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펄펄 끓는 바다 수온, 엔진 식는 대형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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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수산업계를 뒤흔든 핵심 키워드는 ‘기후변화’와 ‘고수온’입니다. 전 세계 바다는 물론 우리나라 연안도 마치 펄펄 끓는 듯한 고수온 현상을 겪었죠. 하지만 뜨겁게 달궈져야 할 대형 어선들의 엔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이제 어민들의 생계를 넘어, 우리의 밥상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징어와 명태처럼 익숙한 어종들은 더 이상 국내 연안에서 찾기 어려워졌고, 가을 제철 수산물인 전어와 꽃게의 가격도 크게 오르며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중형기선저인망 금명호 선단이 2017년 2월 8일 남해EEZ골재채취단지 인근 바다에서 조업을 시도했지만 2시간여에 걸친 조업 끝에 그물에 걸린 건 삼치와 병어 몇 마리가 전부였다. 남해EEZ골재채취단지 해역 바닥이 어군탐지기에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일보
“더는 영업 못 해” 벼랑 끝에 선 대형 어선들
대형기선저인망수산업협동조합(이하 저인망수협)은 대형 저인망 어업(큰 그물을 이용해 다양한 어종을 잡는 방식)을 기반으로 한 어민들의 단체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인망수협 조사에 따르면 소속된 136척의 어선 중 절반이 넘는 74척이 내년도 감척(어선 수를 줄이는 정책)을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6척만이 감척을 원했으나, 올해는 그 수가 12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어민들에게 감척은 사실상 ‘폐업’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영업을 지속할 수 없으니, 차라리 지원금을 받고 업장을 정리하는 길을 택하려는 것입니다.
경남 남해안 양식 어류 고수온 피해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25일 기준으로 통영 연안에서만 1200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떼죽음 했다. ⓒ부산일보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고수온 현상입니다. 바다 수온이 달라지는 것이 왜 어업에 문제가 되는 걸까요? 국내 연안에서 잡히는 물고기 중에는 ‘회유성 어종’이 있습니다. 이 어종들은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고, 적절한 수온을 찾아 이동하는 특성이 있죠. 수온이 1도만 올라가도 이들은 서식지를 바꾸게 되는데, 올해는 수온 상승으로 인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 어획량은 지난해 대비 75% 감소했고, 삼치도 그 수가 반토막 났습니다. 어민들은 사라진 어종을 그저 허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국내 고등어 어획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선망어선 60여 척이 2개월간의 휴어기를 마치고 2023년 7월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만선의 꿈을 안고 일제히 출항하고 있다. ⓒ부산일보
지역 수산업의 위기로 이어져
어획량 감소가 전부라면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더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형 어선들이 줄줄이 폐업하게 되면, 선원들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됩니다. 부산처럼 수산업 중심지인 지역은 수산물 위판량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해 수산물 가공업과 유통업에 의존하는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수산업의 쇠퇴는 결국 지역 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 모습. ⓒ부산일보
어업 할당제(ITQ) 등 도입 필요
우리는 이제 고수온 현상이 단순한 일시적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바다는 이미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업 방식과 관리 체계 역시 달라져야 할 시점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유류비 보조와 같은 지원책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안으로는 ITQ(어업 할당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ITQ는 어민들이 자신들의 어획량을 사고팔 수 있게 함으로써 어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면 정부의 재정적, 교육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부산 서구 공동어시장 위판장이 풍년 맞은 고등어로 가득 차 활기를 띄고 있다. ⓒ부산일보
피시플레이션이 온다
수산물 가격의 급등, 이른바 피시플레이션(fish+inflation)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수온으로 인해 연안 어종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고, 광어나 우럭 같은 어종의 생산량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전어와 꽃게의 어획량마저 반토막 나면서 수산물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수협중앙회는 기후변화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위해 ‘기후변화대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해양수산부 역시 국립수산과학원과 협력해 기후변화 대응 테스크포스를 운영하며,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 중입니다.
지금은 고수온 현상과 어족 자원의 감소, 그리고 수산물 가격 급등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배
부산일보 해양수산부 기자
부산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며 올해 해양수산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