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노르웨이 150년의 꿈, 스타드 선박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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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선박 터널
운하(運河)는 있다. 땅을 파서, 물을 채워 넣고, 배가 다니게 만드는 인공적인 뱃길이다. 서남아시아(중동)와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와 중미 태평양과 대서양 바다를 이어주는 파나마 운하가 대표적이다.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선박 통항로다. 동시에 글로벌 물류 공급망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기 파나마 운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이유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선박이 운항하는 터널을 만들 적은 없었다. 그걸 지금, 북유럽 해양강국 노르웨이가 추진하고 있다. 노르웨이 북쪽 서해안 지역에 건설되는 스타드 선박 터널(Stad Ship Tunnel)1)이다. 길이 1.7km, 폭 36m, 높이 49m 규모다.
1)스타드 선박 터널은 바닐프스피오르(Vanylvsfjord)의 몰데피오르(Moldefjord)와 쿄데폴렌(Kjødepollen) 사이, 스타드 반도(Stad Peninsula)의 가장 좁은 지점에 건설될 예정이다.
스타드 선박 터널 건설 위치 및 구간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 홈페이지 검색
본래 그 바닷길은 거칠고, 험했다. 연간 100일이 넘게 거센 풍랑이 불고, 사고도 잦았다. 선박들은 운항을 주저했다. 그곳, 노르웨이 스타드해벳(Stadhavet)은 배가 다니기에는 위험한 바다로 악명이 높았다. 차디찬 북해와 노르웨이해 조류가 만나 예측하기 힘든 파도가 몰아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명(3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항해 위험이 큰 구간이다. 사나운 바닷길이라는 오명 때문에 그 옛날 바이킹조차도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반대편 해안으로 끌고 갔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스타드 선박 터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 터널 구상안은 1874년에 처음 나왔다. 그동안 수많은 찬반양론이 비등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해 선박 터널 건설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올해 가을 최종 낙찰자가 선정되면, 건설공사가 본격화된다.
선박 터널 건설 방법
스타드 선박 터널은 세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건설공사다. 거대한 암반층으로 이뤄진 산맥을 뚫고, 산속에 터널을 파 선박이 통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터널 굴착에는 전통적인 ‘드릴 앤 블라스트(drill & blast) 공법’이 활용된다. 터널 상부는 보통 도로 터널을 뚫는 것처럼 암반을 굴착한다. 그리고 폭약을 터뜨려 틈새를 만든 다음, 그 아래를 층층이 파 내려가는 ‘벤치 발파 방식’으로 선박이 다닐 수 있는 내부 빈 공간을 확보한다.
스타드 선박 터널 내부 모습(1)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 홈페이지
노르웨이는 지금까지 이 같은 대형 암석 터널 시공 사업을 1000건 이상 수행한 경험이 있다. 풍부한 전문 인력과 건설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길이 1.7km에 달하는 터널은 양쪽 입구에서 동시에 굴착하여 중앙에서 만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터널 굴착 과정에서는 모두 300만㎥의 암석이 나올 것으로 계산됐다. 발파 작업 이후 암석 덩어리가 깨져 늘어나는 점까지 고려하면 약 540만㎥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다. 이렇게 나온 암석은 현장에서 트럭으로 인근 피오르까지 운반된 다음, 대형 바지선에 실려 다른 용도로 활용하거나 폐기된다. 터널 입구 건설은 일반 도로 터널에 비해 시공에 따른 위험도가 7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의 저명한 설계회사인 스뇌헤타(Snøhetta)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터널 입구(포털)의 디자인을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암벽을 안정화하는 기술을 채택했다.
스타드 선박 터널 내부 모습(2)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 홈페이지
선박 터널 건설 효과
스타드 선박 터널이 완공되면 해운 산업과 지역사회 전반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직접적인 효과는 물론 해상의 안전성 향상과 사고 예방이다. 악천후에도 선박들이 위험한 해상구간을 피해 안전한 인공 통로를 통해 통과하게 되므로, 인명 피해와 선박 사고 발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한 기상 조건이 나빠지면 선박들이 항해를 멈추고, 날씨가 풀리기를 수일씩 기다리던 상황도 개선된다. 운항 스케줄을 변경하지 않고도 선박을 1년 내내 안정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이점이다. 노르웨이 해운업계가 물류 지연 해소와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특히 이 구간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던 연안 여객선은 물론 화물선과 어선 등이 가장 큰 혜택을 볼 전망이다.
