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역사를 살린 런던 브릿지, 도시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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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결합하면 낡은 공간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시간의 깊이와 도시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성패는 오래된 것을 얼마나 많이 없앴느냐가 아니라, 과거의 흔적에 오늘의 기능과 미래의 가치를 얼마나 잘 입혔느냐에 달려 있다.
런던 템스강 남쪽의 사우스워크 일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런던의 수변 재생이라고 하면 흔히 도크랜드와 카나리 워프의 고층빌딩을 떠올린다. 그러나 런던의 진정한 저력은 런던 브리지에서 버러(Borough) 마켓, 헤이스(Hay’s) 갤러리아, 테이트(Tate) 모던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축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런던 브리지 남단의 버러 마켓은 약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19세기에 시장을 가로질러 건설된 철도 고가와 수시로 머리 위를 지나는 열차는 다른 도시라면 철거나 정비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런던은 이를 시장 풍경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오래된 벽돌 구조물과 철교 아래에 영국 각지의 농수산물과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 소규모 상점과 식당을 채워 전통시장을 세계적인 미식 공간으로 바꾸었다.

런던브릿지
ⓒ픽셀

버러 마켓 전경
ⓒ이성우, 2026.9.9.
인근의 헤이스 갤러리아도 과거 런던항의 중요한 부두와 창고였던 헤이스 워프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상점과 음식점, 보행 공간이 어우러진 장소로 재생됐다. 강변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거대한 벽돌 건물과 굴뚝을 그대로 간직한 테이트 모던이 나타난다. 버려진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의 외형과 산업적 흔적을 살려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공간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런던 브리지와 템스강 수변 보행로, 테이트 모던과 세인트폴 성당을 연결하는 인도교, 시장과 철도역, 미술관과 상업시설,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업무·주거시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관광객과 시민이 시장에서 음식을 즐기고, 강변을 걸으며 역사적 건축물을 만나고, 미술관을 관람한 뒤 주변 상점과 식당을 찾는다. 방문객의 유동성과 주민의 일상성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곳은 관광지가 된 뒤에도 살아 있는 도시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인도교에서 바로 본 테이트 모던 전경
ⓒ이성우, 2026.9.9.
런던은 과거를 박제하지도, 새것을 위해 모두 지우지도 않았다. 흉물로 보일 수 있는 철교와 발전소, 창고와 부두를 도시의 기억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문화와 기능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전통을 지키되 다른 문화를 흡수해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하는 개방성이야말로 런던을 세계도시로 만든 힘이다.
부산은 한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며 해양수도를 지향한다. 개항 이후 사람과 물자, 자본과 문화가 드나든 근대사의 보고이자 항만·철도·시장·창고·피란 문화가 중첩된 도시다. 부산에는 다른 도시가 돈을 주고도 만들 수 없는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서로 연결하고 복원해 하나의 도시 이야기로 만드는 데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영도다리 일대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원도심과 영도를 잇는 교량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만남과 이별, 피란과 정착, 노동과 생활의 기억을 품고 있다. 그러나 다리 양쪽은 도로와 건물로 단절되어 있고, 일부 수변 공간은 공영주차장이나 활용되지 않는 공터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영도다리를 건너지만 그 주변에 머물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영도다리 도개
@부산일보 DB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영도다리, 봉래시장과 대일창고를 비롯한 근대 산업유산을 하나의 보행·문화축으로 연결해야 한다. 자갈치의 수산·미식문화와 봉래동의 창고·조선산업 유산, 영도다리의 피란과 생활사, 북항의 새로운 문화시설을 묶으면 부산에서만 가능한 수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오래된 창고에는 전시관과 공연장, 해양 문화 콘텐츠와 창작공간을 담고, 빈 땅과 주차장은 시민광장과 시장, 수변 휴식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영도다리 아래와 주변 공간에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이야기와 야간경관을 입히고, 보행로와 수상교통을 통해 북항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 특히 중앙동와 영도를 연결하는 예쁜 인도교가 하나 있으면 사람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모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런던 브릿지 옆 인도교 전경
ⓒ이성우, 2026.9.9.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거대한 관광시설로 채워서는 안 된다. 지역 상인과 주민, 예술가와 청년 창업자가 참여해야 하며 시장과 골목의 일상도 유지되어야 한다. 대형 시설이 사람을 불러오고 기존 시장과 골목, 역사문화 공간이 부산만의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관광객의 방문이 지역 상권의 소득으로 이어지고, 일회성 관광지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사용하는 생활공간이 된다. 북항재개발 역시 북항 안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사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북항에서 중앙동과 남포동, 자갈치와 영도까지 사람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북항은 원도심과 단절된 또 하나의 섬이 될 수 있다. 북항은 사람을 끌어오는 거점이 되고, 원도심과 영도는 부산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도시는 새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축적된 이야기의 깊이로 기억된다. 런던이 발전소와 창고, 시장과 철교를 없애지 않고 세계적인 문화공간으로 되살렸듯이 부산도 영도다리와 자갈치, 봉래동의 창고와 수변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야 한다. 역사와 문화는 개발을 방해하는 낡은 유산이 아니다. 어느 도시도 모방할 수 없는 부산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부산이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고층건물만이 아니다. 바다를 통해 형성된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위에 새로운 문화와 산업, 시민의 일상을 쌓아가는 일이다. 영도다리 주변의 빈 공간부터 다시 바라봐야 한다. 그곳을 주차장과 공터로 남겨둘 것인지, 부산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수변의 중심으로 만들 것인지에 부산 도시재생의 철학이 달려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