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수산박람회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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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대 수산박람회에서 발견한 새로운 트렌드-‘어떻게 잡았느냐’가 중요하게 된 시대
과거 수산박람회는 ‘누가 더 크고 신선한 생선을 가져왔는가’를 겨루는 무대였다. 신선도, 가격, 맛. 이런 기준들이 수산물의 가치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잡혔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얼마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어획되고 있는지 미래에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지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가치를 결정하는 최전선이 세계 3대 수산박람회인 미국의 보스턴 수산박람회(SENA, Seafood Expo North America),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수산박람회(SEG, Seafood Expo Global), 중국의 칭다오 수산박람회(CFSE, China Fisheries & Seafood Expo)이다.
나는 운 좋게도 최근 이 세 박람회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매년 수백 개의 부스를 방문하고, 포럼과 세미나에 참가하고, 바이어들과 이야기하면서 글로벌 수산업의 현황과 미래를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2023년 보스톤 수산박람회(SENA)
ⓒ서종석
3대 수산박람회 중 가장 먼저 방문한 SENA는 매년 3월 개최되는 북미 최대의 수산박람회이다. 이 박람회는 1980년대 초 ‘Boston Seafood Show’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당시에는 지역 수산업체와 소규모 바이어들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장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이후 북미 식품유통 구조의 변화와 함께 급격히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수산기업들이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특히 이 박람회는 단순 제품 전시를 넘어 수산물 가공, 포장, 냉장 유통, 이력추적(Traceability) 기술까지 아우르는 산업 전반의 흐름을 보여준다.
보스톤 수산박람회의 MSC 부스
ⓒ서종석
SENA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술 담론이 현장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방문한 2023년에는 ‘밧줄 없는 랍스터 통발(Ropeless Lobster Trap)’ 같은 새로운 어구 기술들을 선보이는 세미나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었다. 고래 보호를 위해 개발된 이 장비는 북대서양참고래(North Atlantic Right Whale) 같은 멸종위기 해양 포유류가 어구에 얽혀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논의는 더 이상 ‘환경 단체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장의 주요 참여자들인 어부와 생산자, 가공업체와 유통사들, 수산과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과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보스톤 수산박람회의 혼획방지어구 세미나
ⓒ서종석
다음으로 방문한 박람회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산박람회인 CFSE로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다. 이 박람회는 1996년 중국의 가공·수출 기반 수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탄생했다. 이후 세계 최대 수산 생산국이라는 중국의 위상에 걸맞게 그 규모와 영향력을 키워왔으며, 현재는 120여 개국에서 약 40,000명이 참여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2024년 칭다오 수산박람회(CFSE)
ⓒ서종석
흥미로운 점은, CFSE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2024년 현장을 찾았을 때, 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MSC) 중국사무소 부스에 중국의 유통업체와 수입 바이어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지속가능수산물 인증제도를 소개하는 MSC 세미나장에는 중국의 대표 유통기업과 정부 관계자들까지 참석해 어떻게 잘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칭다오 수산박람회 MSC 지속가능수산물 유통세미나
ⓒ서종석
얼마 전까지 ‘수출용 프리미엄’이라는 인식에 머물렀던 지속가능성 인증이 이제는 ‘중국 내수 프리미엄’으로 변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속가능어업을 위한 중국수산과학자 회의
ⓒ서종석
마지막으로 올해 5월 방문한 SEG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수산박람회로 199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되었고, 2022년부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개최지가 옮겨졌다.
2019년 브뤼셀 수산박람회(SEG)
ⓒ 서종석
기존 박람회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장소를 옮기게 된 것이다. 올해 SEG에도 140개국 이상에서 35,000명이 넘는 수산업 종사자들이 모였다.
2025년 바르셀로나 수산박람회(SEG)
ⓒ서종석
이곳에서는 수산물 생산자뿐 아니라 항공사, 크루즈, 병원, 학교, 리테일, 호텔, NGO, 정부, 연구기관까지 아우르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수산’이라는 단어가 단지 ‘물고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무대다.
