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자유와 평화에서 디지털 기술까지 포용한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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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샌프란시스코만 지역(Bay Area)에 위치한 항만도시이자 캘리포니아의 두 번째 큰 도시권의 중심지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미국 대도시와 다르게 샌프란시스코(The City and County of San Francisco) 카운티 하나로 이루어져서 미국 전체에서 5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81만 명으로 적지만 부산시 면적으로 환산하면 약 5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인구 고밀 지역이다.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버클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 광역권의 인구는 현재 475만 명으로 미국에서 5번째로 큰 광역권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부산과 유사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 항만도시이다. 1848년 인구 천명도 안 되던 시골 포구에서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어 일어난 골드러쉬(Gold Rush)로 2년 만에 인구 2만 5천 명의 당시 기준 대도시가 되었다. 이후 미국 서부의 최대 항만도시이자 내륙 철도의 기 종착점으로 급성장하는 산업도시였다. 1900년 무렵 이미 30만명에 이르는 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10년간의 노력을 통해 다시 지역 중심 도시이자 북미와 남미를 이어주는 물류 중심 도시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후 2차 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전시 물자를 제공하는 최대의 군수 도시이자 물류 도시로 성장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공업지역과 상품을 실어 나르던 항만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베이 에어리(Bay Area)가 수용력 한계와 산업화로 인한 폐해로 인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955년 이후부터 새로운 도시계획 정책을 가지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대장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산업 구조 역시 1980년 이후 기존 산업의 한계를 인지하고 1990년부터 학교, 연구소, 기업을 하나로 묶어서 성장시키는 IT기술의 중심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리콘 밸리가 이 시기에 태동했다. 2000년 닷컴산업의 버블로 위기를 맞이하지만, 훌륭한 교육인프라와 주거환경, 집적된 우수한 기술력 등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글로벌 디지털 기술의 중심지이자 문화를 기반으로 한 주요 관광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금문교 @이성우
샌프란시스코만과 도시 스카이라인 @이성우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Visit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된 것은 바다로 둘러싸인 특이한 지형도 있지만 멕시코 영토에서 미국 영토로 바뀌면서 노예해방 이후 다수의 흑인, 기존에 살던 히스패닉, 그리고 19세기에 유입된 동양인 이민자들로 뉴욕에 준하는 인종적 다양성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고 이런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를 볼거리가 많은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샌프란시스코항의 현대화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과 대화재를 경험하면서 시작되었고 1909년 샌프란시스코항 발전 법령을 기반으로 현대화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항의 발전이 가능했던 점은 다른 미국 항만도시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항만 당국의 전체 자산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서 신속한 개발과 관리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단순한 항만 지역 재개발을 통해 도시의 성장동력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주변 교육시설과 연계하여 항만 재개발 공간을 디지털 R&D 클러스터화시켜서 청년층의 일자리이자 주거지 그리고 위락 공간으로 동시에 발전시켜 왔다. 샌프란시스코는 1972년 미국 최초로 도시 전역을 대상으로 도시설계 계획을 수립하였고 공공 입장에서 사람 중심 도시설계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항만 공간 재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샌프란시스코항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적 배경, 사람 중심의 자유와 평화를 중시하는 도시개발 기조, 공공주도의 사회적 기능 강조에 힘입어 Pier 39, Pier 70, 미션락(Mission Rock), 알라메다 포인트(Alameda Point)와 같은 수변공간 개발이 도시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수변개발 상징인 피어 39는 기업가 워렌 시몬스가 개발을 시작하여 1978년 10월 4일 개장을 했으며, 박물관, 수족관, 놀이시설, 식당가, 바다사자 서식지까지 연결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Pier33해양공원 @이성우
Pier33~39의 바다사자 서식지 @이성우
피어 39의 전경 @위키피디어
이후 개발된 Pier 70은 노후화된 조선소와 발전소 부지를 주거, 사무실, 상업, 예술, 공원, 보행로 등으로 만들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미션락 역시 Pier 40이 있던 공간을 복원과 함께 대형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으로 연계 개발 중에 있으며, 알라메다 포인트는 군사시설을 개조하여 주거, 상업, 공원, 교통 연계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도시 성장을 위해 항만 주변의 수변공간 개발을 시대별, 기능별, 주제별 니즈에 맞춰 점진적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다.
피어 70의 전경 @pier70sf.com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세계 해양도시를 만나다, 2023
1990년대부터 샌프란시스코 외곽지역인 실리콘밸리에서 기술 개발과 실증을 맡고 도심인 베이에어리에서 최종 제품을 상업화하고 보급화하는 기능으로 이원화하였다.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도심 공간의 공동화를 막고 컨벤션 기능까지 추가하여 예르바 부예나(Yerba Buena) 지역이 세계적인 컨벤션 공간으로 부상하였다. 이는 주변 버클리대, 스탠퍼드대, 샌프란시스코대,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캘리포니아주립대(SF) 등 10여 개 대학과 연계되어 세계의 우수한 청년들을 유입시키고 일하고 생활하게 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부산은 한국에서 청년층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고 있는 도시가 되고 있다. 한국 제2의 도시이자 해양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층 인구의 유출은 지속되고 있고 이는 부산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성장과 항만 재개발 과정은 부산시의 성장과 부산항 재개발과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결과로 유추해 볼 때 미래는 매우 다른 것 같다. 아직 미완성인 부산항 재개발이 부산시의 성장을 넘어 한국의 최대 성공 사례가 되기 위해서는 샌프란시스코가 경험했던 다양한 고민과 해결의 노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산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 교육, 관광자원에 미래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부산의 청년층이 유출되지 않고 외부의 청년들까지 유입될 수 있기 위해 부산 북항 재개발 지역과 주변 원도심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 부산시와 관련 공공기관에서 재고 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기성세대의 생각이 아니라 청년들의 시야에서 살고, 일하고, 놀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부산 원도심과 북항 재개발 지역의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