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곳, 바다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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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가을 바다는 홀수 해마다 특별한 예술의 무대가 된다. 파도와 모래, 바람과 햇살이 작품의 일부가 되고, 관객은 산책하듯 해안을 거닐며 예술을 만난다. 바다와 자연과 도시, 작품이 함께 만나는 이 특별한 공간은, 바다를 시각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여 관람객들에게 보다 친근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순간, 바로 바다미술제다.
세 갈래의 길, 하나로 모이다 – 바다미술제의 역사
그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서울 올림픽의 프레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바다미술제는 1995년까지 매년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번갈아 개최되었다. 이후 부산비엔날레에 통합 개최 되다가, 부산만이 가진 독특한 미술 양식을 국제적으로 알리고자 2011년부터 다시 독립된 미술제로서 개최되고 있다. 화이트 큐브 전시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바다는 훌륭한 무대가 되었다.
부산비엔날레와 함께한 도약
바다미술제를 이야기하려면 부산비엔날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비엔날레’란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의 단어다. 1895년 시작된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오늘날에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적인 규모의 미술 전시를 뜻하는 대명사로 자리했다. 부산시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시작된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부터 열린 바다미술제, 1991년 출범한 부산야외조각대전이 통합되면서 2000년부터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다미술제는 점차 진화되었다. 통합 이후 현대미술 담론을 실험하고, 국내외 작가들이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품을 선보이는 살아 있는 실험실이자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열린 축제로 도약했다. 이러한 성장은 부산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미술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바다가 기억하는 작품들
바다미술제에는 늘 바다와 대화하는 작품들이 등장해왔다. 2011년 베라 마테오의 〈새로운 별, 새로운 탄생〉은 나일론과 폴리스틸렌을 재료로 한, 가로·세로 4m에 달하는 구조물이 파도에 따라 움직이며 해변 위에서 자연과 작품이 하나 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베라 마테오 作, <새로운 별, 새로운 탄생>, 2011, 나일론, 폴리스틸렌, 4000x4000cm,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2013년에는 부산 출신의 조은필 작가가 파란색 그물로 6m의 궁전 형상의 철 구조물을 제작해 바다와 하늘 사이에 <일렁이는 궁전>을 세웠고, 이 작품은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조은필 作, <일렁이는 궁전>, 철, 그물, 6x4.5x4.5m,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이후에도 바다미술제는 전시의 일부로 자연을 무대 삼아 예술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바람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천 조형물이나, 바닷물이 차고 빠짐에 따라 드러나는 설치 작품, 해변의 모래를 활용한 대지미술 등 모두 바다라는 장소와 긴밀하게 호흡하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기후 위기와 해양 쓰레기 같은 시대적 문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했고, 때로는 파도와 빛의 움직임을 예술적으로 해석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일깨워주기도 했다.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곳, 바다미술제
2021년에는 처음으로 전시감독을 국제공모로 선발하며 참여 작가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한국 작가뿐 아니라 유럽, 미주, 아시아를 아우르며 세계적인 작가들이 부산 해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오비비에이 作, <Lightwaves>, 2021, 다이크로익 필름, PC 파이프, 가변 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일광해수욕장에서 열렸던 2023바다미술제에는 지역 특산품인 미역과 다시마를 활용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참여 협업하여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바다미술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공동체적 경험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펠릭스 블룸 作, <바다의 풍문>, 2023, 대나무, 대나무 피리, 나무 데크, 철골 구조물,
가변크기(직경 12센티미터, 3미터 길이의 150개의 대나무 피리),
2023바다미술제 커미션 설치작품,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바닷가라는 개방적 공간 덕분에, 미술관을 찾지 않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예술을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동시에 동시대 담론을 엮어내는 새로운 작품 형식, 환경과의 공존,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은 여전히 도전 과제이자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부산의 바다는 늘 변화한다.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처럼, 바다미술제 역시 매번 새로운 주제와 창작물을 품으며 진화해왔다. 그렇기에 바다미술제는 단순한 ‘야외 전시’가 아니라, 도시와 자연, 예술이 함께 호흡하는 살아 있는 축제다. 앞으로 부산의 바다 위에서 어떤 새로운 물결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좌: 제임스 탭스콧 作, <아크 제로>, 2017, 안개, 조명, 철, 노즐, 펌프, 300x600x10cm
우: 로히니 드배셔 作, <심해 온실>, 2021, 싱글 채널 비디오, 14분 23초, 반복 재생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최지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