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막힐 때를 대비하라: 북미 서부에서 찾는 한국의 플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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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해상 공급망에서 불확실성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홍해의 지정학적 긴장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특정 해역의 충격이 선박 운항 지연과 운임 상승, 원자재 조달 차질을 거쳐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발 관세 갈등과 각국의 경제안보 강화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과제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장 짧고 저렴한 경로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경로가 막혀도 작동할 수 있는 대체망을 갖추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더욱 절박한 문제다.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항만·공항·철도·도로·연안운송을 결합한 복수의 운송망을 구축하고, 주요 시장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해외 물류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최대 교역권인 북미에서 기존 미국 서안 항만과 파나마운하 경로를 보완할 새로운 선택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포트알버니 항공샷
ⓒBy Kevstan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369267
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곳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포트알버니(Port Alberni)다. 밴쿠버섬 서쪽에서 가장 긴 만인 알버니 만(Alberni Inlet)에 자리한 항만도시로 태평양 기간항로에 비교적 가깝고 자연적으로 보호된 수역을 갖고 있다.
포트 알버니가 소재한 밴쿠버 섬 서해안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체샤트 원주민, 후파카사스 원주민, 그리고 누차눌트족이 거주해 온 인디언의 땅이었다. 포트알버니 시의 이름은 1790년부터 1792년까지 밴쿠버 섬 서해안의 누트카 사운드에 위치한 산 미겔 요새를 지휘했던 스페인 장교인 돈 페드로 데 알베르니 대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밴쿠버 섬은 1849년 영국의 식민지가 설립되었다가 1871년에 캐나다에 편입되며 정식 캐나다 영토가 되었다. 초기에는 영국인들의 모피 생산거점으로 1861년 이후 대규모 제재소가 건립되면서 목재 생산지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이 도시는 지방, 지역 및 주 정부의 중심지이며, 지역의 자연 환경을 활용하여 관광 명소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포트알버니항만청은 지역의 깊은 수심과 피오르드형 천연항 등 천혜 자연 조건을 활용해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현재 포트알버니항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알버니 만 입구 대수심 지역에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을 조성하는 ‘포트알버니 환적허브(PATH: Port Alberni Trans-Shipment Hub)’ 구상을 제안해 사전타당성 검토를 진행했다. 공개된 구상은 2만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화물을 처리하고, 이를 중소형 선박의 연안운송으로 캐나다와 미국 북서부 항만에 분산하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

포트알버니 위치도
ⓒ구글지도, 2026.7.18.

ⓒCOSCO SHIPPING lines, AI 지도 재구성.
‘포트알버니 환적허브(PATH: Port Alberni Trans-Shipment Hub)’ 의 가치는 밴쿠버항의 혼잡을 단순히 나눠 갖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형선이 포트알버니에서 화물을 내리고 연안운송망이 밴쿠버항과 프린스루퍼트항, 미국 북서부의 항만으로 연결된다면 북미 서부에 하나의 병렬 물류축이 생긴다. 이는 특정 항만의 파업·혼잡이나 철도 적체가 발생했을 때 우회 선택지를 제공하고, 기존 미국 서안 항만 의존도를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국 기업에는 북미 공급망의 탄력성을 높일 보완 경로가 되고, 캐나다에는 미국 편중 교역구조를 완화하면서 아시아와의 연결을 넓힐 수 있는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현재 북미 서부항만들은 2만 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이 입항할 수 없는 물리적 제한을 가지고 있다. PATH는 이러한 물리적 한계를 특별한 방파제 투자 없이 확충할 수 있는 최적지인 것이다. 또한 서울 면적의 12배가 넘는 밴쿠버 섬을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할 경우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하는 다양한 산업군의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는 부족한 캐나다 서안의 경제 기반을 해소할 수 있고 캐나다 서부 경제권의 성장도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포트알버니 전경
ⓒ이성우, 2019.11.15.
물론 가능성과 사업성은 구분해야 한다. PATH는 아직 완성된 항만이 아니라 장기간 검토돼 온 개발 구상이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 환경·원주민 협의, 항로 안전성, 연안운송망 구성, 밴쿠버섬과 대륙을 잇는 배후 연결체계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대형선의 기항 가능성만으로 거점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기항로를 제공할 선사, 환적화물을 모을 화주, 연안운송을 담당할 운영사, 통관과 정보시스템이 하나의 사업모델로 결합돼야 한다.
부산항의 글로벌 전략 역시 국내 터미널 확충을 넘어 ‘연결망의 지배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해외 물류센터 사업을 실질적인 항만 거점과 운송 서비스로 확장하고, 북미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인도·중남미·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의 생산·자원 거점과 연계해야 한다. 부산항이 여러 지역의 항만과 내륙거점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때 우리 기업은 위기 때마다 남이 제공하는 항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공급망 위기의 시대에 경쟁력은 평상시의 최저 비용이 아니라 충격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능력에서 나온다. 가장 효율적인 단일 경로보다 조금 더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복수의 경로와 거점을 확보하는 이유다. 포트알버니 구상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정답은 아니지만, 한국과 캐나다가 함께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전략적 선택지다. 정부와 공공기관, 항만공사, 민간기업이 ‘원팀’으로 북미 서부의 새로운 물류축을 설계한다면 부산항은 단순한 환적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을 조직하는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다. 위기는 대안이 없는 경제에는 재앙이지만, 병렬 역량을 갖춘 경제에는 판도를 바꿀 기회가 된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