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바이킹의 후예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곳, 노르웨이 보되의 북극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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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에 대한 국내외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 중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극권에 대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JD벤스 부통령이 직접 현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 역시 북극항로를 국부창출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로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북극항로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였고, 어언 20여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북극항로의 가능성에 대한 이슈 제기와 경제성 여부에 대한 논박이 진행 중이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해 주는 글로벌 무역로의 지름길이다. 특히 북극항로 중 하나인 북동항로(NSR: 동아시아-북유럽 연결로, 이하 북극항로로 지칭)는 동아시아와 북유럽 사이의 무역에서 기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해상항로보다 부산-로테르담 기준으로 물리적 거리는 7,000km, 시간적 거리는 10일 이상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계절적 요인으로 인하여 운행가능기간이 현재 6개월 미만이고, 항로의 수심제한 등으로 경제성에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우전쟁의 종식과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부상으로 아시아-유럽간 무역로의 대안인 북극항로의 이용이 재조명되고 있다.
북극항로가 혹자들이 언급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기본적으로 북극항로 개척에는 수송할 화물, 운송할 선박, 화물을 집적하거나 하역할 수 있는 항만, 선박 운송시 필요한 항로 정보 그리고 항만 주변 화물을 소비하거나 창출할 수 있는 도시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극지역의 기후적 특수성으로 인해 도시 인프라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극항로의 도시들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극항로의 상업화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 국가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러시아 다음으로 북극항로에 가장 많이 접해 있고, 자국의 북극 광물 및 에너지 자원, 수산자원, 공산품 등을 아시아 주요국에 수출하고 반대로 저렴한 상품을 단기간에 수입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북극항로에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노르웨이는 북극항로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정보, 인력 등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고, 그 거점도시가 보되(Bodø)와 트롬쇠(Tromsø)다. 보되(Bodø)는 노르웨이 노를란주의 주도(행정구역)이자 면적 1,392㎢ 인구는 5만 3천명으로 노르웨이 북부에서 트롬쇠 다음 2번째로 큰 도시이다. 보되의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100/평방 마일) 당 38.5명이며 지난 10년 동안 인구가 8% 증가했다.
보되 항만 전경
ⓒ이성우(2014.10.12.)
이 북극권의 도시에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노르드란드(Nordland)대학이라는 북노르웨이 북극문제 특화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노르드란드 대학은 25개국에서 온 1만 천명의 학생, 18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통적인 인재 뿐만 아니라 북극해에 특화된 인력을 양성 중에 있다.
필자가 지난 2014년 하이 노스 대화(High North Dialogue) 발표를 위해 노르드란드대학에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학교 교정과 함께 유럽 전역, 러시아, 인도, 중국, 미국에서 온 학생들이 같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에 많이 놀랐었다. 또한 하이 노스 센터(High Nord Center)라는 북극을 주제로 하는 연구소 역시 많은 인상을 남겼다. 이 연구소는 원주민 보호와 생활지원, 북극항로의 지속가능한 활용, 북극관련 정치, 경제, 기술관련 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 연구, 교류 및 인력을 양성하고 있었다.
이 학교의 석사와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보면 얼마나 북극에 대해 이들이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석사과정에 ‘북극의 지속 가능성 리더십’, ‘북극에서의 비즈니스와 거버넌스’, ‘북극에서의 국제 거버넌스와 비즈니스’, 박사과정에 ‘북극 거버넌스: 북극의 공공과 민간분야를 위한 함의’, ‘북극에서의 스마트 사회’ 등이 있고, 전체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북극항로에 대한 단순한 상업적 이용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기술, 문화, 환경, 생태계, 원주민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수도는 오슬로이지만, 노르웨이 북극권 수도는 보되였고 전초기지는 트롬쇠로 기능을 정리해 둔 것 같았다.
노르드란드(Nordland)대학 전경
ⓒ이성우(2014.10.13.)
마치 동화 속의 도시같은 보되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지형인 피요르드(fiord)식 해안을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온난한 북해 해류 덕분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의외로 인류가 아주 오래 전부터 살았던 도시이다. 빙하기 직후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이를 증명하는 유물들이 매우 풍부하다.
선주민들은 당연히 사미(Sami)인 스칸디나비아 북부와 핀란드 북부, 러시아 연방령 콜라반도에 걸쳐서 거주하고 있는 우랄계 민족임
이지만 바이킹들도 일찍이 이 땅을 많이 찾았으며, 노르웨이인들에 의하여 도시가 세워진 이후에는 사미인과 러시아인들을 견제하는 요새 역할을 해 왔고,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시대에는 북방 영토 확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북극 탐험 경쟁이 활발하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도 트롬쇠와 함께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은 북극항로에 대한 러시아 독점을 방어하는 학문적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미족 주거지
ⓒ이성우 (2014.10.13.)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극항로의 엄청난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있다. 우선 정치적 관계에서 한-유럽간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과의 얽힌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기존 부산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서 유럽,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적절한 견제와 경제 교류를 통해서 발전해 왔지만 변해버린 지정학적 환경 변화로 더 이상 장점이 아닐 수 있다.
또한 경제적인 관점에서 미흡한 항로 인프라, 부족한 쇄빙선과 높은 통행료, 급격한 온난화로 늘어나는 북극해 유빙과 변화무쌍한 기후변화, 북극항로 리스크와 정보 부재로 인한 비싼 보험료, 부족한 해저/해상 정보, 제한된 수심 등 여러 문제들을 노르웨이를 포함한 유럽국가와 현지 도시들과의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부산 입장에서 북극항로는 현재 부산이 처한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이 북극항로 상용화를 위해 북극권 유럽국가와 다음과 같은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북극항로의 물류와 도시인프라 구축에 한국의 경험이 필요하다. 북극항만, 배후물류네트워크, 물류시설 그리고 도시인프라 등이 한국의 풍부한 자본, 기술, 경험 등으로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조선산업이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한때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 제한적인 지리적 입지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을 넘겨 주었다. 반면, 조선산업 중 고부가가치 산업이 첨단 소재, 부속품, 설계 및 시스템 등에서는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극한지역 운항관련 조선기술은 한국을 앞서고 있다. 결국 한국과 북유럽 국가간 조선분야 협력은 극한지역의 운항 조건에 맞는 북유럽 조선산업의 소프트웨어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조선산업의 엔진, 반제품, 완제품 등 하드웨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능할 것이다.
셋째는 북극항로의 특수성을 고려한 디지털 기술의 협력 역시 가능할 것이다. 노르웨이는 북극권의 극한 상황에서 적합한 과학기술이 강한 반면, 한국은 응용 과학기술이 발달해 있어 상호보완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극권 이슈에 대한 공동교육이다. 북극관련 정치, 사회, 문화, 환경, 원주민 등의 분야는 기존 노르웨이 대학에서 수행하고, 북극항로와 자원개발과 같은 상업적 분야는 접근성과 비즈니스 규모가 큰 부산에서 나누어서 공동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