박람회 참가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속가능수산물 인증을 표시하고 있었다
ⓒ서종석
SEG를 표현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의 ‘일상화’였다. 바르셀로나의 현장에서는 제품에 MSC 같은 지속가능인증, 친환경 인증마크가 없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유럽 시장에서는 이미 지속가능성 인증이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박람회 참가 기업들 간의 실질적인 거래 조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단지 지속가능성, 친환경이라는 상징이 아니라, 바이어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신뢰의 증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SEG에서 매년 MSC가 주최하는 Seafood Futures Forum. 객석은 언제나 만원이다.
ⓒ서종석
매년 MSC가 주최하는 'Seafood Futures Forum'이나 다양한 지속가능 어종별 세션은 단순한 포럼이 아니라, 산업계와 정책, 시민사회의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편집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MSC에서 주관하는 어종별 세미나(Species Session) 흰살생선, 참치 등 주요 상업어종별로 세션을 나누어 진행한다.
ⓒ서종석
우리나라에도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수산박람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산업이 ‘맛’과 ‘가격’에서 ‘가치’와 ‘신뢰’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그 동안 한국 수산박람회에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고 있었다. 물론 지속가능수산물 인증을 받은 참가기업들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였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24년 부산국제수산엑스포에서 MSC 에코라벨을 홍보하는 동원산업
ⓒ서종석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16년부터 개최된 ‘서울국제수산식품전시회’가 올해부터 ‘코리아씨푸드쇼’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해외 바이어 유치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고 쿠킹클래스, 세미나, 포럼 등 부대행사도 늘어났다. 물론 아직 소규모 전시장에 해외 바이어의 참여도 제한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도전을 했다. 박람회를 주최한 한국수산회에서 MSC에 공동부스 운영을 제안한 것이다.
서울씨푸드쇼 주최기관인 한국수산회와 MSC의 공동홍보부스
ⓒ 서종석
한국수산회 부스내에 MSC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인증 수산물 전시, 소비자 대상 퀴즈와 캠페인, 바이어 응대를 함께하는 등 다층적인 협력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방문자들에게 지속가능한 수산업의 가치를 함께 알렸다.
2025년 코리아씨푸드쇼 부대행사 수산정책포럼에서 MSC를 소개하는 흑백요리사 파브리
ⓒMSC Korea
이에 발맞춰 MSC의 앰버서더들도 깊이 참여하였다. 부대행사인 수산정책포럼에는 흑백요리사 파브리(파브리치오 페라리) 홍보대사, 전 한국인의 밥상 작가인 장민영 홍보대사가 동시에 연사로 초청되었고 지속가능수산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였고, 한국수산회와 MSC의 공동부스에서는 방송인이자 푸드칼럼리스트인 김유경 홍보대사가 직접 방문자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 모두 한국에 지속가능어업과 책임있는 수산물 소비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MSC의 홍보대사들이다.
부스에서 MSC 인증제도와 에코라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방송인 김유경 홍보대사
ⓒ 서종석
이러한 시도는 결코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수산업은 이제 한국에서도 단지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 바다와 산업,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사의 수산물이 글로벌표준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는 중국기업의 전시부스
ⓒ서종석
앞으로 한국의 수산박람회가 전 세계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전시 규모나 참여국 수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수산업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박람회기간 내에 끊임없이 참가기업들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박람회에 참가하는 기업들이 그들이 팔고자 하는 수산물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잡혔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하게 공급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기본적인 국제적인 박람회의 격을 갖출 수 있다. 나아가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생산자, 유통업자, 바이어가 모이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더 새롭고 혁신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더 품격있는 박람회가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박람회는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준을 재설정하는 플랫폼이 된다. 이것이 한국의 수산박람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영국 에버딘대학교 비즈니스스쿨 Global MBA 졸업
부경대학교 기술경영학 박사, 부산대학교 석사, 고려대학교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