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학 바다가 위험하다. 녹아내리는 제주 바다의 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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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던 지난 여름, 심상치 않은 제보를 받다.
지난해 전 세계 바다는 끓어넘쳤다. 극지방을 제외한 전세계 바다의 일평균 기온은 2023년 3월 부터 관측 이래 최고값을 경신하더니 그 추세는 1년 4개월이 지난 2024년 7월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그 여파는 우리 바다에도 미쳤다.
2024년 8월 12일, 파란 사무실 핸드폰으로 심상치 않은 모습의 산호 영상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섶섬 연산호들이 축 늘어진 채로 다 누워있었다는데 수온 때문일까요?’ 프리다이빙 강사 활동을 하는 회원의 제보였다. 제주도 해역에 고수온 경보가 내려진 지는 2주가량이 지날 무렵이었고, 제주도정이 저염분수 유입 대응(행동요령)을 발령하고 3일째, 올 여름 중 가장 낮은 염분을 기록한 날이었다.
그 연락 후에 파란은 마침 서귀포 문섬, 범섬, 송악산 등의 해역에서 수중 조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조사를 위해 물에 뛰어든 순간 헉!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온탕에 들어온 듯 물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이브컴퓨터를 확인하니 표층부터 수심 10m까지 수온이 29℃를 나타내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0~21℃를 오가던 수온이 뜨거운 여름을 맞아 급격히 높아져 있었다.
이내 낯선 온도만큼 낯선 수중 풍경이 나타났다. 여름을 맞아 산란기를 준비하느라 통통 물이 올라와 있어야 하는 연산호들이 축축 처진 채 바위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이미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서 나뒹구는 산호도 여럿 있었다. 산호들은 물이 흐르지 않는 정조 시에 폴립을 잠시 접어두고 몸을 축 뉘어드린 채 휴식을 취하곤 하지만, 우리가 본 산호의 모습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쉬는 것이 아닌 병든 모습이었다.
연산호 녹아내리다
파란은 바다의 이상 현상을 인지한 8월 중순부터 고수온이 지속된 9월 말까지 서귀포 해역(섶섬, 문섬, 범섬, 송악산)에서 긴급 조사를 했다. 기존에 운영 중이던 산호탐사대 를 포함한 해양시민과학자들과 함께 산호충류의 이상 현상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기록하였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수심 10m 내외에 서식하는 연산호 다수의 개체가 이상 폐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산호의 기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모양으로 쳐지다가 결국 탈락하거나, 아예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루처럼 부서지는 개체도 많았다.
‘멸종위기야생생물’이자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법정보호종인 밤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검붉은수지맨드라미와 제주 바다의 우점종인 분홍바다맨드라미, 큰수지 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 미기록 연산호류 등 이상 현상은 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산호의 기부는 녹아내렸고, 폴립은 부스러져서 떨어져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녹은 형태로 쳐진 큰수지맨드라미. 폴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바위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가시수지맨드라미, 곤봉바다맨드라미과_미동정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원인은 장기간 고수온과 저염분수!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고수온 주의보 가 발령된 일자는 무려 71일, 그 중 제주도는 61일간 수온이 28℃ 이상으로 3일 이상 지속될 경우 발령되는 고수온 경보가 이어졌다. 지금껏 유례없는 이상 고수온 현상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기억하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8월 서귀포(중문) 수온을 비교하면, 일평균 수온이 30℃ 이상인 날은 2023년까지 단 하루도 없었지만 2024년에는 무려 26일간 일평균 수온 30℃ 를 넘었다. 월평균 수온도 2021년 25.9℃, 2022년 26.6℃, 2023년 28.0℃, 2024년 30.0℃로 불과 3년 만에 무려 4.1℃가 올랐다.
해양생물에게는 이러한 고수온이 장기간 유지되는 것이 큰 위협요인이다. 극한 상황이 짧으면 잠깐 이상현상을 보인 후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길어질수록 유전자 변형이나 집단 폐사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2018년~ 2024년 8월 서귀포(중문) 수온 변화(자료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실시간 해양수산환경 관측시스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한편 지난해 중국 남부의 집중호우로 양쯔강이 넘쳐 바닷물과 섞이면서 저염분수(26psu 이하)가 형성되었다. 그 물이 제주도까지 도달하여 염분은 평년보다 더 낮았다. 염분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저염분수가 유입되면, 바닷물의 염분이 급격히 낮아지며 ‘정착성 저서동물'의 삼투압 능력이 저하되고, 생존에 큰 위협이 된다. 소라, 전복뿐만 아니라 산호도 이와 같은 저서생물에 포함된다.
2018년~ 2024년 8월 서귀포 염분 변화 (자료출처 : 국립해양조사원 서귀포 조위관측소 관측 자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고수온과 저염분수처럼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가해질 경우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 폭발적이고 크다. 산호의 경우, 장기간 수온 스트레스로 인해 취약해진 연산호 군락에 저염분수가 유입되면 산호가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2018년 전남 가거도에 군락을 이루던 빨강해면맨드라미가 국지적인 멸종에 이를 정도로 타격을 입었던 예가 있다. 지난해 제주도의 경우도 같은 이유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산호를 지켜내기 위해 모두가 민관이 협력하자!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던 돌산호와 말미잘의 백화 현상, 연산호의 녹아내림 등 고수온으로 인한 제주바다 해양생태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고수온 이상 현상과 관련한 물리, 화학, 생물학적 해양생태계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또다시 같은 현상이 일어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인간의 예상을 벗어난 속도로 지구가 변화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속도를 따라잡을 시스템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해양수산부, 제주특별자치도, 해양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제주바다 고수온 대응 해양생태 민관특별조사단’ 구성을 적극 검토하고 실행한다면 어떨까? 해양 연구 인력이 부족한 만큼, 민간 중심의 해양시민과학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또다시 다가올 고수온 사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어떨까? 작년 여름, 녹아내리는 산호의 이상을 감지하고 조사하고 기록해 두었던 것도 바로 제주바다를 사랑하는 다이버, 시민과학자들 뿐이었지다. 올해 여름에는 시민과학자와 연구자, 정책관이 함께 바다에 나와 있기를 바란다!
건강한 연산호 군락, 문섬 2025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본 글은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슈리포트 <2024년 여름 고수온으로 인한 제주바다 산호충류 이상 현상> 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본사진 링크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N4-zmiKUHWHVZN9oOE_4baidRALAtcfq
신주희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