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일본 닛또 세이모(日東製網)-‘그 회사, 115년 동안 어망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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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대풍시대에 어망 공장 설립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조선이 무너졌다. 그해 같은 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어망 공장 하나가 문을 열었다. 고바야시 테루아키가 설립한 사이비 모지 오리(현 닛또 세이모)였다.
당시 일본은 정어리 산업이 번창했다. 1900년대 후반부터 일본 연안에 정어리 떼가 밀려들면서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 정어리를 둘러싼 새로운 산업군이 대거 등장했다. 잡은 정어리를 어유, 어분(비료), 젓갈, 건어물 등으로 만들어 팔았다.
지역 어촌은 정어리 어업으로 인구가 늘어났고, 어상(魚商)들은 덩달아 부를 축적했다. 수산가공업이 발달하면서 지역 경제에 윤기가 흘렀다. 닛또 세이모는 일본 어업이 훈풍을 타던 바로 그 시기, 한복판에 있었다. 1910년 작은 어망 공장으로 출발한 닛또 세이모가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을 거듭하면서 세계 어망시장에 우뚝 선 비결을 추적했다.
닛또 세이모의 1910년 어망 공장 모습
ⓒ닛또 세이모(Nitto Seimo Co., Ltd.) 검색자료(2025. 04. 21)
매듭 없는 그물 만들어 대박 신화
닛또 세이모의 창업 이념은 매우 평범하다. '창의', '성실', '노력'을 기업 활동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닛또 세이모는 이 원칙을 꼼꼼하게 지키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어업인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서비스를 내놓았다. 창업자 고바야시 데루아키가 기존의 그물 짜는 기계(어망 제직기)를 대폭 개량하여 그물코 뒤틀림이 적은 새로운 형태의 그물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 특허 기술 덕분에 닛또 세이모는 설립 초기부터 품질 좋은 어망을 만드는 회사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닛또 세이모 기술 혁신의 하이라이트는 ‘무결절(無結節) 그물’이다. 즉 매듭 없는 어망이다. 1925년에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매듭 없이도 어망을 짤 수 있는 그물 제직기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일본을 비롯해 16개 나라에서 57건의 특허를 받았다.
닛또 세이모의 무결절 어망 및 잠수 가능 어망
ⓒ닛또 세이모(Nitto Seimo Co., Ltd.) 검색자료(2025. 04. 21)
그물에 어군 탐지기까지 설치한다
매듭 없는 그물은 말 그대로 그물코 교차 지점에 매듭이 없는 형태로, 더 가볍고 튼튼하며, 어망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마디가 있는 그물은 매듭 부분이 약해지거나 물의 저항을 높여 그물질을 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게 흠이었다. 이에 비해 매듭 없는 그물은 강도가 높고, 내구성이 좋아 어획 효율과 그물 수명을 크게 향상시켰다.
무결절 어망은 당시 어업 현장의 ‘상식을 뒤엎은’ 혁신으로, 오늘날 닛또 세이모를 글로벌 어망 기업으로 만들 일등 공신이다.
이후로도 닛또 세이모는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끊임없이 이어왔다. 듀퐁에서 합성섬유(나일론 등)를 개발하자 재빨리 이 신소재를 도입해 나일론 무결절 그물을 선보이는 등 시대에 맞는 제품 개선을 선도했다. 1980년대에는 어망에 따개비나 해조류가 달라붙는 것을 줄이는 방오(防汚) 코팅 기술을 개발해 그물의 수명을 늘리는 혁신을 이뤘다.
최근에는 디지털 어망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전통적으로 정치망(定置網) 어업은 물고기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수동적인 어업 방식이다. 어망을 끌어 올리기 전까지 정치망에 어떤 물고기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알기 어렵다.
닛또 세이모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물에 어군탐지기(소나)를 설치하고, 물고기 정보를 육상의 태블릿으로 전송하는 ‘스마트 정치망 어업 시스템’을 개발했다. 어업인이 집안에서 핸드폰으로 정치망에 들어온 물고기 양을 알 수 있어 매일 배를 띄우는 부담을 줄였다.
닛또 세이모의 정치망 유비쿼터스 어망
ⓒ닛또 세이모(Nitto Seimo Co., Ltd.) 검색자료(2025. 04. 21)
경영혁신과 글로벌 시장 진출 추진
닛또 세이모의 성장사에는 100년 기업의 생존전략도 중요한 몫으로 등장한다. 창업 초기부터 연구 개발(R&D)에 적극 나서 특허라는 지적 재산권을 미리 확보했다.
또한 1945년에 미군 폭격으로 어망 제조 핵심 공장이 소실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임시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1년여 만에 공장을 완전히 재건할 만큼 강한 복원력(resilience)을 보여주었다.
닛또 세이모가 경영 혁신을 이룬 또 다른 축은 사업 다각화와 전문화다. 원래 어망 한 우물만 파던 회사였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어망 기술을 다른 산업 분야로도 확장했다. 합성섬유로 만든 튼튼한 무결절 그물을 어업은 물론, 스포츠용 네트, 산업용 안전망, 농업용 새막이 그물 등 다양한 용도로 그물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닛또 세이모 해외 협력 사업
(좌)파푸아 뉴기니 어업 협력 사업 , (우)필리핀 정치망 어업 협력 사업
ⓒ닛또 세이모(Nitto Seimo Co., Ltd.) 검색자료(2025. 04. 21)
해외 시장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1987년에 해외법인을 남미 칠레에 설립한 데 이어, 2012년에는 태국에 자회사를 세워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에서 현지 어업인과 함께 일본식 소형 정치망을 설치하는 등 개발도상국의 어업 인프라 구축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어망 및 양식장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2024년에 27억 1000만 달러였던 시장이 올해에는 28억 4000만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최근에 닛또 세이모의 성장이 중국이나 타이완 등 후발 주자에 비해 주춤거리는 형국이다. 115년 장수 기업 답게 혁신을 기반으로 수성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