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커피로 도시의 얼굴을 만든 뉴올리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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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산업 지표나 인구 규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특정한 향과 풍경, 그리고 그 도시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통해 도시를 기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 남부의 항만도시 뉴올리언즈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다. 뉴올리언즈는 커피라는 일상적인 소비재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구축했고, 오늘날 ‘커피의 도시’라는 독자적인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는 최근 커피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부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뉴올리언즈의 커피 문화는 단기간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18세기 프랑스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중남미에서 유입된 커피는 항만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시로 스며들었다. 당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교와 정치 토론, 문화 교류의 매개였다. 유럽식 카페 문화는 도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커피는 공동체 생활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발전했다. 이처럼 뉴올리언즈의 커피 문화는 도시의 역사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되어 왔다.

뉴올리언즈 프렌치 쿼터 전경
Ⓒistockphoto.com
19세기에 들어 뉴올리언즈항은 미시시피강과 멕시코만을 연결하는 미국의 핵심 관문 항만으로 성장했다. 특히 카리브해와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에서 커피 원두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뉴올리언즈는 미국 전역으로 커피를 공급하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항만을 중심으로 하역·보관·가공·유통 기능이 집적되었고, 항만 주변에는 창고와 로스터리, 도매상이 밀집하며 도시 차원의 커피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항만이라는 구조적 조건이 커피 도시로 발전하는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앵커(anchor)’의 존재다. 1862년 설립된 카페 뒤 몽드(Café du Monde)1)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 뉴올리언즈를 상징하는 도시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카페는 프렌치마켓과 프렌치쿼터의 역사적 공간, 거리 공연, 재즈 문화와 결합되며 하나의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냈다. 관광객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결국 도시 전체를 경험하고 기억하게 된다. 커피는 브랜드를 넘어 도시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는 관광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1)1862년 설립된 Café du Monde는 프렌치마켓을 대표하는 명소이자 도시 브랜드 자산으로 성장하였으며, 간판 제품인 치커리 커피와 베냇의 이미지가 ‘뉴올리언즈=커피 도시’ 인식을 공고화함.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24시간 운영, 전통 인테리어, 거리공연과의 조화)이 도시의 감성과 연결되어 관광객에게 강한 기억을 남김.

카페 뒤 몽드 전경
Ⓒistockphoto.com


카페 뒤 몽드 내부 전경 및 커피&도넛
Ⓒtripadvisor.co.kr
부산 역시 커피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커피 수입항만이며, 항만과 원도심, 바다와 문화 콘텐츠라는 독특한 도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부산시는 커피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지역별 커피 스트리트 조성과 산업 기반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산의 커피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로 완성되지 못한 상태다. 커피는 많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과 이야기는 여전히 분산되어 있다.
뉴올리언즈 사례가 부산에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상징적 앵커의 필요성’이다. 부산에는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로컬 커피 브랜드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단순한 개별 사업체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도시 브랜드를 견인하는 핵심 자산으로 육성해야 한다. 하나의 강력한 앵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도시로 유입되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영도 대일창고 일원
Ⓒ이성우, 2025.12.15.
두 번째 교훈은 ‘점이 아닌 선의 전략’이다. 뉴올리언즈가 카페 뒤 몽드를 중심으로 프렌치쿼터 전체를 하나의 커피 문화권으로 만든 것처럼, 부산 역시 여러 앵커를 거리와 동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영도구, 중구, 동구, 북항 재개발 지역을 잇는 커피 거리와 문화 루트를 구축하고, 항만과 원도심의 역사, 산업 이야기를 커피와 결합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면으로 확장되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커피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원두 수입·보관·로스팅·유통·관광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영도구, 중구, 동구 등 원도심에서 북항, 나아가 신항으로 이어지는 공간적 확장은 커피 산업을 단순한 외식업이 아닌 도시 재생과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뉴올리언즈는 특별한 신산업으로 성공한 도시가 아니다. 항만이라는 구조적 조건 위에 축적된 문화와 산업을 연결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 도시다. 부산 역시 커피를 매개로 항만과 원도심, 문화와 관광을 하나의 도시 서사로 엮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카페의 숫자가 아니라, 이 도시에서만 가능한 커피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커피가 도시 재생의 매개가 될 때, 부산은 비로소 기억되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