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지털 대항해 시대에 살아남는 법
페이지 정보
본문
윤태호는 미생 작가다. 10년 전 다음의 웹툰(현재 카카오스토리)에 미생을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4년에는 tvN 개국 8주년 기념 드라마로 제작돼 대박이 났다. 장그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끄집어 올렸다. 혹자는 그것이 오늘날 온라인에 웹툰의 쏘아 올린 기폭제였다고 말한다. 그가 최근에 ‘물고기 어, 비늘 린’이라는 '어린'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이다. 2013년과 2019년, 두 차례 남극 세종기지를 다녀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윤 작가는 2019년에 극지연구소에서 주관한 남극 K-루트 탐사작업에 참여했다. 70일 동안 남극 탐험대와 눈보라를 맞으며 레알 남극의 본질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모티브 삼아 지금 온라인 콘텐츠, 어린을 그린다. 오프라인에서만 유통되던 만화가 웹툰으로 대세를 굳힌 사연이기도 하다.
< 윤태호 작가 작품(1) 및 남극 세종과학기지 전경(2) >
ⓒ 극지연구소 홈페이지
미생이 온라인으로 들어간 이유
만화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보던 만화책은 이제 온라인으로 쑤욱 들어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어서다. 어찌 어린 하나 뿐이랴! 이런 일은 온라인 가상공간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 됐다. 극장 상영용 영화도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보는 세상이다. 영화, 소설, 만화 등이 디지털화되면서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었다. 콘텐츠를 활용하는 셈법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웹툰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게임으로도 개발된다. 그 반대 경우도 많다. 굿즈(Goods)도 좋은 돈벌이 수단이다. 바야흐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던 디지털 지적 재산권(IP)이 제 몸값을 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쯤에서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이 같은 일은 문화 콘텐츠 동네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기업과 우리 생활 모든 곳에서 디지털 전환(DX)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개인이 만든 온라인 콘텐츠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0년 전 핸드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도배되고 있다. 해양, 수산, 물류 등 모든 분야에서 스마트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빅테크 기업들은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산업 간/업종 간 경계도 허물어졌다. 기업의 업무 영역 또한 모호해지는 형국이다. 400년 전 노르웨이 산골 마을에서 은광을 캐던 콩스버그 그룹이 항공 우주산업으로 뻗어 나가고, 세계 최초로 자율 운항 선박을 만들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더 치열해진 디지털 대항해 시대
지금은 600년 전에 벌어졌던 지구상의 발견보다 더 격렬한 디지털 대항해 시대다. 1415년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은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가 첫 문을 열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유럽의 변방국이었다. 상업으로 나라를 지탱했으나, 유럽 대륙으로 진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을 돌린 곳이 바다였다. 배도 짓고, 등대도 만들고, 선원들도 집중적으로 양성했다. 항해 왕자의 집념이 모아져 대서양과 아프리카를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스쿠 다 가마가 이끄는 동방항로 원정대가 1498년 5월 20일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리스본을 떠난 지 꼬박 316일, 그리고 엔히크 왕자가 죽은 지 36년이 지난 후였다.
< 포르투갈 엔히크 왕자(1) 대항해 500주년 기념탑(2)
항해왕 엔히크의 항해학교 벽화(3) >
ⓒ 나무위키 / "모두가 '세상의 끝'이라고 한 곳에서 그들은 시작했다.", 조선일보, 2019.01.17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이기는 법
포르투갈이 빗장은 연 지리상의 발견은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꿨다. 처음에는 음식 맛을 내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가세하면서 대항해 시대는 자원의 약탈과 토착 문명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리고 해외 식민지 건설을 미덕으로 여기는 왜곡된 근대 제국주의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서양인들의 삐뚤어진 동양 인식이 이때 잉태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디지털 대항해 시대에도 이 같은 일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럽인들이 신항로 개척에 나선 지 600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영토마저 점령당할 누란지위에 빠졌다.
< 아마존 본사 및 글로벌 OTT 및 넷플릿스 오징어 게임 초기 화면 >
ⓒ 위키피디아 / 컬쳐 매거진 / 넷플릭스
앞으로 메타버스가 본격적으로 운행(?)에 들어가고, NFT(대체불가토큰)로 만든 디지털 상품이 더 늘어나게 되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 등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글로벌 10대 기업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정보통신회사와 플랫폼 기업이 거의 대부 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이 온라인 기반 위에 만든 가상세계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염두에 둔다면 선택지는 명확하다. 모든 것이 그 흔해 빠진 후추 하나에서 비롯됐다. 그 이후의 세계는 역사에서 배운 그대로다. 디지털 대항해 시대에 살아남는 비결은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가상 세계를 보는 눈이 밝은, 청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나설 때다.
(주)에코트라 오션 랩
연구개발본부장, 법학박사
해양콘텐츠, 해양웹툰, OTT, 해양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