또한, 이 터널을 이용하면 우회 항로 대비 연료 소비도 크게 줄어든다. 선박 크기에 따라 약 30~60%의 연료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한 탄소 배출 감소 등 환경친화적인 이점도 크다. 노르웨이 정부는 스타드 터널 건설이 ‘육상 교통의 해상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도로 혼잡과 사고를 줄이고, 해운 물동량을 늘리는 정책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역 경제 측면에서도, 관광 활성화와 인프라 투자에 따른 기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선박 터널이라는 희소성 덕분에 이 지역이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를 수 있어서다. 터널 입구 전망대나 인근 방문객 센터가 노르웨이 북쪽에 있는 노스 케이프(North Cape)처럼 유명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터널 설계도면에는 선박 통행을 관람할 수 있는 다리와 산책로 등이 포함되어 있어 향후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스타드 선박 터널 입구 조감도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 홈페이지
향후 일정과 해결 과제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은 스타드 선박 터널 건설사업을 설계-시공 일괄 입찰(턴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상당히 높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2024년 말에 입찰 공고가 나간 후 2025년 1월 말에 모두 6곳의 국내외 컨소시엄이 입찰 의향서를 제출했다. 이 중 노르웨이 2개, 프랑스 1개 업체 등 3개 그룹이 최종 입찰 후보로 선정됐다. 2)중국 업체 2곳은 후보에서 탈락했다. 이후 2025년 상반기에 제안서와 가격 제안을 포함한 1차 입찰서를 검토한 뒤 최적의 계약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현재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가을에 시공 계약을 체결하고, 5년 동안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31년에 최종 공사가 마무리된다.
2)선박 터널 최초 입찰 마감은 6월 10일로 만료되었는데, 마감일까지 사전 자격 심사를 통과한 세 곳의 입찰자가 모두 제안서를 제출했다. 세 곳은 Skanska Norge AS와 Vassbakk & Stol AS의 합작법인(노르웨이), AF Gruppen Norge AS(노르웨이), 그리고 Eiffage Génie Civil(프랑스) 등이다.
스타드 선박 터널 렌더링 이미지 (완공 후 터널 안에서 밖을 본 모습)
ⓒ노르웨이 연안관리청(Kystverket) 홈페이지
한편, 스타드 선박 터널 프로젝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공사라는 점에서 다양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기술적인 현안이다. 높이 4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터널 입구의 암석 절개와 보강 작업이 가장 큰 기술 난도로 꼽힌다. 두께 300m 이상의 단단한 편마암 지반을 관통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굴착 과정에서 바닷물 유입을 막고, 암반 붕괴를 방지해야 하는 등 고도의 토목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환경적인 고려도 필요하다. 해저가 아닌 육상 터널이지만 양쪽 출구가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공사과정에서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발파 작업으로 인한 소음과 진동이 해양 생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모니터링해야 하는 등 엄격한 환경영향평가와 자연경관의 훼손을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예산과 경제성 확보도 관건이다. 현재 터널 프로젝트 예산은 약 50억 노르웨이 크로네(한화 약 6,300억 원)로 책정되었으나, 대규모 토목사업이라는 특성상 건설 비용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10년대 진행된 예비 타당성 분석에서 비용 대비 편익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물가 상승과 공사 범위 확대로 예산 금액이 증가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사업 추진이 중단된 적이 있다. 공사 입찰 금액이 의회에서 승인한 예산을 초과할 경우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우려도 있다.
넷째, 북유럽의 긴 겨울과 혹독한 기상 조건도 복병이다. 악천후가 지속되면, 현장 인력 활용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건설장비 운용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공사 기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이 같은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노르웨이가 150년 꿈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기대하면서 한편으로, 응원한다.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