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 물길 따라 예술로 읽는 회복과 연대의 풍경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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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무더운 열기 떠난 9월 하순, 다대포해수욕장은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특별한 무대가 된다. 부산의 서쪽 끝,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습지가 이어지는 곳. 6년 만에 다시 다대포로 돌아온 2025바다미술제. 김금화, 베르나 피나(Bernard Vienat) 두 공동 전시감독이 이끄는 2025바다미술제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을 만나보자.
2025 바다미술제 전경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다채로운 배경이 직조한 시선과 관계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는 다대포의 ‘밑 물결’
2025 바다미술제는 낙동강과 남해, 아미산이 만나는 다대포의 독특한 지형과 생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수와 담수,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뒤섞이는 이곳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새로운 생태적·문화적 서사를 만든다. 산업화의 흔적과 생태 회복의 풍경이 공존하는 다대포는 예술가들에게 실험의 장이자,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올해 전시주제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의 키워드 ‘언더커런츠(Undercurrents)’는 수면 아래 흐르는 ‘저류’ 또는 ‘밑 물결’을 의미한다. ‘밑 물결’은 생태적·문화적 층위에서 감지되지 않는 흐름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으로 확장되어 물길을 따라 드러나는 것과 숨겨진 것들, 소외된 존재들까지 아우른다. 총 17개국 23작가(38명)의 작가들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환경, 지역 공동체와의 관계를 탐구하며 다층적인 시선으로 다대포를 해석한다.
다대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예로부터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구름도 쉬어간다는 몰운대, 갯벌과 갈대밭을 따라 생태 체험장과 함께 조성된 고우니 생태길, 그 끝에서 만나는 1998년 준공되어 2013년 가동이 중단된 다대소각장, 그리고 과거에 카페로 활용되다 지금은 운영을 멈춘 커피숍 자리까지, 다대포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피며, 자연과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예술적 시선으로 담는다.
김상돈, 〈알 그리고 등대〉, 2025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라울 발히,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 2025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다대포의 밑 물결: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연대적 울림
사운드 미디어 아티스트 마르코 바로티(Marco Barotti)는 부산 앞바다에 직접 들어가 수중 생물의 소리를 채집했다. 이렇게 포착한 자연의 소리는 믹싱 작업을 거쳐,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하기 어려운 존재들과 과거 다대포의 전통 어업 노동요인 ‘후리소리’를 연결한 작품 <표류하는 소리>로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몰운대 해안산책로를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자연 분해되는 재료로 만든 여섯 개의 뿔 스피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마르코 바로티, 〈표류하는 소리〉, 2025
협조 및 후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지오시스템리서치,
서울대학교 해양환경영향평가연구단, 다대표민속예술관, 제로원, WASP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부산에서 활동하는 조형섭의 작품 <장기 초현실>, <#장기 투숙객> 두 작품에는 흥미로운 시선과 에피소드가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했던 (구)다대소각장에서 우연히 굴뚝에 서식하고 있던 새를 만났던 것. 12년째 폐쇄되어 있던 공간에 자리 잡은 바다직박구리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사라지지 않은 다대포의 과거와 방치된 현재, 결정을 기다리는 미래를 포착했다. 그렇게 다대포의 중첩된 시간을 담아낸 설치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조형섭, 〈장기 초현실〉, 2025
장소 특정적 설치, 단채널 영상, 13분, 루프, 가변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오감을 자극하는 작품과 연계 프로그램들
2025바다미술제는 전시와 더불어 ▲워크숍, ▲퍼포먼스, ▲전시해설, ▲토론과 대화 ▲어린이 워크숍 등 기존의 보기만 하는 감상 방식을 넘어서는 오감을 만족시킬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먼저 스노클링이다. 다대포해수욕장 동측 물속에 설치된 마리 그리스마(Marie Griesmar)의 작품은 스노클을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감상한다.
고우니 생태길 옆에 자리한 우리엘 올로브(Uriel Orlow)의 작품은, 식물에게 책을 읽어주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으로 선보인다. 관객은 책의 언어와 식물의 숨결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낭독을 경험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어린이 워크숍은 어린이 관람객이 창의적 체험을 통해 생태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전문 도슨트가 진행하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마티아스 케슬러 & 아멧 치벨렉,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기〉, 2025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야외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환경과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묻는다. 다대포의 풍경을 따라 예술이 놓인 자리를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이야기와 목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올 것이다. 예술은 갤러리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의 공간 속에서도 숨 쉬고 있어야 하고, 이처럼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자연과 예술, 사람 사이의 연결이 필요한 지금, 모두 다대포로!
최지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