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대전환 시대, K-해양디자인
페이지 정보

본문
20여 년 전 21세기 동북아 해양수도 선포는 해양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이자 원천으로 인식한 부산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해양레저산업 강국인 일본과 거대 시장으로 부상 중인 중국에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 건너 초강대국 미국을 접하는 천혜의 해양벨트를 가진 부산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거점임에는 틀림없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찌감치 외국 문물들이 드나들던 개항도시인 부산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비드-19 팬데믹(Pandemic), 이상 기후의 도래, 디지털 전환-사이버 전환-인공지능 전환으로 이어지는 빅 테크의 급부상 등 점진적 변화가 아닌 대전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다.
<디지털 르네상스의 도래>
ⓒ박재현
해양에너지, 해양광물·식량자원, 해양바이오, 해양레포츠와 해양관광 등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보고(寶庫)로서의 가능성에 비해 우리의 해양산업은 선박 제조 기술력 이상의 부가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 LG 등 가전과 휴대폰, 현대·기아자동차의 디자인 혁신을 통한 세계시장에서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에 비하여 해양산업의 다양한 부문에 혁신적 디자인을 적용하거나 첨단기술과의 융·복합은 현저히 낮은 편이어서 세계 해양강국과의 경쟁력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는 디자인(Design)의 시대이다. 인류의 시간을 100년 주기의 세기로 구분할 때, 각 세기별 지배가치를 담아내는 키워드가 있다. 이를테면 16세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대변되는 예술(Art)의 시대, 17세기는 정치(Politics)의 시대, 18세기부터 20세기는 각각 공업(Engineering), 경제(Economics), 경영(Management)의 시대였다. 20세기 초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작업 표준화와 분업으로 대량생산체제에 진입했던 시대에는 기술자가 기업의 핵심이었고, 새로운 분자구조의 합성수지나 신소재 금속, 고밀도의 집적회로 등이 혁신으로 주목받을 때 그 중심에는 과학자가 있었지만, 198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소니(SONY)가 워크맨을 만들어내던 때부터 혁신은‘디자인’이 그 시작과 끝을 담당했다.
<세기별 지배가치>
ⓒ박재현
해양디자인은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기존의 해양산업 범주인 해운·항만물류, 수산, 조선, 해양과학기술, 해양환경, 해양관광·레저, 해양 정보·금융, 해양자원 등에 창의성과 심미성, 휴먼 팩터(Human Factors) 기반의 기능성이라는 디자인의 원리와 가치를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해양과 디자인의 융합은 해양생태계 문제, 어촌인구 감소와 어촌 소멸의 위기, 해양용품의 높은 해외 의존도 등의 수요와 연안 경제 활성화 및 탄소 배출과 재해가 없는 해양수산 구현, 세계 해운산업 리더 국가로의 도약 등 미래를 위한 필요에 부합할 만한 대안임이 분명하다. 바다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도전해온 해양디자인의 가치는 산업 전체로 꾸준히 확대되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양용품의 겉면을 화려하거나 예쁘게 다듬는 스타일링에서, 첨단 미래 기술을 담는 해양기업의 글로벌경영 핵심 전략으로, 나아가 해양친화적인 라이프 스타일과 인류를 위한 돌봄과 나눔의 서비스 디자인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 심미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스타일링과 고객수요 모델을 제시하는 비즈니스 영역조차 넘어서서, 시스템 및 생태계 창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고도화 중인 디자인산업과 해양산업의 결합은 미래지향적이며 부가가치의 질적 증대를 추구하는 혁신이다.
<K-해양디자인산업의 개념과 부산해양디자인어워드 수상작>
ⓒ박재현
예술과 역사를 보는 안목(眼目)은 높거나 깊어야 하지만, 정치·경제·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또 동서남북은 시대와 주체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지만 상하좌우는 어디를 바라보고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기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방향을 탐색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전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그동안 축적된 해양산업이라는 하드웨어 기반에 디자인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장착하기 위해서는 해양디자인 연구기반 조성 및 연구인력 양성, 해양디자인 정보의 수집과 확산 등 세계 각국의 해양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해양디자인산업 조성이 우선이다. 디자인 활용 유형별 맞춤형 지원과 디자인 경영 인식 제고를 포함한 디자인투자 확대, 관련 기관과 대학이 연계한 플랫폼 기반의 정보제공시스템 구축 등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부산은 글로벌 선도 친수도시로의 자리매김은 물론 21세기 동북아 해양수도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인식해야 하는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이 화두인 현시점에서 혁신은 결국 디자인이다.
재단법인 부산디자인진흥원 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