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꿈을 품은 도시
페이지 정보

본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2년을 넘어서고 있다. 외교적인 노력으로 조기에 정리가 될 것으로 보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라는 숨은 배경 속에 지속적인 인명과 비용을 소모하면서 두 국가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뿌리 깊은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은 어쩌면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라는 도시가 러시아의 품에 안기면서 본격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대서양으로 열린 따뜻한 바다로 나가지 못했던 러시아는 핀란드만으로 열려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1703년 차지하면서 북해와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이후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럽 열강들과 합종연행(合從連衡)을 하면서 현재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16세기 이후 전 세계의 해양을 지배하면서 현재까지 세계의 주도권을 지키면서 번영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횡보를 지켜본 러시아 표도르 대제는 8~9세기부터 슬라브인들이 살았던 네바강 하구 늪지대를 17세기 말 스웨덴으로부터 수복하면서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도시를 만들고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였다. 표도르 대제의 유럽을 향한 동경은 도시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낳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아름다운 문화재와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이 가진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만들었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두 번째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유럽에서도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러시아의 최대 경제도시이다.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들고 1712년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천도하면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는 1918년까지 수도 역할을 하였다. 1851년 러시아의 최초 철도가 모스크바까지 부설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교통이 편리해짐으로써 이 도시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러시아 혁명과 관련된 피의 일요일, 3월 혁명, 11월 혁명 등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났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29개월 동안 독일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40만 명의 아사(餓死)자가 나오면서도 도시를 지켜낸 레닌그라드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혁명 이후 수도가 모스크바로 이전하면서 도시명을 레닌그라드로 변경했으나 이후 소련이 붕괴된 이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름이 환원되었음
공방전의 현장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전경
ⓒ이성우(2018.12.1)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에서 북극해를 거치지 않고 대서양으로 직행할 수 있는 유일한 항만도시이다. 그래서 국가의 중심 물류망인 철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항 배후에 조밀하게 연결되어 러시아 전체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반도, 발틱삼국을 경유해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철도가 발달해 있다.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역이 없고 대신 이곳에서 목적지 방향 명칭을 붙인 역들이 존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철도역은 다음과 같다. 모스콥스키(Moskovsky) 역은 모스크바와 러시아 국내 방면의 열차가 발착한다. 핀란스키(Finlandsky) 역은 핀란드와 옛 핀란드 영토였던 비보르크 등 카렐리아 지협과 스칸디나비아반도 방면의 열차가 발착한다. 발티스키(Baltiysky) 역은 발트삼국과 북유럽 방면의 열차가 주로 발착한다. 비텝스크(Viciebsk) 역은 벨라루스 방면 열차가 주로 발착한다. 라도시스키(Ladozhskiy) 역은 카렐리야 공화국과 무르만스크 등 러시아 북극 방면으로 향하는 열차가 발착한다. 이러한 상트페테르부르크항 배후의 철도는 러시아가 유럽의 주요 항만이 가지고 있는 주변 국가와 연계된 물류 중심지 기능을 자국과 주변국에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안보를 넘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해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안보의 핵심은 자국의 경제를 지키는 것이니 이는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항 배후철도와 물류기지
ⓒ이성우(2018.12.1)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항만을 통해 흑해, 지중해로 이어진 해상로를 통해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나가고자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의 상실로 인해 자국의 해상 안보뿐만 아니라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곡물 수출길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선택의 유럽의 군사동맹체인 나토(NATO)에 가입하는 것이었고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미국을 포함한 서방 유럽과 러시아의 전쟁인 것이다. 유럽과 러시아의 골깊은 충돌은 결국 해상으로 힘이 뻗어나가는 길인 항만을 방어하고 쟁취하느냐의 반복인 것이다.
푸시킨 거리의 정치 풍자물
ⓒ 이성우(2018.12.1.)
부산항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글로벌 항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안보와 경제를 책임져 온 것처럼 부산항 역시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책임져 왔다. 한국전쟁 당시 UN군들이 상륙하고 군수품이 공급되는 유일한 곳이었다. 1970년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은 부산항과 서울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부산항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 모두를 지키고 일으켜 온 중요한 곳이다.
현재 글로벌 자유무역 시대는 점차 쇠퇴하고 신냉전 시대가 도래 중에 있다. 이 와중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더욱 강경한 고립주의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던 한국은 이제 경제와 안보 모두 미국에 의존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안보 상황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처럼 부산항 역시 위기와 함께 기회를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부산항이 한국 안보와 경제에서 중심지 역할을 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부산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등불이 되어 국운을 상승하게 만든 것처럼 부산도 침체된 지역의 상황을 벗어나 최근 바뀌는 글로벌 환경에 편승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2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맞추어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대립 공간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연결해 주는 안보적 완충공간이자 경제적 연결공간으로 되기 위해 부산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