 20240903)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해야 할 때
올해는 라니냐 현상으로 인해 겨울과 봄 바다 수온이 뜨거웠던 근 몇 년보다 1~2도 더 낮게, 더 장기간 유지되었다. 백화현상이 일어났던 돌산호들도 다수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완전히 폐사한 개체도 다수다. 작년 못지않게 뜨거울 것으로 예측하는 이번 여름, 제주의 돌산호가 백화현상으로부터 또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산호 연구자가 우리나라 바다는 백화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불과 1~2년 전이다. 바다가 이렇게 빨리 뜨거워질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급박하고 거대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라며 망연자실할 수는 없다. 이 급격한 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결국 다시 온전한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와, 기후위기를 가속시키는 개발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2030년까지 전 지구(육상, 해양 각각)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는 데 동의했다(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GBF). 2030년을 5년 앞둔 지금, 우리나라의 해양보호구역은 약 2%대에 지나지 않는다. 3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열차게 ‘해양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 면적 확대뿐만 아니라 보호구역에 대한 보호, 감시, 관리 체계를 실효성 있게 재정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산호의 회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과학 기반의 정밀한 조사와 모니터링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현재 관계부처 및 전문 연구자의 인력과 예산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로컬 다이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민과학을 적극 도입하고, 이를 국가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을 통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자연을 착취해 얻어낸 무조건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해야 하는 시기이다. 개인이면 불편을 감수하는 삶으로의 회귀로, 기업이면 이윤보다는 환경에 무해한 경영으로, 국가면 개발이 아닌 보전을 위한 정책으로 지금 당장 바꾸어 내야 할 때이다.
본 글은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슈리포트 <2024년 여름 고수온으로 인한 제주바다 산호충류 이상 현상> 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주희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