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바다가 끓는다. 낙동김이 메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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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 있는 낙동김 위판장을 직접 찾았습니다. 첫 낙동김 경매가 열린 이곳은 축제 같은 활기를 띠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무거운 공기가 감돌더군요. 따뜻한 햇살 아래 줄지어 늘어선 물김 상자들을 보니, 부산 바다의 자존심인 낙동김이 올해도 제 몫을 해내길 바라는 어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지난 11월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올해 첫 낙동김 위판이 열리는 모습1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위판장에는 어민들과 중매인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경매 전 중매인들은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물김에서 작은 조각을 떼어내 품질과 길이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습니다.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하니 당연히 잘 살펴봐야겠죠?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어야 할 11월이지만 이날 강서구의 낮 기온은 15도까지 치솟았습니다. 한 어민은 이렇게 한탄하더군요.
“날씨도, 바다도 이렇게 따신 데 김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돈 벌어서 바다에 얼음을 부어야 할 판입니더.”
지난 11월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올해 첫 낙동김 위판이 열리는 모습2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경매가 시작되자 어민 이름과 물량을 외치는 경매사의 목소리가 위판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중매인들이 재빨리 원하는 금액을 적어내고, 단 5분 만에 340상자(40.8t)가 모두 팔렸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물량이 소진되는 모습을 보니 놀라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어민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수온이 안 떨어져 채묘도 늦었고, 수확량도 줄어들까 걱정입니다.
낙동김이 고급이라 외국에서 찾는 사람도 많은데, 계속 이렇게 되면 우리 특산물 명맥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죠.”
낙동김은 부산 바다가 키운 보물입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서 자라는 이 김은 색깔이 새까맣고 윤기가 흐르며 부드럽기로 유명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김에도 반드시 낙동김을 섞어야 고급 김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죠.
기자가 글 내용을 기반으로 ChatGPT DALL-E를 통해 만든 이미지
ⓒOpenAI
하지만 최근 고수온 현상으로 낙동김 산업이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부산은 따뜻한 대마난류가 흐르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전국에서도 가장 먼저 수온 상승 영향을 받는 지역입니다. 올해 첫 경매가 지난해보다 17일이나 늦어진 것은 이러한 고수온의 직격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산시수협에 따르면 낙동김의 생산량은 지난 5년간 40%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2020년에 1만 6천 톤이 넘던 생산량이 올해는 1만 톤 아래로 떨어질 위기입니다. 낙동김은 부산시수협이 70%, 경남에 있는 의창수협이 30%를 위판한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종자 관리가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재 낙동김의 종자는 전남이나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는데, 부산만의 고유한 종자를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전남은 이미 고수온에 적응한 신품종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면 낙동김은 여전히 외부 종자에 의존하고 있어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큽니다.
어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어자재 지원,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어민들이 안정적으로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산시수협 오성태 조합장은 “김은 단일 품목으로 수출액 10억 달러를 달성한 효자 품목입니다. 부산시는 낙동김이라는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느낀 어민들의 고단함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낙동김은 부산 경제의 일부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고급 수산물로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자산입니다.
지난 11월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에서 올해 첫 낙동김 위판이 열리기 전 직원들이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지난 11월 22일 낮 12시 부산 강서구 명지동 위판장의 낙동김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낙동김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부산 고유의 김 종자를 개발해 고수온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한 품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지속 가능한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둘째, 어민들이 안정적으로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자재 지원과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어민들은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부산시는 낙동김이라는 상표 가치를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셋째, 기후 변화에 맞선 기술 혁신과 국제 협력도 중요합니다. 위성을 활용한 바다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생산 예측 기술은 기후 위기에 대응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위기를 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변화와 혁신으로 낙동김 산업을 재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부산 바다가 다시금 낙동김의 풍성한 물결로 빛나기를 기대하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상배
부산일보 해양수산부 기자
부산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며 올해 해양수산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