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바다 고속도로의 빛과 그림자, 크라(Kra)운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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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주요 운하와 해협에서 발생하고 있는 글로벌 물류공급망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에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무역 의존도가 80%를 넘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의 수출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산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부터 세계 무역 촉진을 위해 만들어진 해상 고속도로인 운하와 해협은 이제는 글로벌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주요 운하와 해협은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였던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 해상무역이 촉발되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1)그러나 세계 주요 운하와 해협은 2022년 수에즈 운하의 에버기븐호 좌초, 2023년 파나마 운하 갈수기 연장,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홍해 인근 후티반군의 상선 미사일 공격 그리고 대만해협 위기 등은 인재, 기후변화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리스크의 취약지역으로 세계 경제의 빛이자 그림자가 동시에 되고 있다.
1)이성우, 나는커피를마실때물류를함께마신다, 바다위의정원, 2020.9
여전히 운하와 해협은 위치, 상황 그리고 크기에 따라 제각각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운하를 만들어 기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가던 뱃길을 1만 km 만큼이나 단축한 수에즈(Suez) 운하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파나마(Panama) 운하는 프랑스가 시작하여 1914년 미국이 개통했으며 기존 태평양과 대서양을 통해서 오가던 선박이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오는 경우보다 1만 5천km를 단축하게 되는 혁신을 일으켰다. 이처럼 운하는 세계를 지배하던 국가가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개발하였고 정치,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취하면서 지구의 지배권과 영향력에 큰 기반으로 활용했었다.
세계 주요 운하와 해협 위치도 ⓒ코리아쉬핑가제트
싱가포르를 통해 선박들이 지나가는 말라카 해협은 동아시아 상품과 자원의 대부분이 통과한다. 이로 인해 ‘믈라카 딜레마’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좁은 해로로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지나가는 생명줄이다. 그런데 이 해협은 미국해군이 항공모함을 싱가포르에 주둔시키면서 관리하고 있어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무역을 떠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분쟁이 생기면 말라카 해협은 미국 해군에 의해 차단될 것이므로 말라카 해협은 중국의 안보와 직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믈라카 딜레마’라는 용어가 생긴 것이다. 한편, 대만해협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의 ‘믈라카 딜레마’에 버금하는 ‘대만 딜레마’를 가져다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식은 약하다. 최근 블룸버그가 발표한 대만해협 전쟁 발발시 대만 다음으로 한국 경제의 추락을 예견한 것이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믈라카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이 크라운하를 통한 우회 항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2015년 태국정부한테 크라운하 건설을 위해 당시 환율기준 한화 약 21조원을 투자해 5년 안에 완공하겠다고 제안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미국과 싱가포르의 반대, 태국의 정정불안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오고 있다. 다만, 크라운하 사업 역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안보 딜레마를 완벽하게 극복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크라운하가 개통이 되어도 안다만과 타이만 사이의 해수면 차이가 10m 이상 차이가 나고 대규모 공사비로 인해 수로 폭을 400m 이상 확보하기 어려워 대형 유조선(VLCC)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원유의 대부분이 대형 유조선을 통해 운송되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문제로 인해 여전히 잠재적 가능성만 언급이 될 뿐 사업 실행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크라운하 위치도 ⓒ이성우
크라운하 위치도 ⓒ연합뉴스
태국정부는 지지부진하던 크라운하의 문제를 랜드브릿지(Land bridge) 개념을 통해서 우회로를 찾고 있다. 2021년 태국 교통부 장관은 Global Construction Review와 방콕 포스트 등을 통해 2022년 6월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결합한 랜드브릿지 방식으로 타이만 Chumphon과 안다만 Ranong 지역 양쪽에 두 개의 항만을 건설하고 육상으로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Chumphon-Ranong Land Bridge 계획을 언급했었다. 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의도를 싫어하는 미국과의 대립을 피하면서 싱가포르에 빼앗긴 지역 물류 주도권을 가지고 와서 태국의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성 측면에서 해당 Land-bridge 사업은 여전히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적인 추진이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운하와 해협은 과거에는 주로 정치적 요인에 비중이 더 있었다면 근대에 와서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요인에 비중을 두면서 그 중요성이 과거보다 더 커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의 이용 제한이나 대만해협의 리스크가 글로벌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육지도 가로 막혀 돌아가야 하는 바닷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강대국들은 운하를 만들어 자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꿈을 꾸면서 크라운하를 포함해서 니카라과 운하, 북극항로 등의 상용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약 서남아와 동남아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 대신 크라운하가 만들어지면 싱가포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중국과 대만이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당사인 그들 이외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부산 앞 대한해협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이후 우리나라 운명은 어떻게 되었던가? 그래서 운하 개발과 해협에 대한 주도권 확보는 단순한 물류 주도권 확보가 아니라 주변 국가와 전 세계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해당 운하와 해협의 길목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을 넘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남아와 동남아를 구분 짓는 말라카 해협을 지키고 있는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말라카 해협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을 통하지 않으면 수천km의 험한 바다를 돌아가야 하므로 해당 해협은 경제적 운항을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전략적 지름길이다. 싱가포르는 인구 6~7백만의 작은 도시국가지만 세계 일류의 경제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가 무역로를 통과하는 해운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고의 항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무역, 금융, 물류산업을 연결해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 10위권 컨테이너 항만을 20년 이상 유지하고 있는 부산 역시 대한해협에 위치하고 있고 이 지경학적 위치를 잘 이용했기 때문에 세계 2위의 환적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대만해협에 전쟁이 터져서 대한해협의 지경학적 장점이 약화되거나 가능성은 낮지만 한일간 대한해협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일어난다면 부산항의 미래 역시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부산이 현재의 위치를 넘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한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말라카 해협의 싱가포르 항구 ⓒ클립아트코리아
해상 고속도로인 운하와 해협은 가진 자한테는 빛을 주지만 그 길목을 빼앗긴 자한테는 불안감이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그림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후 온난화, 국지전, 자연재해 등 대응이 어려운 요인으로 인해 해상 고속도로가 글로벌 경제의 빛보다 그림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이런 해상 고속도로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안정적 이용과 전략적인 투자를 통한 리스크 해소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