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세계 어업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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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업의 날, 바다를 지키자는 약속
매년 11월 21일, 세계 곳곳의 해안 도시와 어촌에서는 특별한 날을 맞이한다. 바로 '세계 어업의 날(World Fisheries Day)’이다. 이날은 어업인들의 노고를 기념하는 날이자 지속가능한 바다와 인류의 식탁을 함께 지키자는 약속의 날이다.
어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생업 중 하나지만 현재 위기에 직면해있다. UN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수산자원의 약 35%가 이미 남획 상태에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과 서식지 파괴가 수산자원의 회복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그래프: 전 세계 수산자원 현황
ⒸUN FAO, 2024
세계 어업의 날의 역사
‘세계 어업의 날’은 1997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어업인포럼(World Forum of Fish Harvesters & Fish Workers, WFF)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포럼은 급격한 산업화, 남획, 해양 오염으로 고통받는 어업인들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그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렇게 외쳤다.
“바다는 인류가 공동으로 지켜야 할 생명의 그물이다.”
이 선언은 매년 11월 21일을 ‘World Fisheries Day’로 지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80여 개국에서 이날을 기념하며, 각국의 정부·어업인·NGO 등이 지속가능한 어업과 해양 생태계 보호를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세계 어업의 날 기념 포스터
ⒸMSC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2022년 세계 어업의 날을 맞아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부(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의 장관 마이클 체르니(Michael Czerny) 추기경은 어업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들을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열악한 노동 조건, 인권 침해, 하천과 해양 오염, 해안 지역의 파괴,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IUU), 지속가능하지 않은 어업 방식 등을 주요 문제로 꼽으며, 이는 단순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환경, 경제적 공정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글로벌 식량 공급체계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체르니(Michael Czerny) 추기경
ⒸFishery News
보이지 않는 그물 속의 불평등과 고질적 문제들
인권침해와 노동 문제는 불법 조업의 그늘에서 가장 심각하다. 일부 원양어선에서는 여전히 강제노동, 장시간 근무, 안전장비 부재 등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수산물의 국제 공급망이 길고 복잡할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 쉽게 숨겨진다.

마다가스카르 소규모 문어 어업
ⒸMSC
전 세계 어획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영세 어업인(Small-scale fishers)들은 지속가능한 식량 공급의 주역이지만, 다양한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대규모 상업 어선에 밀려 조업 구역을 잃거나 자원고갈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며,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속에서는 정부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해안 지역의 파괴와 오염은 지역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어업 방식은 수산자원의 회복력을 파괴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자체의 존립을 위협한다. 일시적 이익을 위한 남획이 결국 공동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경고되어 왔지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체르니 추기경은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해양 산성화 등은 모든 국가와 모든 해양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 문제입니다.”
기후변화는 해수온 상승과 어류 이동 경로 변화로 이어지며, 전통적인 조업 구역을 잃는 어민들이 늘고 있다. 해양 산성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는 어류의 산란지와 서식지를 위협하고,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IUU 어업
ⒸMSC
지속가능어업,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
이러한 문제는 한 나라의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바다는 연결된 생태계,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공공재(Global Commons)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단순한 자원관리 협약을 넘어 기후·인권·경제·환경이 통합된 해양 거버넌스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체르니 추기경은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습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적 양심과 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인류 공동의 책임임을 상기시켰다.

인간의 선택이 만드는 바다의 미래
ⒸMSC
현재 전 세계적으로 6억 명이 넘는 어업인과 수산업 종사자들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손을 거친 수산물은 세계 인구의 20% 이상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고 있다. 수산자원은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동유산이다. FAO(세계식량기구)는 ‘지속가능한 어업(Sustainable Fishery)’을 인류의 식량안보 핵심축으로 꼽는다. MSC(해양관리협의회)는 이를 실천 가능한 인증 체계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제도적, 기술적 해결책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체르니 추기경은 “개인과 사회의 인식 전환(conversion of mindset)”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어업은 단순히 자원을 관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타인의 생계를 존중하고,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는 윤리적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어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관점에서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생명이 가득한 바다
ⒸMSC
바다는 거울이다
바다는 생명과 자원이 넘치는 공공장소이자,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업이 있다. 수많은 어업인들의 손길이 바다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그들의 생업이 곧 바다와 사람을 잇는 생명의 순환 고리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바다는 인간의 탐욕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남획으로 고갈된 수산자원, 오염된 해안, 수온 상승은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를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가 더 많은 어획량과 더 높은 이익만을 쫓을 때, 바다는 그만큼의 피해와 결핍으로 답한다.
바다는 우리가 주는 만큼 돌려준다.
어업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조업하고, 생태계를 존중하면 건강한 수산물과 안정된 생계를 선물한다. 하지만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원을 소모하듯이 소비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다시 어업인과 소비자,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세계 어업의 날에는 바다라는 거울 앞에 서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바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있는지, 그리고 그 풍요를 지속가능하게 누리기 위해 어업은 어떤 방식으로 변해야 하고, 또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함께 질문했으면 한다.


서종석
MSC 해양관리협의회 한국대표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공학박사
‘어업의 품격’(2020)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