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미국 독립의 시작, 보스턴에서 부산항이 배워야 할 것
페이지 정보

본문
현재 글로벌 G1 국가인 미국의 탄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항만도시가 있다. 식민지 미국 독립의 시작점이 되었던 ‘보스턴 차(Boston Tea Party)’ 사건의 무대가 바로 보스턴이다. 지금은 미 북동부 교육과 경제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미국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공간이자 식민지 미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보스턴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이며, 뉴잉글랜드 지역의 중심지이다. 지역 이름처럼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인구 70만 명 정도의 중규모 도시이지만 보스턴 도시권은 인구 480만 명이 사는 미국 10대 대도시권이다. 현재는 미국의 다른 대도시권과 비슷하게 다인종, 다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하버드, MIT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중심 도시로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거주와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하는 첨단기술 기업들의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1614년 존 스미스가 보스턴 지역을 발견한 이래 보스턴 지역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전역의 상품을 공급해 주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해 주었다. 보스턴항은 초기 매사추세츠만 어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점차 주변 지역을 매립하면서 점차 확장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입해서 미국 전역으로 공급해 주는 물류 거점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점차 보스턴시와 보스턴항의 성장은 상호 충돌을 유발하였고 보스턴시의 대규모 인구 유입은 보스턴항의 기능을 제한하거나 분산시키게 만들었다. 특히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보스턴항 주변의 바다와 해안은 심각한 오염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보스턴항 역시 기존 선진국들이 경험했던 항만과 도시의 성장으로 인한 충돌로 항만과 도심의 이격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 보스턴항은 초기 항만의 기능과는 큰 상관이 없는 영국의 조세정책에서 기인한 소용돌이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보스턴항 주변 전경 ⓒ이성우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을 두고 1755년 프렌치-인디언 전쟁이 발발하여 1763년 영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발단되었다. 승전국인 영국은 엄청난 전비로 국가 재정이 파탄 직전이었다. 당시 영국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국민 필수품인 차를 청나라(중국)-네덜란드-영국과 영국 식민지로 이어지는 공급사슬을 통해 수입하였다. 그러나 세수가 부족한 영국 왕실은 홍차조례(Tea Act of 1713)를 제정하여 미국 식민지에 적용하였다. 기존 청나라-네덜란드-영국과 영국 식민지(밀수)로 이어지던 공급사슬을 청나라-영국-영국 식민지로 변경시켰다. 당시 네덜란드는 청나라에서 수입한 차에 비과세로 영국을 경유하지 않고 미국 차 수입업자들한테 수출하여 양자가 부를 창출하였다. 그런데 영국이 이 흐름을 바꾸면서 미국 차 수입업자의 이익이 사라지게 되었고 미국 지식층 역시 영국이 자기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세금 조례를 만들었다는 불만이 겹치면서 독립의 필요성이 싹트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불만이 ‘보스턴 차’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영국이 바꾼 차의 수입구조는 미국 식민지인들한테는 식민지 차업자들의 폭리와 무역구조 단순화로 더 저렴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존재한다1).
1)재구성: Mitchell, Stacy, The Big Box Swindle, 2016.
이처럼 미국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보스턴항은 미국 근대사에 또 다른 궤적을 남겼다. 바로 보스턴항 재개발에서 역사적 보전의 상징물이 된 퀸시마켓(Quincy Market)이다. 퀸시마켓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이다. 1824년부터 2년간 건설된 2층짜리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로 면적은 약 2,500m²이다. 내부 중앙에는 동서로 긴 복도가 있다. 외관은 뉴잉글랜드 전통의 화강암 구조, 내벽은 빨강 벽돌 구조로 되어있다. 보스턴이 시로 승격한 1822년 무렵, 시내에 상업 수요가 늘면서 기존 상업 중심지였던 페뉴일홀(Faneuil Hall)은 이미 비좁게 되었다. 점포 공간의 확충을 위해 알렉산더 패리스의 디자인을 기초하여, 퀸시마켓(Quincey Market)은 페뉴일홀 동쪽에 인접해 지어졌다. 당시 페뉴일홀은 수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퀸시마켓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항만의 일부가 매립되었다. 개업 당시부터, 퀸시마켓은 계란, 치즈, 빵 등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쇼핑센터였다. 퀸시마켓에는 각종 식료품 상점과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점심 시간대가 되면 시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심을 사러 퀸시마켓에 모여든다. 건물의 동서 끝은 각각 열린 공간이 있으며, 포장마차가 늘어서, 각종 거리 공연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퀸시마켓 전경 ⓒ이성우
미국 동부의 오래된 도시들은 항만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고 화물을 편리하게 수송하기 위해 대부분 고속도로가 항만을 인접한 도시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보스턴 역시 그러한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구도심의 상징적인 시장인 퀸시마켓과 항만 그리고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어 인구의 증가는 심각한 도시 문제가 되었다. 보스턴시는 1982년 부터 2007년 사이 도시와 수변공간을 이격시키는 보스턴 관통 고속도로를 지하화하는 ‘Big Dig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도로 지하화에 엄청난 비용(현재 가치로 7.4억 달러)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페뉴일홀과 퀸시마켓을 보존하고 시민들의 수변공간 접근성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기존 항만 주변 재래시장을 없애고 새로운 도로를 만들 수 있었으나 퀸시마켓의 역사성과 시민들의 수변공간 접근성을 제공하기 위해 중요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비좁은 보스턴 구도심의 교통망을 개선하고자 퀸시마켓을 관통하기로 한 도로망 계획에서 퀸시마켓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보스턴 시민, 지자체 그리고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퀸시마켓을 역사적 관광 명소로 그 가치를 높이는 의미 있는 선택을 하였다.
Big Dig 프로젝트 고가도로 지하화 이전과 이후, 전(좌)/ 후(우) ⓒ나무위키
이런 맥락에서 부산 북항 재개발의 현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산 북항 재개발 부지와 그 주변 지역은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개발은 오직 단기적인 경제성에 입각하여 과거 부산항, 부산시 그리고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준 역사적인 공간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제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역사적 자산도 특별한 관리나 노력이 없으면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현재 매립을 통해서 개발 완료상태인 북항 재개발 1단계 지역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존 구도심을 연계 개발하는 다음 단계 지역 그리고 북항재개발지역 주변의 초량동, 중앙동, 영주동, 동광동, 남포동, 광복동 등은 그 역사적 가치를 다시 정리하고 보존을 통해 부산 구도심 재생에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보스턴의 ‘Big Dig’ 프로젝트는 부산항 주변 구도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사례라 생각된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