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트롬쇠, 북극을 품은 도시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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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은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2022년 8월 31일, 북극 해빙 면적은 약 468만 제곱킬로미터였다. 이는 1979년 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후 11번째로 작은 면적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86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 면적의 8배가 넘게 감소한 수치다.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인류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고, 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며, 극지 연구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북극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도시가 있다. 북위 69도, '북극의 관문'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의 트롬쇠다.

트롬쇠 풍경
©장하용
북극 시대의 도래
북극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북극이사회에는 8개 회원국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북극경제이사회는 북극권 8개국 기업들이 모여 책임 있는 경제 개발을 논의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주목하는 분야는 명확하다. 자원 개발, 북극항로, 수산업, 그리고 무엇보다 기후변화 연구다. 북극의 기온 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르다. 북극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곧 전 지구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북극 연구와 개발의 전진기지가 바로 트롬쇠다. 인구 약 7만 명의 이 도시는 북극권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북극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북극 탐험의 출발지로 명성을 얻었고, 오늘날에는 북극 연구의 글로벌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로알 아문센, 프리티오프 난센 같은 전설적인 탐험가들이 이곳에서 대원을 모집하고 북극으로 떠났다. 남극점 정복에 성공한 아문센의 동상이 트롬쇠 중심가에 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북극 탐험을 꿈꿨지만 방향을 바꿔 남극을 정복한 인물이다. 아문센 동상이 바라보는 방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꿈꿨던 북극이 아니라 동쪽 노르웨이 본토 바다를 향하고 있다.
1250년, 트롬쇠의 시작
트롬쇠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1250년 요새로 처음 세워진 이 도시는 1794년 공식적으로 도시 헌장을 받았다. 빙하기 직후부터 사미족을 비롯한 선주민들이 이곳에 살았고, 바이킹들도 일찍이 이 땅을 찾았다. 노르웨이인들이 도시를 건설한 후에는 사미족과 러시아인을 견제하는 요새 역할을 했다.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시대에는 북방 영토 확장의 전초 기지였고, 북극 탐험 경쟁이 치열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에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트롬쇠가 본격적으로 북극 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1928년 노르웨이 극지연구소(NPI)가 설립되면서부터다. 이후 트롬쇠는 노르웨이 북극 과학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68년에는 세계 최북단 종합대학인 트롬쇠 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현재 약 15,500명의 학생과 3,300명의 교직원을 보유한 이 대학은 북극권의 지적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극지 환경, 기후 연구, 해양 생물 탐사, 원주민 연구, 원격 의료, 우주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 성과를 창출한다. 유럽은 물론 미주, 아프리카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드는 글로벌 연구 허브로 성장했다.

노르웨이 트롬쇠 전경
©장하용, 촬영일 : 2024.9.4.
프람센터, 북극 연구의 심장부
트롬쇠가 세계 북극 연구의 중심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프람센터(Fram Centre)의 존재다. 2011년 완공된 이 북극 연구 복합단지는 노르웨이 극지연구소를 비롯해 북극대학교, 해양연구소 등 2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입주한 북극권 최대 규모의 연구단지다. 약 500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며, 자연과학, 기술, 사회과학 분야의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한다.
프람센터의 연구 분야는 광범위하다. 북극 해빙 변화와 기후, 해양·연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해양 산성화, 육상 생태계와 원주민에 대한 영향, 유해물질의 생태계 및 인간 건강 영향 등을 연구한다. 2022년부터는 5개의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향후 5년간 약 2억 5천만 크로네(약 300억 원)의 예산으로 북극 기후·환경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적이고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 외관은 북극의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내부는 협력 연구를 위한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프람센터의 특별함은 단순히 연구 공간을 넘어선다. 학계와 정부, 국제 연구 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중요한 허브로 기능한다. 입주 기관들은 연구실과 실험실, 회의 시설을 공유하며 시너지를 창출한다. 북극과학체험관인 폴라리아(Polaria)가 연계 회원으로 참여해 일반 시민들에게 북극 과학을 교육하고 연구 성과를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프람센터는 북극권의 미래를 탐구하고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자들의 거점으로, 트롬쇠의 상징적 연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프람센터
©장하용, 촬영일 : 2024.9.5.
북극항로의 관문, 트롬쇠항
트롬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트롬쇠항이다. 1872년에 설립되어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진 이 항구는 해 있다.
트롬쇠항은 노르웨이 최대 어업 항구이자 북극권 최대 크루즈 항구다. 2023년 기준으로 연간 총 10,210회의 선박이 입항하며 이 중 어선이 3,770회를 차지하는 등 북극권의 주요 어업 및 물류 거점 항만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노르웨이 최대 어항이자 연중 운영되는 주요 크루즈 항구로서, 관광·에너지·수산업·물류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중심지다. 또한 재생에너지 및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위한 물자와 장비의 보관 및 운송을 담당하는 북극 지역의 주요 물류 센터이기도 하다.
트롬쇠항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쇄빙연구선의 모항이다. 노르웨이의 쇄빙연구선인 크로닝 하콘(Kronprins Haakon)의 모항으로서 북극 연구 활동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해안경비대 쇄빙선 힐리(Healy)를 비롯한 각국 연구선들의 주요 기항지이기도 하다. 3개의 주요 항만 지역(시티 센터, 브레이비카, 그뢰트순드)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항과 인접해 뛰어난 접근성을 제공한다.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해안 및 해안 근처에 거주하는 만큼, 트롬쇠항은 노르웨이 사회에서 해양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롬쇠항에 입항한 쇄빙연구선을 방문한 인파
©위키페디아
지금까지 트롬쇠가 북극 연구와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과정을 살펴봤다면, 다음 2부에서는 그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축, ‘체험과 협력의 도시 트롬쇠’를 조명한다. 북극 체험 인프라, 국제 거버넌스 네트워크,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을 통해 부산이 배워야 할 북극도시 모델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장하용
부산연구원 미래전략기획실장
책임연구위원
공학박사
해양정책의 방향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해양정책·국가 전략 수립 및 미래 해양도시비전 연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