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아드리아해의 리예카, 항만과 역사문화재의 공존을 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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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 깊숙한 곳에 돌출한 이스트리아(Istria) 반도 남단의 크바르네르(Kvarner)만에 위치한 리예카(Rijeka)는 크로아티아 서북부에 있는 도시로 국가 3대 도시이자 최대 항만이다. 인접한 슬로베니아 코페르(Koper)항의 좁은 해안선으로 인한 확장 한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항의 비싼 임금과 배후교통망 문제 등으로 리예카가 새로운 중앙 유럽의 항만물류거점으로 성장 중에 있다.
이미 글로벌 2위 선사인 머스크가 지중해 물류거점을 리예카로 옮겨 왔으며, 이로 인해 다수의 글로벌 물류기업들도 리예카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1) 또한 유럽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한국 물류기업들의 새로운 중앙유럽 진출 물류거점으로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1)리예카항의 Gateway 터미널은 머스크(Maersk)의 APM Terminal과 ENNA 그룹의 ENNA Logic이 각각 51%, 49%의 지분으로 합작 투자했으며, 50년간 터미널 운영권을 양허받음
저자가 15년 전 리예카를 방문했을 때 1주일 동안 동양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던 기억과 도시가 알프스산맥 기슭과 아드리아해 사이의 좁은 평지에 입지하여 배산임해(背山臨海) 지형인 부산과 매우 흡사하다는 첫인상이 남아있다. 리예카는 이런 지형적 구조로 인해 깊은 수심의 항만은 있으나 좁은 배후지로 인한 항만용지 부족으로 과거 부산처럼 항만 외부에 산을 절개해서 ODCY(Off-dock Container yard)에 컨테이너를 쌓아두고 있었다. 당시 리예카는 구소련에서 벗어나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외국인의 출입이 거의 없었고 좁은 배후지로 인해 항만 기능 역시 제한되어 있어서 자국과 동구 동맹국들만 연결하는 기능만 수행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과 함께 경제가 성장하면서 무역이 증가하게 되었고 대형 선박을 통한 무역이 활기를 띄면서 대수심 항만인 리예카항의 가치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지중해 그리고 아드리아해로 이어지는 해상로에서 항만의 확장성이 높고 배후물류망이 갖추어진 리예카의 부상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리예카항 전경
ⓒ부산시 홈페이지(https://www.busan.go.kr/rijeka/view), 2025.7.22
리예카항은 발칸반도 전역, 헝가리,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중부 및 남동부 유럽 국가로의 접근성이 우수한 전략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항만과 배후국가를 연결할 수 있는 물류인프라와 네트워크 부족으로 현 상황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슬로베니아의 코퍼항이 총 화물 처리량, 컨테이너 처리량 등에서 리예카항을 2~3배로 크게 앞서고 있는 이유이다.
코페르항과 리예카항 주요 지표 비교
ⓒKOTRA 자그레브 무역관 발표자료
결국 크로아티아 정부와 리예카 항만당국은 그 동안 큰 약점이었던 동유럽 배후연결 인프라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철도와 도로망 관련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다. 리예카항은 중앙정부 주도로 2023년 9월에 시작된 리예카 Gateway 프로젝트를 통해 대규모 확장과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총 3억 8,000만 유로가 투자되며, 2025년까지 첫 번째 단계가 완료될 예정이다. 첫 단계에서는 2억 유로가 투입돼 연간 65만 개의 컨테이너 처리 용량을 갖추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추가로 1억 8,000만 유로를 투자해 연간 100만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리예카항의 일련의 발전 계획들은 크로아티아 정부와의 협력 하에 1순위로 추진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 항만의 물류 처리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리예카항은 주변 역사문화 자산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환경친화적이고 효율적인 항만으로 자리 잡기 위해 친환경 하역장비 등을 도입하고 있다.
리예카 시당국은 항만의 경쟁력 제고와 함께 유럽집행위가 2020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한 리예카의 역사문화 자원의 보존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리예카시 정부는 단기간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춘 항만과 배후물류인프라 개발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환경 보호, 역사 및 문화자산 보존 그리고 효율적인 물류 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다른 항만도시들과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리예카는 13세기에 조성된 바로크 양식의 트르사트성(Gradina Trsat), 트르사트 성모 프란치스코 교회와 수도원(Shrine of Mary of God of Trsat) 그리고 코르조(Korzo)의 거리, 대학 등이 중요한 세계 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항만 인접지역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리예카항 배후에 있는 트르사트성은 로마시대부터 바다와 좁은 평지를 통과하는 통로를 방지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베네치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거쳐 크로아티아로 이어지는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트르사트성은 리예카시의 중요한 역사문화적 자산으로 매년 엄청난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이외 주변에 트르사트 성모 프란치스코 교회와 수도원도 존재하고 있어 리예카시 정부는 도심의 항만과 역사문화재가 공존하고 있고 좁은 시가지를 고려하여 국가 전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항만 기능 제고와 배후 교통·물류망을 개선하고 역사자산을 유지하면서 관광산업 활성화까지 동시에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트르사트성
ⓒvisit Rijeka
트르사트성에서 바라본 시가지와 항만
ⓒ이성우, 2015.8.22.
트르사트 성모 프란치스코 교회와 수도원
ⓒadrigo.eu
크로아티아 리예카항은 경제를 위한 항만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래된 도시의 자산과 동반성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부산은 국가 경제 개발 논리에 밀려 중요한 근대 역사와 문화 자산인 부산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 자산들을 많이 훼손해 왔다. 급격한 성장기에 놓친 부산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항만기능의 구조조정, 북항 재개발 그리고 부산 원도심 재생과 함께 회복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으로 부산항을 경유해서 미국으로 가던 중국발, 미국향 환적화물의 감소, 우리나라 기업들의 북미지역 투자 증가로 인한 한국과 아시아에서 발생할 물동량 감소 등 현재 부산항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차원에서 기존 부산항인 북항은 주변 문화적, 역사적 자산의 복원과 함께 북항 재개발을 통한 성장 원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현재 북항의 항만기능은 과감하게 부산 신항으로 완전히 이전하여 규모의 경제 실현과 전략적 집적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