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항만 재개발과 스마트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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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북부의 북해로 이어지는 엘베강 하구에 위치한 함부르크는 14세기 북유럽의 상업동맹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중심도시로 북해와 북유럽 무역의 중심도시였다. 과거 무역 중심도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함부르크 역시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다. 그러나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클린스만(Eckart Klessmann)이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없었다면 함부르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처럼 끊임없는 외부로부터의 유입, 충돌, 수용, 융합 그리고 성장으로 이어지는 공식을 통해 오늘날에도 독일 2대 도시이자 최대의 항만도시로 우뚝 서 있다. 현재 한자동맹의 여러 도시국가 중 함부르크만큼 무역과 물류라는 원래 기능을 유지하면서 성장해 온 도시가 없을 만큼 북유럽에서 함부르크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인구의 규모나 항만의 크기 등은 부산시에 비해 적지만 함부르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잠재력과 성장 방향은 부산시에 많은 귀감을 줄 수 있다. 함부르크는 최근 20년 동안 기존 항만의 재개발을 통한 도시화와 항만과 도시를 묶은 스마트화로 21세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함부르크의 최근 성장 모델은 부산이 직면한 북항 재개발, 스마트 항만과 도시 건설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함부르크는 한자동맹 이후 흥망성쇠를 반복하다가 2차대전 이후 완전히 파괴 되었다. 무역도시는 전시가 되면 군수지원 도시로 바뀔 수밖에 없고 적군 입장에서는 주요 공격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인강의 기적으로 성장한 독일 경제의 관문 역할과 1980년대 말 철의 장막 제거와 동유럽의 민주화로 인해 세계와 독일, 동유럽, 러시아 서부를 연결해 주는 해상물류 중심지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함부르크 시민의 오랜 전통인 외부로부터 유입된 재화, 사람, 문화, 기술들이 자유롭게 섞이고 융합되는 개방적인 기질은 무역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또한, 무역과 함께 연결된 전세계 정보가 가감없이 정리, 분석되어 발표되는 독일 최대의 언론 도시이자 정보도시로 성장하였다. 현재 독일인뿐만 아니라 세계가 귀를 기울이는 슈피겔(Spiegel), 슈테른(Stern) 등의 독일 저명 언론사 3,300여 개의 본사가 함부르크에 있는 것이 그 전통을 반증하고 있다. 결국 이 무역과 정보의 중심도시는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도시로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는 그들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과거 18, 19세기 항만 배후의 대규모 창고단지였던 구항만 지역(Hafencity)을 함부르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1997년부터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였다. 과거 대부분 유럽 항만은 내륙운하를 통해 재화들을 강 하구에 이송시키고 바다로 연결하였으나 근대 해운은 대량 운송과 원거리 대륙 간 운송체계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적 관점에서 단거리는 트럭, 중거리는 철도, 장거리는 해운으로 역할 분담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강 하구에 위치한 유럽 항만들의 역할이 사라지게 되었고 대규모 재개발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함부르크의 하펜시티(Hafencity)였다. 함부르크의 항만 기능은 일부 도시 외곽, 대수심 확보지역과 인근 브레머하펜(Bremerhaven) 항으로 이동하고 하펜시티는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재개발하게 되었다.
