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항만이 스타트업을 키우는 속사정: 로테르담 항만 스타트업 엑설러레이터, PortX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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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과 스타트업의 만남
항만을 간단히 정의하면 선박과 사람, 화물이 드나드는 곳이다. 화물 운송 측면에서는 입출항, 하역, 보관, 육상운송, 통관, 에너지 공급이 동시에 이뤄지는 복합 공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항만의 화물 처리 기능은 비교적 단순했지만, 최근 AX·DX가 진전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AI, IoT, 디지털 트윈, 자율운항, 물류 최적화 같은 신기술 도입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보다 민첩한 스타트업이 항만에 둥지를 틀 기회가 생겼다. 글로벌 항만이 배가 드나드는 기반시설을 넘어 해운회사·터미널·물류기업·제조기업·대학·투자자가 모이는 산업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배경이다. 로테르담의 포트 엑스엘(PortXL)이나 싱가포르의 피어 71(Pier 71), 바르셀로나 항만의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등이 기업·투자자·연구기관을 연결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이유다. 탄소 중립, 친환경 연료 사용, 전동화, 사이버보안, 자율운송 같은 새로운 현안에 직면한 항만이 스타트업의 실험적 기술을 조기에 발굴·검증하려는 수요도 여기에 한 몫 했다.

바르셀로나 항만의 라이트하우스
ⓒ바르셀로나 블루 테크 포트 홈페이지 검색자료
로테르담의 PortXL 실험
최근 10년 사이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 세계 주요 항만들이 경쟁적으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항만이 단순 물류 인프라를 넘어 혁신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어서이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곳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이다. 세계 최초로 도입하여 현장에 접목한 포트 엑스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포트 엑스엘은 2015년 로테르담항만공사를 중심으로 반 오드(Van Oord), 보스칼리스(Boskalis), 보팍(Vopak), 라보 뱅크 등 항만·해양 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세계 최초의 해양·항만 전문 액셀러레이터다. 해양·항만 특화 스타트업을 발굴해 3개월 안팎의 집중 프로그램으로 사업화를 돕는 게 설립 취지다. 매년 전 세계에서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기업을 모집해 피칭과 심사를 거쳐 최종 참가팀을 선발한다. 선발 기업은 로테르담항, 정부기관, 투자회사, 대기업 멘토와 직접 연결돼 항만 현장에서 기술을 실증할 기회를 얻는다. 사무공간 제공을 넘어 멘토링, 네트워킹, 파일럿 연결까지 포함하는 현장 밀착형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국방부 혁신 허브 '마인드베이스'까지 파트너로 합류해 국방·안보 분야로도 협력 지평을 넓히고 있다. 10년간 축적된 실험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포트 엑스엘 및 해양 테크 행사 이미지
ⓒ포트 엑스엘 홈페이지 등 검색자료
PortXL 설립 10년 성과
2025년에 설립 10주년을 맞은 포트 엑스엘은 지난 10년간 132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스케일업 사업을 진행했다. 이 중 83%가 여전히 사업을 이어가는 생존율을 기록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반적인 생존율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그동안 성장한 스타트업의 누적 투자 유치액도 1억 9,000만 유로를 넘어섰다. 실용화 사례도 여럿 나타났다. '리피(Reefy)'는 파도를 막으면서 해양 생물 서식지도 만드는 친환경 콘크리트 구조물을 개발했다. 로테르담 항만과 시 정부, 세계자연기금과 협력해 하천 제방 보호사업에 이 기술을 적용했다. 항만 크레인의 순간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플라이휠 기술을 개발한 '퀸텍(QuinteQ)'은 로테르담 항만 파일럿을 통해 전력망 확장 없이 전동화를 지원하는 해법을 찾았다. '랍스터 로보틱스(Lobster Robotics)'는 해저를 고해상도로 촬영하고, 매핑하는 자율 수중 드론을 개발했다. 해상풍력단지 조사와 해저 케이블 점검 등에 적합한 기술이다. 네덜란드 해군은 이를 군사용 자율 수중 드론(AUV)으로 도입해 정찰과 해저 물체 탐지에 활용할 계획이다. 포트 엑스엘 지원 스타트업들이 기업 파트너와 200건 넘는 투자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성과의 연장선이다.

리피(Reefy) 개발 친환경 콘크리트

퀸텍 에너지개발 제품(프라이휠 이미지)

랍스터 로보틱스 개발 제품(스카우트)
ⓒ리피, 퀸텍 에너지, 랍스터 로보틱스 홈페이지 검색자료
‘1876 부산’ 향후 비전
우리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 부산항만공사가 한국해양진흥공사, 부산시와 함께 운영하는 '1876 부산'이다. 창업 7년 이내 해양·항만·물류 스타트업에 무상 사무공간, 펀드 자금 지원, 항만 인프라 실증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트 엑스엘과 지향점이 비슷하다. 다만 국내 스타트업 위주의 지역 프로그램에 머물러 있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포트 엑스엘의 국제적 평판은 세계 전역에서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로테르담을 '국경 없는 실증 무대'로 개방한 데서 비롯됐다. 부산항이 '아시아의 포트 엑스엘, 세계의 포트 엑스엘'로 성장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글로벌 선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둘째, 해운·조선·에너지 대기업이 공동 출자자로 참여하는 민관 협력 구조로 플랫폼을 확장해야 한다. 셋째, 파일럿 실증부터 투자계약까지 이어지는 성과 중심 프로그램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스페인 등 세계 주요 항만의 육성 프로그램과 연대해 '항만 스타트업 육성 포럼' 같은 글로벌 연대 사업도 도모할 만하다. 부산항이 동아시아 최고 항만을 넘어 글로벌 해양·항만 스타트업 육성 관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끝>

'1876 부산' 입주 건물 및 운영 위탁 협약식
자료 : 부산항만공사 검색 자료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법학박사
해양 전문지『디 오션』,『오션 테크』,『환동해 경제학』등을 공동기획하고,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