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닿을 수 없는 바다, 기회를 엿보는 훈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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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 지역의 길림성에 위치한 훈춘(Hunchun)은 두만강 하구와 동해 바다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훈춘은 중국 동북 지역의 숙원이던 동해 출해구 도시로 성장하여 국제도시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훈춘은 동해 바다에서 약 17km 떨어져 있다. 과거 청나라 시대에는 중국이 동해까지 이어지는 땅을 소유했으나, 19세기 중반 러시아와의 불평등 조약(1858년 아이훈 조약,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 땅을 빼앗기면서 두만강 하류의 ‘출해권(出海權)’을 상실했다.

훈춘 위치도
이러한 해상 접근성 상실은 길림성과 흑룡강성 등 중국 동북 2성의 경제 쇠락을 초래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북 3성이 중국 내에서 가장 산업화 된 경제 중심지였으나, 개혁개방 이후 경제 성장이 본격화 되었을 때 이 지역들은 침체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외자 유치는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했지만, 흑룡강성과 길림성은 바다로 나가는 출해구가 없어 수출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국 자본의 외면을 받았고, 이는 30년간의 경제 위축과 인구 이탈로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여 중-러 국경 협약을 기반으로 두만강을 통한 제한적인 동해 진출을 도모했으며, 훈춘을 그 전초기지로 삼았다. 훈춘은 남북한과 러시아를 아우르는 동북아 국제도시로 성장하기를 희망하며, 실제로 시내에서는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가 혼용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훈춘은 수차례 한중 카페리 항로를 개설하고 러시아, 일본과 바닷길을 열고자 노력했다.
훈춘의 동해 출해를 향한 꿈은 최근 몇 년간 고조된 동북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특히 북한 및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밀착으로 인해 큰 어두움을 드리우고 있다. 훈춘의 동해 진출은 역사적, 지리적, 그리고 최근의 정치적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1992년 중-러 국경 협상으로 중국이 원칙적으로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 통행은 기존 북-러 간의 낡은 철교(‘우정의 다리’, 1956년 건설)의 높이가 발목을 잡았다. 두만강 하류의 두만강리와 하산을 잇는 이 철교는 약 7m 높이로 너무 낮아서, 동북 지역의 물자를 운반하는 상선 등은 이 지역을 통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철교에 대한 개량 공사 논의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북-러 기본 조약 체결 후, 2025년 4월 30일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에서 ‘북·러 국경 자동차 교량’ 건설이 착공되었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가 안보 동맹을 복원하고 경제·기술·인적 교류 확대를 염두에 둔 상징적 조치이다. 이 신규 자동차 전용 교량은 기존 철교에서 약 400m 하류 지점에 건설되며 총 길이는 4.7km이다.

북·러 국경 자동차 교량
Ⓒ이성우, 2025년 10월
문제는 신규 교량의 높이이다. 러시아 쪽 설계 도면을 분석한 교통·물류 전문가에 따르면, 신규 교량의 높이 역시 기존 철교와 큰 차이 없는 약 7m 정도일 것이며, 중간 부분도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높이는 구조가 아닐 것이라고 예상된다. 만약 새로 건설되는 자동차 다리마저 7m 정도의 높이가 된다면, 중국의 동해 출항 염원은 두 번째 장애물에 막히게 되는 셈이다. 이는 중국 선박들이 동해로 나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신규 자동차 교량의 건설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북-러 사이에 하루 몇 번 기차만 지나가는 철도 다리만 있었던 반면,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철도 3곳, 도로 12곳 등 총 17곳의 통로가 있어 중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북-러 자동차 교량이 건설되면 물동량이 크게 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수십 년간 가지고 있던 경제,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긴장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 예로 현재 북한의 함경도 경제는 훈춘 권하세관과 나선 원정리세관의 연결로 지탱되었는데 이 교량의 건설로 그 의존도가 약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훈춘입장에서 큰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훈춘의 국제물류거점 역할의 발목을 잡았던 중국 자루비노항을 연결하는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세관 문제가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훈춘에서 자루비노항까지 60km 남짓한 거리지만 통과하는데 1일 이상 걸리고 통과 화물도 러시아측 세관당국이 임의로 정해서 국제무역에 큰 애로사항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20년 이상을 끌어오던 크라스키노 세관의 현대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초에는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크라스키노 세관 현대화 공사 현장
Ⓒ이성우, 2025년 10월
훈춘이 두만강으로 나가는 출해구 역할을 상실하는 대신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통한 물류루트가 확보됨에 따라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삼국의 정치적, 경제적 역학관계를 서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로 보인다. 훈춘을 포함한 중국 동북 지역의 동해 출해구가 열리게 된다면, 이는 부산항에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우선 물동량 선순환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현재 중국 동북 지역의 물동량은 동해로 직접 나오지 못하고 서해로 우회하고 있다. 만약 훈춘을 통한 동해 출해 통로가 안정화되고 활성화된다면 서해로 우회하던 해당 지역 물동량이 부산항으로 쉽게 유입될 수 있다. 이는 부산과 중국 동북 지역 간에 물류를 통한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는 북극항로 허브 역할 강화할 수 있다. 훈춘과 극동러시아 항만들이 활성화될 경우, 부산항은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중요한 기항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다. 북극항로는 갑자기 열려서 부산항에 기회를 주는 대상이 아니다. 차근차근 북극항로를 이용할 기항지들이 성장하면서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부산항이 이 항로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될 잠재적 항만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최근 부산항의 물동량이 감소하는 추세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춘을 둘러싼 물류적 변화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부산항이 이러한 기회를 현실화하고 감소하는 물동량의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과거 싱가포르항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해외 항만 개발을 통해 자국 항만으로 물동량을 유입시켰던 사례처럼, 부산항 역시 인접한 항만들(특히 환동해권 훈춘, 극동러시아의 항만)에 대한 투자 및 네트워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중국의 훈춘과 극동러시아의 항만들이 바로 이러한 투자와 네트워크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훈춘의 동해 진출이라는 꿈이 현재 북-러의 전략적 밀착과 낮은 교량 높이라는 이중 장애물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만, 러시아 자루비노항 등 극동러시아 항만을 통해 출해 통로가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는 훈춘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경제적 연결성 강화를 통해 동북아 지역 경제의 새로운 상생 구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