하펜시티는 함부르크 전체 면적 755.3㎢ 중 항만이 차지하는 면적이 73.9㎢이고 그 속에 1.5㎢로 도시 내 비중은 작으나 그 위치가 함부르크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시계획 관점에서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이 관점에서 하펜시티의 입지와 규모 면에서 부산 북항 재개발 지역과 거의 흡사하다. 하펜시티는 함부르크 원도심의 부활을 위해 ‘떠나가는 항만’에서 ‘모여드는 도시(항만)’를 목표로 재개발을 시작하였다. 함부르크의 성장동력인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하펜시티 재개발의 기본 목표가 된 것이다. 비어있는 하펜시티에 주거인구 15,000명, 일자리 40,000개를 만들어 밤낮없이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목표를 정했으며, 업무, 경공업, 주거, 상업, 위락·여가, 교육, 문화 기능을 모두 넣을 수 있는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였다. 한편, 하펜시티 개발은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기본적인 개발 원칙은 우선 ‘역사성’과 ‘지역성’을 살리기 위해 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기존 건물을 개조, 정비 등을 통해 과거부터 내려오는 도시의 맥락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만 배후의 대형 보일러실을 홍보센터로, 창고들을 해양박물관과 과학센터로 죽어가던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단순한 건물 개조뿐만 아니라 글로벌 물류기업인 퀴니엔나겔 본사를 유치하여 무역과 물류 도시의 역사성과 지역성이 연계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그림-1> 참조). 이 개조된 건물과 유치된 기업들은 하펜시티에 역사와 지역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하나의 지역, 열 개의 다른 모습’은 현재 하펜시티가 표방하는 또 다른 목표이다. 역사성과 지역성에 기반하면서도 하펜시티를 외형, 기능과 역할에서 다양성을 가진 공간으로 재승화시키고자 하는 방향 제시인 것이다(<그림-2> 참고). 결국 이러한 개발 방식은 선 공공, 후 이익이라는 원칙하에서 진행되었고 개발업자들의 방해와 충돌로 인해 계획 수정, 개발 주체 변경, 사업비 폭등 등을 거치면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펜시티 개발은 최초 목표와 재개발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친환경과 스마트 컨셉까지 접목시킨 지속 가능한 도시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퀴네앤나겔 하펜시티 건물>
ⓒWWW.HAFENCITY.COM, 검색일 : 2023.6.16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하펜시티>
ⓒWWW.HAFENCITY.COM, 검색일 : 2023.6.16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국가, 독일의 경제 중심도시인 함부르크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항만과 하펜시티 재개발은 당연히 스마트 컨셉으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함부르크는 단순한 항만만의 기능적인 스마트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스마트화하면서 그 중심에 항만과 그 연결고리로 하펜시티를 활용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함부르크 항은 자신들을 ‘영리한(Smart), 더 영리한(Smarter), 아주 영리한(Smartest)’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를 통해 인력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서 항만의 최적 운영과 관리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스마트 항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결이다. 주변에 있는 하펜시티와 전체 함부르크시와 연결을 통해 전체가 하나로 묶기면서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로 상호 소통, 분석, 판단 그리고 결정까지 이어지는 스마트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항만의 글로벌 연결성을 고려하여 배후지(Hinterladn)인 도시뿐만 아니라 지향지(Foreland)인 유럽과 다른 대륙의 항만들까지 연결을 통해 스마트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부분은 스마트화의 다른 말은 친환경화이다. 항만 내 모든 활동의 스마트화는 이동의 최적화, 소비의 최적화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는 에너지 사용과 오염의 최소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함부르크 항의 스마트 전략이 영리한 항만 물류(Smartport Logistics)와 영리한 항만 에너지(Smartport Energy)인 이유이다. 도심에 위치한 함부르크 항이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성장 방향인 것이다.
아직 하펜시티의 완성된 모습은 진행형이다. 다만, 부산 북항재개발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년 이상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에 있고 2030년에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하펜시티는 강변과 해변이라는 차이 정도를 제외하면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과 사업 규모, 위치, 시작점 등이 매우 유사한 사업이다. 그러나 대상 지역의 개발을 위한 목표와 가치는 조금 다른 듯하다. 북항 재개발은 부산의 지역성과 역사성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또한 주변의 원도심과의 연결에 대한 고민도 사뭇 다른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이 하펜시티의 개발사례를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하펜시티가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화와 친환경화는 과거를 다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성과 역사성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모두 유지하면서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스마트화와 친환경화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가 ‘신천지가 아니라 함부르크 속의 도시공간이구나’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으면서 스마트화와 친환경화로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북항 재개발의 현주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지역소멸, 일극 체제라는 심각한 수도권 집중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아마도 이 현상에 그나마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 동남권이고 그 잠재력의 중심에 있는 공간이 항만과 항만 주변이다. 그래서 북항 재개발은 단순히 부산만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북항 재개발은 국내외로부터 사람, 자본, 기술, 문화 등이 자유롭게 유입되면서도 부산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역사성을 유지해야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부르크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한자(Hanseatic)라는 말은 원래 ‘무리’라는 뜻을 가진 옛 독일어 한제(Hanse)에서 나온 말로 한자동맹 당시 독일 북부를 중심으로 북유럽 70여 개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음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해사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포용과 통섭의 공간이 바다인 것처럼, 해양물류는 전체 물류산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양도시의 물류 및 경제산업에 관한 전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다.