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산업 바다 없는 훈춘에 킹크랩이 산다 : 러시아 킹크랩 허브, 중국 국경도시 훈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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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에 킹크랩이 몰리는 이유
바다도 없는 중국의 국경도시에 매일 러시아산 킹크랩이 밀려든다. 중국 지린성 동쪽 끝에 자리한 변방 도시 훈춘이다. 이곳은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다. 그러나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러시아 연해주가 나오고, 그 너머가 바로 동해다. 러시아 포시에트항과는 42㎞ 가량 떨어져 있고, 자루비노항과는 71㎞ 거리다. 중국 내륙에서 보면 분명, 변방이다. 러시아 바다에서 바라보면, 인구 14억 489만 명이 사는 거대한 중국 소비시장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같은 지리적인 위치가 지금 훈춘의 운명을 크게 바꾸고 있다. 2016년에 훈춘이 ‘냉장 해산물 및 식용 수산물 수입항’으로 지정되면서 러시아산 활 수산물을 직접 들여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러시아 심해에서 잡힌 킹크랩이 자루비노 항만 등을 거쳐 중국 국경선을 넘으면 곧바로 훈춘에 있는 임시 축양 수조로 들어간다. 전날 러시아 극동의 찬 바다에서 건져 올린 킹크랩을 다음 날 훈춘에서 맛볼 수 있게 됐다. 훈춘이 ‘바다 없는 해산물 도시’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다. 2024년 훈춘을 통해 들어온 킹크랩은 약 1만 2천 톤, 150만 마리 정도였다. 지린성 정부에 따르면, 중국에서 유통되는 수입 킹크랩의 80%가 이곳을 거친다. 훈춘은 이제 변방의 국경도시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바다를 연결하는 거대한 ‘수산물 유통 허브’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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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훈춘 통관구역 및 활게 운송 이미지
ⓒXinhua News
킹크랩이 국경선을 넘는 방법
킹크랩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게가 아니라 시간이다. 살아 있는 킹크랩은 이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질이 물러져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훈춘이 러시아산 킹크랩의 중심지가 된 이유도 따져보면, 결국 시간 싸움이다. 러시아 자루비노항에서 훈춘까지는 차량으로 한 시간 거리다. 러시아의 극동 바다에서 잡힌 게를 활어차에 싣고, 국경선을 넘어 중국 시장으로 보내기에 매우 유리하다. 중국은 최근 들어 이 짧은 거리를 더욱 짧게 만들었다. 훈춘 세관이 활 수산물 전용 녹색통로를 운영하면서 ‘사전 신고·예약 통관’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도착 즉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현재 킹크랩 통관시간은 90분까지 줄었다. 훈춘시도 나섰다. 세관·출입국·교통 당국 등이 참여하는 전담체계를 가동해 활 수산물의 국경 체류 시간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경을 넘은 킹크랩은 훈춘에서 대시 모드에 돌입한다. 어획 현장과 똑같은 염도와 차가운 바닷물이 들어 있는 임시 축양장에서 심신을 회복한 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청두 등 중국 전역으로 유통된다. 최근에는 킹크랩 보세구까지 들어서면서 홍콩과 동남아시아까지 판매망이 넓어지고 있다. 이 같은 통관·유통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까지 러시아 수산물은 우리나라 부산 등 제3국의 항만을 거쳐 중국으로 수출됐다. 훈춘은 항만을 가진 도시만이 수산물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거침없이 깼다.

킹크랩 체험 보세점 및 라이브 방송 판매 이미지
ⓒKing Crab Exhibition Hall / King Crab Sales Pavilion 등 종합
킹크랩이 바꾼 중국 변방 도시
훈춘이 킹크랩 허브로 성장한 이유는 여럿이다. 러시아로 즉각 연결되는 교통시스템과 신속한 통관제도 도입이 일등 공신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렸을 때, 기회를 미리 포착한 상인들도 한몫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허허수산물대시장(禾合海鲜大市场)의 왕진동(王金东) 대표다. 중국 농업농촌부 자료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산 수산물 수입에 일찍 눈을 떴다. 2014년부터 극동 러시아산 킹크랩을 선박을 이용하여 산둥성 웨이하이(위해)에 들여온 뒤 다롄을 거쳐 중국 내륙으로 보내는 사업을 처음 시도했다. 그 후 훈춘에 정착한 뒤,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러시아 킹크랩 수입 및 유통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했다. 수입가격을 낮춰 새로운 소비시장도 만들었다. 그가 중국에서 ‘킹크랩의 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에는 이보다 트렌디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왔다. 킹크랩 수입에서 임시 축양, 가공, 냉장 물류, 온라인 판매, 음식점, 관광까지 식품문화관광상품으로 비즈니스가 더욱 확대되고 있어서다. 훈춘에서 킹크랩 전시·판매시설을 운영하는 왕하이(王海) 사장이 모델 케이스. 그가 운영하는 킹크랩 전시관(King Crab Exhibition Hall)에서는 수조 속 킹크랩을 고른 뒤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고,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중국 전역에 판매한다. 게 껍데기로 만든 기념품과 킹크랩 모양 아이스크림도 등장했다. 킹크랩이 수입상품에서 벗어나 관광상품과 문화상품으로 몸통을 키우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셈이다.

중국 훈춘 허허수산물대시장 왕진둥 사장 이미지
ⓒXinhua News(2019년 촬영 사진)
훈춘의 킹크랩 산업 생태지도
현재 훈춘에는 19개 기업이 915개의 활 수산물 임시 축양 수조를 운영하고 있다. 보관능력은 최대 3개월, 2,830톤에 이른다. 이 같은 거대한 킹크랩 산업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인구 20만의 변방 국경도시도 변하고 있다. 훈춘시 정부는 문화와 관광을 접목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에는 킹크랩 문화 관광 및 레저 활동을 전개하면서 소비자 상품권을 배포하고, 전시회를 개최하는 한편, 옌지, 팡촨(방천, 북중러 국경지역)과 같은 관광 명소를 연계한 ‘국경 음식 루트’를 조성하고 있다.
2026년에 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킹크랩 산업 고품질 발전 서비스 전담반’을 만들었고, 러시아와의 수산물 교역을 뒷받침하는 통관·물류 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다, 지린성 또한 훈춘 국제협력 시범구역에 있는 수산물 공업단지를 수산물 가공·냉장·콜드체인·무역이 결합된 산업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에는 5천만 위안의 킹크랩 산업단지와 1억 위안 규모의 게 수입·집산센터가 추진되고 있다. 훈춘시는 해산물 거리와 킹크랩 음식축제, 요리대회 등을 관광과 접목하는 등 킹크랩 기반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결론은 이렇다. 훈춘은 본래 게가 없는 도시였다. 바다를 끼지 않는 내륙항만일 뿐이었다. 2015년경부터 부산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던 킹크랩이 우연한 기회에 훈춘으로 유입됐다. 그때부터 러시아 극동 바다에서 나던 킹크랩의 80%는 훈춘이 장악했다. 방향을 튼 킹크랩 한 마리가 동북아 수산물 유통 지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리고 도시도 바뀌고 있다. 수산물 유통의 경쟁력은 더 이상 항만에서 나오지 않는다. 킹크랩도 비즈니스다.

훈춘 해양경제발전시범구 킹크랩 임시 축양 클러스터 및 게 문화 축제 거리
ⓒ길림신문


최재선
한국연안협회 연구위원,법학박사
해양 전문지『디 오션』,『오션 테크』,『환동해 경제학』등을 공동기획하고,같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