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등대, 바다의 신호등이자 우리 영혼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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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호등 항로표지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수평이기 때문이다. 그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지는 해는 반드시 떠오르고, 떠오른 해는 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바다는 하루에 꼭 한 번, 채운만큼 비운다. 그렇게 수평을 이룬 바다이기에 지구촌은 365일 24시간 평화로움을 지향하며 박진감 넘치는 해양경제의 소통과 교류를 물 흐르듯이, 구름에 달 가듯이 공존한다.
세계 물동량 78%가 바다를 통해 이뤄진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99.7%의 물동량을 소화한다. 등대는 이런 선박들이 오가는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도록 조류와 암초 등을 알리는 바다의 신호등 역할을 해서 전문용어로는 항로표지라고 부른다. 등대는 선박이 항, 포구를 출항해서 기항지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동행한다.
일반인이 가장 쉽게 마주하는 등대가 항구의 방파제등대다. 바다에서 항구를 바라볼 때 왼쪽 방파제는 흰색 등대인데 밤에는 녹색 불빛이 반짝이고, 오른쪽 방파제는 빨간 등대인데 밤에는 빨간색 불빛을 비춘다. 항해자가 항, 포구의 넓이와 거리 등을 낮과 밤, 상황에 따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신호체계 방식이다.
다양한 등대 중에서 항로 안전수역과 암초 등의 장애물 위치를 알려주고자 물 위에 떠 있는 항로표지를 등부표, 부표라고 부른다. 조류에 떠밀리지 않도록 물속에는 쇠사슬이 이어져 있고 침추가 해저에 고정돼 있다. 이런 등부표와 부표 중 불빛을 비출 수 있는 것을 등부표, 등화 기능이 없는 것은 부표라고 부른다. 물 위가 아닌 암초, 수심 얕은 곳 등에 세워진 구조물을 등표, 입표라고 부른다. 불빛을 비출 수 있으면 등표, 등화 기능이 없으면 입표라고 부른다.
울릉도 등대
ⓒ섬문화연구소
등대의 역할과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울릉도등대와 죽변등대다. 울릉도등대는 해발 171m에서 대형 등명기 불빛을 40km 해역까지 비춘다. 이 불빛은 경상북도 죽변등대 불빛과 맞물려 동해를 밝힌다. 한쪽 등대가 빛을 비추고 돌아서는 찰나, 상대 쪽 등대 불씨가 이어 물면서 동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죽변등대
ⓒ섬문화연구소
죽변은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지역 대나무는 화살을 만들어 사용했고 조선시대 국가에서 대숲을 보호했다. 죽변항은 동해 항로 중간에 위치한 국가어항이자 독도와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항구다. 죽변등대는 1910년 일제 때 울진지역 최초로 세워졌다. 죽변항은 1950년까지 포항~죽변~울릉도 연락선 경유지였다. 6.25 발발로 중단 후 1987년 후포~울릉도 항로로 변경됐다.
이처럼 등대에 불빛을 비추는 등명기를 단 경우를 광파표지라고 부른다. 교통량이 많은 연안, 곶, 섬, 암초에 설치된 대부분 등대가 여기에 속한다. 안개, 눈, 비 등으로 시야가 악조건일 때는 소리를 통해 등대 위치를 알려주는데 이를 음파표지라고 부른다. 그러니 등대는 밤에만 불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자욱해도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24시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등대직원들은 이런 해상 안전사고를 대비해 유인 등대에서 등명기와 각종 부속품 등을 점검하고 관할 무인등대의 이상 유무를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해양문화의 새로운 유산, 등대
지난해 국제항로표지협회(IALA)는 아시아 최초로 포항 호미곶등대를 ‘올해의 세계등대유산’로 선정했다. 등대는 항로표지 기능 외에도 당시 시대상과 건축 양식을 반영하는 독창적인 문화유산으로써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높다. 예컨대, 호미곶등대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발견되고 1900년대 르네상스 양식과 철골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색 벽돌로만 지은 건물 중 가장 높고, 오래된 등대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이러한 등대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 등대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상과 건축미, 식민시대를 극복한 섬사람들의 삶과 등대 기술의 진화 과정, 해양문화적 의미 등이 스며있다. 그래서 등대는 역사체험의 현장이기도 하다.
내비게이션의 시대, 등대문화해설사 과정의 중요성을 발견하다
국립등대박물관은 2017년부터 ‘아름다운 등대’ 15곳을 시작으로 2019년 ‘역사가 있는 등대’ 15곳, 올해는 시즌3 ‘재미있는 등대’, ‘풍요의 등대’ 등 등대스탬프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항로표지기술원은 올해로 10년째 등대해설사 양성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등대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10여 년 전, 그해 여름이었다. 나는 해수부 등대스토리텔링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위원으로서 전국 등대를 답사 중이었는데 묵호에서 독도 등대를 들어갔는데 연사흘 풍랑주의보에 묶이고 말았다. 울릉도 답사 일정이 연이어 차질을 빚었다. 때마침 작렬하는 한여름 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땀으로 온몸을 흥건히 적신 채 등대로 가는 비탈길 오르고 또 올랐다. 상록수림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와 해안절벽 아래 파도소리가 그나마 청량제 역할을 해줬다.
