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서종석의 6차산업과 지속가능어업 ③ 베링해 더치하버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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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보교류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및 아메리카 지역 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MSC) 스태프들이 합동 워크숍을 개최하여 참석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덕화명란 장종수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대표는 대한민국 명란 가공의 일인자인 장석준 명장의 장남으로 본인 또한 수산식품 명인으로 등록되어 성공적으로 가업을 이어 나가고 있고 지속가능수산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MSC와 인연이 깊다.
“서 대표님. 외국에 있으시죠? 다음 달에 시애틀에서 명란 검품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그 때 혹시 더치하버에 있는 MSC 인증받은 명태가공공장을 방문할 수 있을까요? 팩토리쉽(Factory Ship)이면 더 좋고 안되면 육상이어도 괜찮습니다. 테크니션을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사실 장대표와 나 둘 다 명태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만 나오면 열광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무척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다. 특히 내 경우에는 MSC의 한국대표로서 지속가능어업에 대해 발표를 할 기회가 많아 수산자원 고갈 문제를 꺼낼 때마다 나오는 단골손님이 바로 대구랑 명태였다. 그래서 명태와 관련된 역사와 이야기는 늘 반가운 소재이다.
장 대표는 명란에 관련해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임에도 문헌자료 수집과 역사 고증을 위한 노력을 항상 게을리하지 않는다. 심지어 역사가, 인문학자 등 전문가들을 사비로 따로 고용해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낼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링해 명태조업의 최전선에 있는 어항인 더치하버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미지의 세계 같은 곳이었다. 더치하버는 미국 알래스카에 꼬랑지처럼 붙어있는 알류샨 열도 중 하나인 어널래스카라는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에 명태잡이 트롤어선과 팩토리쉽, 명태 가공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더치하버의 풍경 ⓒ서종석
여기서 팩토리쉽은 명태가공시설이 배 안에 탑재되어 조업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가공이 가능한 공장선을 의미하고 그 가공공장의 공정을 관리하는 기술 담당자들을 테크니션이라고 부른다.
더치하버의 공장선 ⓒ서종석
원래 명태는 우리 앞바다에서도 많이 잡혀서 굳이 멀리 있는 베링해에서 잡은 명태를 구입해 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린 명태까지 싹쓸이하는 조업과 기후변화까지 겹쳐서 이제 국내산 명태는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우리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동태탕, 코다리찜, 북엇국, 명란이나 간식, 안주로 먹는 먹태, 게맛살, 어묵의 원물은 전량 러시아나 미국산 명태이다.
이 러시아와 미국산 명태가 잡히는 곳이 바로 베링해이며 명란은 더치하버에서 추출되어 경매를 위해 시애틀로 넘어간다. 베링해의 명태어장은 MSC 평가가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어획되는 명태는 미국산이든 러시아산이든 다 MSC 인증 범위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더치하버의 어업회사나 가공회사는 모두 MSC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자사 명란 제품에 MSC 에코라벨을 부착해서 열심히 지속가능어업을 홍보하고 있던 장 대표는 이번 검품을 위해 시애틀에 갈 때 MSC 인증 명태 원물을 가공하는 더치하버까지 방문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시애틀 명란 검품 모습 ⓒ서종석
나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MSC 알래스카 담당인 댄에게 현지 방문 가능한 어업회사가 있는지 또 정박하고 있는 공장선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인 3월 초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라 너무 급하게 조율을 해야하고 또 조업 한창인 시즌이라 정박하고 있는 공장선이 없을 확률이 높아 댄은 크게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을 장 대표에게 전달했더니 육상공장도 괜찮으니 이번 기회에 꼭 방문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마침, 육상가공공장이 있는 유니씨(UniSea)에서 그 기간에 방문이 괜찮다고 연락이 와서 우리는 가는 것으로 일정을 최종 확정하고 부랴부랴 항공 및 숙박 예약을 추진했다.
나는 발리 워크숍 이후 거의 2주 넘게 바로 해외 일정이 쭉 이어져 있어서 미국 일정 사이에 3일 정도만 귀국이 가능한 실정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급하고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더치하버로 가는 프로펠러 경비행기는 베링해의 악명 높은 기상변화 덕분에 항공지연과 결항이 다반사라고 했다. 만약 악천후로 공항에서 발이 묶이게 되면 약속했던 방문 스케줄도 모두 취소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별다른 문제없이 정시 출발 정시 도착까지 가능했다.
