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과거 국제도시에서 글로벌 환적허브로 부상하는 모로코 탕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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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해에서 발생한 미사일 피격 사태로 수에즈 운하 통항이 어려워지면서 글로벌 무역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모로코의 항만 도시 탕헤르(Tangier)가 지중해 지브롤타 해협의 지정학적 이점을 발판 삼아 조용히 성장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탕헤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지배했던 베르베르인의 언어로 '수로'를 의미합니다. 그 이름처럼 탕헤르는 기원전 7세기 페니키아의 식민 도시로 건설된 이래 물류 요충지로서 수많은 세력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로마 제국, 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을 거쳐 7세기부터는 여러 이슬람 왕조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포르투갈과 영국령이 되기도 했으며, 한동안 주인이 없는 땅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이후 독일, 스페인, 프랑스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다 국제연맹이 지정한 국제도시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페인에 점령되었다가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탕헤르가 겪은 지난한 전쟁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이 도시의 지경학적 장점이 곧 지정학적 약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지브롤타 해협과 탕헤르 위치
Ⓒlibrewiki.net(검색일: 2025.9.27)
21세기에 들어 탕헤르는 프랑스 자본을 유치하여 대규모 항만과 배후 산업단지 개발에 나서며 글로벌 중계 무역항으로의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초기에는 배후지 인구와 생산 기반이 약해 성장이 더뎠으나, 코로나19 팬데믹과 홍해 사태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이용도가 떨어지자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선박들이 희망봉으로 우회하게 되었고, 이로써 탕헤르는 아시아-유럽, 유럽-아프리카, 아시아-지중해를 잇는 핵심 간선 연계형 중계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탕헤르항은 현재 5개 대륙 70개국 180개 항만과 연결되어 있으며, 연평균 17,000척의 선박이 기항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물동량은 2021년 717만 TEU에서 2024년 1,024만 TEU를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10% 이상의 놀라운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1~2% 성장에 그친 부산항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이며, 이미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20위권에 진입한 규모입니다.
탕헤르항 전경
Ⓒhttps://www.tangermedport.com/en/(검색일: 2025.9.27.)
탕헤르항 전경
Ⓒ Freepik
탕헤르항의 경쟁력은 항만배후 물류단지에서도 나옵니다. 2008년 설립된 물류단지 '메드허브(Medhub)'는 유럽, 지중해,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물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관세 자유 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10억 명 이상의 소비자가 있는 시장에 빠르고 효율적인 유통을 가능하게 하며, 현재 세계 25대 전문물류기업 중 9개사가 입주하여 창고 보관, 포장, 라벨링 등 고부가가치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래 잠재력 또한 상당합니다. 모로코 전역을 잇는 고속철도망이 탕헤르시로 연결되며, 2030년 이후 스페인 타리파와의 지브롤터 해저터널1)이 개통되면 유럽 대륙과 육로로 직접 연결됩니다. 이는 유럽대륙 화물까지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1) 스페인과 모로코 정부는 오랜 논의 끝에 2021년 스페인 타리파와 모로코 탕헤르 간 38.7km 길이의 해저터널을 연결하기로 합의했으며, 164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출처: 모로코 코트라 무역관)
21세기 들어 자유무역이 보편화되었지만 2010년 이후 보호주의, 전쟁, 재해,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공급망 리스크는 이제 '뉴노멀'이 되었습니다. 탕헤르가 이러한 위기의 수혜자라면, 수에즈 운하 인근 항만들은 피해자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서 부산항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중국-대만 간 양안 리스크, 미국 항만 노조 파업, 일본 지진 등은 상존하는 위협이며, 미국발 관세 전쟁은 이미 부산항 물동량 감소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8월 기준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대비 5.14% 감소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9월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국제도시의 지위를 잃었던 탕헤르가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를 기회 삼아 재도약한 것처럼, 부산항 역시 고베 대지진 당시 반사 이익을 통해 글로벌 무역항으로 성장했던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상수가 된 지금, 탕헤르의 사례를 교훈 삼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