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등대 호텔: 리틀 뢰야 등대 호텔
페이지 정보

본문
등대의 시대가 저물다.
노르웨이에 처음으로 등대가 들어선 것은 1656년이다. 17세기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첫 등대는 1903년에 지어진 인천 팔미도 등대다. 두 등대 간의 시차는 240년이 넘는다. 1656년이면 조선 효종이 북벌론에 불을 지피며, 군비를 한창 확장하던 때였다. 그 당시 지구 반대편, 대서양 북쪽 바다 노르웨이 연안에는 지나가던 배에 희망의 빛이 되어줄 등댓불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932년까지 노르웨이 바닷가에는 모두 209기의 등대가 세워졌다. 노르웨이는 국토 면적에 비해 해안선(10만 915km) 길이가 긴 나라다. 리아스식 해안지역에 촘촘하게 불을 밝힐 등대가 많이 들어선 이유이기로 하다. 등대의 임무는 어쩌면 단순하다. 또 한편으로는 지순하다. 등대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으로 배가 항해 위치를 확인하고, 암초와 같은 장해물을 피할 수 있어서다. 선원이나 화물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아주 고귀한 존재였다. 또한, 등대는 한때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 집약된 문명의 아이콘이었고, 막막한 바다를 안내하는 길잡이었다.
노르웨이 리틀 뢰야 위치도
Ⓒ 구글 지도 검색자료
노르웨이의 다양한 등대 모습
Ⓒ위키피디아 검색자료
등대를 민간에게 팔다.
등대는 이제 역사적인 유물로 점차 쇠락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 때문이다.
항해 기술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등대에 의존했던 선박들이 지금은 GPS나 레이더, 전자 해도 등과 같은 첨단 항법 장치를 달고 항해한다. 위성 항법 시스템은 날씨, 시야, 거리와 상관없이 항해 정보를 제공한다. 기상 여건에 따라 가시성이 제한적인 등대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는 이유다. 등대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다. 기존 등대는 자동화된 항로 표지 장치(부표, 전자 신호기 등)에 비해 효율이 낮다. 많은 나라들이 자동화 시설을 도입하면서 관리인력을 줄이거나 등대를 폐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르웨이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1974년부터 2005년까지 연안 지역의 모든 등대가 자동화됐다. 더는 ‘등대지기’가 필요 없게 됐고, 그마저 있던 무인 등대도 노후화되면서 유지·관리 비용이 커졌다. 노르웨이 연안관리청(NCA)이 2005년~’06년에 국가에서 관리하는 등대 20기를 민간에 매각한 배경이다.
리틀 뢰야 섬의 타르보겐 옛 마을 모습
Ⓒ위키피디아 검색
호텔로 다시 태어나다.
리틀 뢰야 등대(Litløy fyr, 작은 등대라는 뜻)는 노르웨이 북서쪽 노르란드 주, 뵈 시의 외딴 섬에 있다. 면적 0.67제곱킬로미터의 아주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주로 대구·청어 등을 잡는 어업인이 거주했다. 19세기 말에는 상주 인구가 800명이 넘을 정도로 어업이 번성했다. 어항은 물론 기상관측소와 작은 우체국이 있을 정도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선이 대형화되는 등 어업 구조가 바뀌면서, 교통과 의료 시설이 부족했던 이 섬은 젊은 층이 먼저 섬을 떴나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서서히 섬을 빠져나가 1970년대에 이 섬은 완전히 무인도로 변했다. 이 섬의 리틀 뢰야 등대는 1912년에 설치됐다. 산 정상 쪽에 등대와 그 아래 쪽 경사면에 등대관리인 숙소 1채가 세워졌다. 80년 가량 운영되던 이 등대는 1991년에 완전 자동화됐다. 2003년에는 등대지기가 철수했다. 그리고, 2006년 노르웨이 정부가 등대매각에 나섰을 때, 프랑스 출신 전직 여성 저널리스트가 리틀 뢰야 등대를 매입했다. 엘렌 마리 한스틴센이었다. 그는 20년 동안 척박한 북대서양 섬에서, 거센 바다 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 호텔을 만들었다.
엘렌 마리 한스틴센
Ⓒhttps://www.littleislandlighthouse.com/
리틀 뢰야 등대 호텔 홈페이지 모습
자료: https://www.littleislandlighthouse.com/
리틀 뢰야 등대 호텔의 여러 가지 이미지
Ⓒhttps://www.littleislandlighthouse.com/
‘1 Bed Room Hotel’
한스틴센은 2006년부터 건축가 손을 빌려 본격적인 리노베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노후화된 등대와 등대지기 숙소를 리모델링하고, 방문객 숙박 시설과 섬 투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21년에는 노르웨이 문화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나섰다. 등대지기 숙소의 석면을 들어내고, 원래의 목재 패널도 드러냈다. 등대 타워에 유리를 다시 끼워 넣고, 붉은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등대를 붉은색으로 칠한 것은 모양이 엇비슷한 주변 등대들과 차별화를 겨냥한 것이다.
이 등대 호텔의 기본 컨셉은 ‘아주 고즈넉한 힐링’이다. 투숙객들은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바다를 조용히 조망하고, 등대 호텔 객실 천장에 난 유리창을 통해 환상적인 오로라는 물론, 칠흙 같이 깊은 밤, 그리고 고요한 바다에 둘러싸여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숙박뿐만 아니라, 섬 탐방 투어와 웨딩 이벤트, 로컬 음식 체험까지 프로그램을 더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리틀 뢰야 섬은 고고학적인 유산과 동서 냉전시대 이야기, 바다 생명, 그리고 노르딕 서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다. 엘렌 마리 한스틴센은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져가는 등대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만들었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이곳에는 등대관리인 숙소를 개조한 럭셔리 숙박 시설도 있다. 숙박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하루 삼시 세끼 제공에 3일 숙박기준으로, 300만 원 가량이다. 옵션은 다양하다.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 법학박사
해양 전문지 『디 오션』, 『오션 테크』, 『환동해 경제학』 등을 공동기획하고, 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