마침내 등대가 보이는 길목 이르자 관광해설사가 등대를 가리키며 무언가 열심히 설명 중이었다. 나도 관광객들 사이에 섞이어 까치발로 서서 해설사 설명에 귀 기울였다. 그는 등대 아래 절벽에 군락을 이룬 천연기념물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를 설명 후 울릉도등대 설명을 이어갔는데, 갑자기 내비게이션 시대에 무슨 등대가 필요하냐며 주관적 견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관광객이 현장을 떠난 후 그에게 다가가 명함을 내민 후 “해설사 가장 큰 기본은 객관성과 공정한 커뮤니케이션 자세를 유지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라면서 “어설픈 상식과 편견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논란과 갈등만 증폭시킨다면 그건 해설의 역기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바로 잘못을 인정했고 등대와 등대 직원들이 그렇게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과천청사 인근에서 해수부 담당 과장, 사무관, 항로표지기술협회 임원을 만난 울릉도 등대 일화를 소개하며 등대해설사 과정 필요성을 제안했다. 그렇게 1년 후 등대문화해설사 교육과정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크게 등대를 찾는 여행자의 감수성과 상상력,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중심으로 한 ‘등대역사 및 해설기법’, ‘등대문화예술과 해양문화공간’, 국내외 다양한 등대와 역할을 알아보는 ‘항로표지 기초’, 해설사 기본자세와 마인드, 바람직한 전달방식 등을 알아보는 ‘해설사 스피치 방법’ 등이다. 수료자는 해양문화공간을 갖춘 유인등대를 중심으로 파견돼 여행자들에게 등대에 대해 올바르고 추억이 깃든 스토리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간절곶등대
ⓒ섬문화연구소
해양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유인 등대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데, 대표적인 등대가 팔미도등대, 속초등대, 묵호등대, 영도등대, 간절곶등대, 울기등대, 오동도등대, 소매물도등대, 우도등대 등이다.
팔미도등대는 1903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등대로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던 등대다. 군사보호지역이던 팔미도는 2009년 106년 만에 개방된 이후 매년 등대에서 시 낭송, 통기타 공연, 오카리나 연주, 백일장 등이 열린다. 우도등대는 제주도 첫 번째 등대로 1905년 일본 해군성 요청으로 세워졌다. 제주해협을 오가던 일본인들이 조난사고가 빈번해지자 한 달 공기를 단축하며 섬사람들 노동력 착취와 저항하는 등대원 해고, 우도 해녀 항일운동 등으로 이어졌던 등대다.
우리 건출기술과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스토리텔링으로 꾸민 국산 조형등대도 있다. 통영에는 윤이상, 유치환,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등 문인들 고향인 점에 착안해 연필등대, 야구 고장 부산에는 야구등대, 영덕 창포리 끝단에는 영덕대게를 형상화한 창포말등대, 송이가 특산물인 양양지역 포구에는 송이등대가 있다.
통영 홍도등대는 영해기점, 즉 국가 주권과 관할권을 행사하는 기준점이 되는 등대다. 천연기념물 괭이갈매기 번식지이고 특정도서, 한려해상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이다. 등대는 바다 경계선을 표시하는 역할도 하기도 하는데 동해 최북단 저도 도등은 불을 밝혀 저도 어장의 북측 경계수역인 북위 38도 34분을 일직선으로 표시해 조업 중 조류, 바람에 의해 월선하지 않도록 돕는다.
그렇게 등대는 외딴 섬마을 어선들이 출항과 귀항을 반복할 때마다 약동하는 어촌 삶의 상징이다. 국내외 여객선과 화물선 등 해양경제의 출발선이자 해양사고 예방의 갈라잡이자, 망망대해에서 영해를 표시하고, 먼 항해에서 돌아온 마도로스에 기항지를 알리는 희망이 불빛이다. 그리고 뭍사람들이 해양문화공간을 통해 무한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펼치고 이를 통해 나를 치유케 하는 영혼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사)섬문화연구소 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시인이고 30년 동안 대한민국 2000개 이상의 섬을 답사했고
25년째 매년 등대에서 섬사랑시인학교를 개최하는 섬 전문가, 등대 전문가. 국토해양부 무인도서관리위원,
해수부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 해수부 이달의등대 선정 심사위원장을 지냈다.
「바다, 섬을 품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등대로 가는 길」, 「등대이야기」 등 다수의 저서와
해수부 ‘등대 해양문화공간 스토리텔링 조사연구’ 등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