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해양 소프트 파워의 리더,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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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하면 우리는 템즈강(Thames River), 런던 브릿지, 빅벤(Big Ben)을 연상한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이처럼 도시 한가운데 흐르는 템즈강을 중심으로 많은 랜드마크와 함께 성장한 도시였고 그 중심에 런던항이 있었다. 런던항은 템즈강 유역의 작은 강항(江港)으로 오래전 항만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런던은 영국의 해양제국시절 런던항으로 들어오고 나간 재화들이 남겨놓고 간 소프트 웨어인 물류, 무역, 보험, 정보, 주식, 언론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를 여전히 주도하고 있다. 현재 세계해양관련 선원, 해상보험, 선물 등의 표준은 모두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었고 그 중심지도 런던항의 옛 위치인 도크랜드(Dockland) 위에 금융, 업무, 상업단지에 입지하고 있다. 과거의 항만이 가져다 준 영광을 항만이 없는 현재에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런던은 기원전부터 켈트족이 살던 곳으로 9세기 현재 영국인들의 조상인 앵글로섹슨족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도가 되었으며 지금 런던의 도심은 1666년 대화재 이후 새롭게 건설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세기 “세계를 지배하려면 바다를 지배해야 한다”라고 했던 월터 롤리(Walter Raleigh)의 혜안과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만남이 런던을 해양제국의 중심지로 만든 시작점이었다. 런던항은 템즈강의 좁은 강폭, 낮은 수심과 6.2m에 이르는 조수간만 차에도 불구하고 16~19세기 영국과 연결된 세계 주요 거점에서 선박을 통해 활발하게 무역을 하였고 당시 영국이 세계 1위의 부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영국이 런던항을 기반으로 세계 경영이 가능했던 부분은 세계를 바로 보는 혜안을 가진 선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20세기 중반 이후 런던항이 북해에 있는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 기능을 넘기고도 여전히 세계 해양경영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은 이후 그들의 후손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런던항 전경
ⓒblog.naver.com 검색자료(2023.4.12.)
어떻게 런던은 아직도 세계 해양도시의 중심이자 해운비즈니스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 부분에서 소프트 파워와 표준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규모의 조선업, 해운업을 가지고 있다. 하드웨어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해양중심 국가라 할 수 있고 그 중심에 부산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누구도 부산이 런던을 압도하는 해양도시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산은 아직 해양 소프트 파워를 제대로 가지지 못한 반면 런던은 여전히 가지고 있고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해상사고를 책임지는 선박보험, 선박의 안전등급 등을 부여하는 선급, 해사관련 국제규법과 규칙을 제정하는 국제해사기구(IMO) 등 소프트웨어를 모두 가지고 있다. 세계 최초의 해상보험회사인 로이즈 보험도 그 시초가 17세기 런던의 지식인들의 사교 장소였던 로이즈커피하우스(Lloyd’s Coffee House)에서 시작했다. 또한 세계 최초이자 최대인 선급회사 역시 영국 런던에 있는 로이즈 선급이다. 이외 이러한 영업에 필요한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는 해양분야의 유사한 대학들이 대부분 영국 런던 혹은 인근에 입지하고 있으며, 영국해양박물관 등 해양문화와 관련된 다수의 시설이 입지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서 소프트 파워를 가지는 국가와 도시가 세상을 주도할 수 밖에 없다. 이 관점에서 런던항의 도크랜드 재개발 사업과 현재 부산 북항의 재개발 사업을 주의 깊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영국 런던 역시 도크랜드 재개발이 순탄하지 않았다. 1970년대 노동당 정부는 도크랜드를 심각한 주거난에 시달리는 런던 시민들을 위해 저렴한 공공주택 단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이 이끌던 보수당 정권은 기존 노동당 주도로 설립된 공공주택 건설 사업 중심의 ‘도크랜드 공동위원회’를 폐지하고 ‘도크랜드개발공사(LDDC)’를 설립하였다. 보수당 정권은 도크랜드개발공사를 통해 도크랜드를 영국의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쇠퇴한 문제의 도시공간에서 역사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도크랜드개발공사는 1981년부터 1997년까지 도크랜드지역을 과거 런던이 가지고 있던 소프트 파워가 새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업특구’를 지정하고 런던의 경제성장 중심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키워오고 있다. 도크랜드의 중심지인 카나리 와프(Canary Wharf)는 1991년 첫 기업이 입주하기 시작하였고 다수의 금융기관, 언론사, 국제기구 등이 입주하여 이 지역에서만 10만 이상이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해양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과거 런던항 전경도크랜드 재개발 전경
ⓒxpedia.co.kr 홈페이지 검색자료(2023.4.12.)
이런 맥락에서 부산의 북항지역 재개발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지에는 해양관련된 어떤 소프트 파워를 장착시키고 있는지, 과거 부산항이 가진 영광을 배가시킬 수 있는 역사성과 문화적인 힘은 어떻게 연결되고 부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경제는 과거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고부가가치 제조업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부산항이 이러한 변화에 맞는 전환을 위해 런던항 재개발 사례를 거울삼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