더치하버로 가는 경비행기와 풍경 ⓒ서종석
돌아오는 편도 별 문제가 없자 댄은 이렇게 무난한 여정은 본인도 정말 드물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어널래스카의 공항은 작고 단출해서 마치 시골 시외버스정류장이 연상될 정도였다. 유니씨의 담당자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본 어널래스카의 풍경은 황량하고 외졌다. 앞의 칼럼에서 이야기한 트리스탄다쿠냐 못지않게 외딴 곳으로 느껴졌다.
어업회사 유니씨(UniSea)의 육상 명태가공공장 ⓒ서종석
장 대표와 공장을 방문해서 명태를 가공하는 공정을 차근차근 꼼꼼히 살펴보았다. 머리부터 꼬리지느러미, 몸통과 내장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원물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가공됐다. 특히 명란에 대한 품질관리는 철두철미했다. 다양한 검사절차와 체크리스트를 통해 세부적으로 등급을 나누고 분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테크니션들과 인터뷰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공장내부 참관을 위해 위생복으로 환복한 덕화명란 장종수 대표 ⓒ서종석
소기의 목적을 마친 우리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가볍게 섬을 좀 둘러보는데 동의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언덕에도 올라서 보고 근처에 있는 박물관과 선용품점도 구경하기로 했다.
더치하버의 선용품점 ⓒ서종석
이곳의 선용품점은 지역 마트 역할도 하고 있어서 뭔가 특별한 게 없나 코너별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의류코너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티셔츠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치하버, 베링해, 앵커러지 등 알래스카의 여러 지역명이 새겨진 티셔츠, 모자, 바람막이 같은 의류들의 디자인이 하나같이 세련되고 개성 있어 보여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더치하버 선용품점의 티셔츠 진열대 ⓒ서종석
사실 나는 지역명을 브랜딩한 디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빤한 디자인이거나 촌스러워서 기념품으로는 소장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입고 다녀질까 하는 실용주의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치하버의 티셔츠들은 그 생각들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만큼 매혹적이었다. 지금 안사면 언제 이런 멋진 티셔츠를 살까 싶어 계획에도 없었던 티셔츠와 바람막이를 다섯 벌이나 구입했다. 계산대에서 만난 장 대표의 손바구니에도 힙한 더치하버 모자가 가득 들어가 있었다.
로컬크리에이티브가 적용된 알래스카의 티셔츠와 모자 ⓒ서종석
앵커러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온 우리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꽤 로컬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어부나 선원, 기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가 마트에서 봤던 옷들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외지고(Distance) 재미없어(Dull) 보이는 더치하버에서 6차 산업의 꽃은 로컬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 역사, 문화, 예술 등 어우러지고 재해석되어 거주자와 방문자 모두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 특히 1차 산업인 어업을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디자인에는 목숨을 걸고 거친 바다에서 조업하는 용감한 어부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와 다양한 생명과의 공존이 모두 반영되어 있었다. 만약 베링해에 몇 차례나 있었던 어업자원 고갈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곳에서 로컬 크리에이티브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지역 잡지에서 이 지역 공동체가 생태계 파괴를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 곳의 6차 산업은 계속해서 경제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번 더치하버 방문은 지속 가능한 어업과 로컬 크리에이티브를 기반으로 어떻게 지역을 독창적이고 재미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외딴 곳일수록 교류가 적어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남아있다. 그것은 음식과 예술 등에 녹아있다.
위스키 매니아들은 더 외지고 지역 특색을 가지고 있는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이나 버스도 몇 대 없는 시골을 서슴지 않고 찾아간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쉐프들은 지역의 레시피와 지역 전통주를 콜라보해서 독특한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그들에게 지역의 수산물은 그들의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소중한 자원이자 원재료이기 때문에 지속가능어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역시 고객에게 공감과 배움을 주는 경험으로 산업적 부가가치를 얻는다.
지역 레시피나 지역 원료를 활용하여 새로운 미식을 선보이며 지속가능한 어업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유명 레스토랑의 쉐프들 ⓒ서종석
점점 소멸되는 우리 어촌에 이러한 6차 산업과의 접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 같다. 우리 지역에서 소중하게 보존되어 온 자연환경, 역사, 문화, 예술을 다시 한번 곰곰이 떠올려보고 무엇이 독특한 요소이고 내가 하는 비즈니스와 재미있게 결합될 수 있는 소재가 어떤 것이 있을까 천천히 찾아본다면 6차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다양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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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
영국 에버딘대학교 비즈니스스쿨 Global MBA 졸업
부경대학교 기술경영학 박사, 부산대학교 석사, 고려대학교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